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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Nov 27. 2020

세상에서 유일한 소울메이트

소중한 내 동생 이야기

동생은 고등학교 진학 후 점차 성적이 떨어졌는데 나는 지금까지도 그녀의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생의 이해력과 집중력, 암기력 정도면 좋은 내신 성적을 거두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으리라고 믿고있다. 동생은 외국인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영어 실력을 갖췄다. 외국 유학은커녕 미국이나 영국 여행을 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독학으로 기초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을 터득했다. 일찍부터 고전 문학에 눈을 떠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데미안>을 읽었다. 등장인물이 600명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옛날 사투리와 속담 등을 엿볼 수 있어 한국어로써 사료적 가치도 있는 박경리의 장편 소설 <토지>를 마음먹고 끈기와 의지를 갖고 읽어 나갔다. 나와 달리 이해가지 않는 부분을 대충 넘기지 않고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 때까지 몇 번을 곱씹었다.


동생은 순응적이고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와 달리 사람과 사회, 세상에 일찍 관심을 갖기 시작한 모양이다. 인간의 불완전함, 세상의 불평등함에 눈을 뜬 후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억압하는 학교에 회의적이고 입시제도를 불필요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고득점을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적당히 하는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던 것들을 일찍부터 깨닫고 세상을 앞서 나가고자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십 대 시절 스스로를 둘러싼 부모님과 학교는 자신의 생각을 수용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직시했다. 그러다가 겨우 용기를 내서 프랑스 유학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 분명하다. 가까운 사람들이 아무도 자신의 마음을 진정으로 알아주지 못해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여리고 감수성이 충만한 십 대 시절 오랫동안 차마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한 채 얼마나 외로웠을까.




우리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중국의 한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었다. 동생은 학교 대표로 중국을 방문해 그곳 학생들과 교류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 고등학생으로서 흔치 않게 외국 문화를 경험을 하게 되었기에 가족 모두 기뻐했다. 처음 가본 사막에서 낙타를 탔다는 동생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신기했다.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어서 동생이 부러우면서도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동생은 회상하기를 아마 그때부터 마음의 병이 시작된 것 같다고 했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 동생이 중국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기색을 내비쳤던 것 같다. 동생 성격상 속마음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아서 처음 경험하는 환경에 아이가 긴장했나 보다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프랑스 유학 선언 몇 년 전부터 이미 동생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자 끊임없이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섬세하고 예민하고 명석한 동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지금은 십 대라 예민해서 그래, 크면 나아지겠지’, ‘고3이라 힘들어서 그래, 대학에 입학하면 나아지겠지’, ‘처음 가는 외국이라 그래, 다녀오면 결국 좋아할 거야’라는 사회적 시선을 반영한 지극히 개인적인 잣대로 ‘괜찮을 거야, 괜찮아질 거야’라고 생각했다. 분명한 신호를 듣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렸다.




조울증을 앓고 있는 동생이 몇 번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나와 우리 가족에게 그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점점 더 깨닫는다. 동생은 스스로가 나약하고 잘하지도 못하고 남들에게 받기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생은 여전히 나에게 사랑스럽고 사려 깊기에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세심하고 예민해서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것들을 먼저 알아챈다. 상황 인지와 파악이 빠르고 사람의 마음을 정확하게 꿰뚫는 통찰력이 있다.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그 자체로 힘이 되는 존재다. 예의를 알고 염치가 있다.


가끔 마음이 답답할 때면 ‘이럴 때 00가 바로 옆에 있으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한다. 동생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그대로 이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패션 스타일과 취향은 다르지만 관심 분야, 성장 배경이 비슷하기 때문인지 가치관도 비슷하다. 동생에게는 아무런 이야기나 해도 대화가 ‘통’한다. 나에게 가깝고 소중한 존재인 부모님, 배우자, 친한 친구도 동생을 대체할 수는 없다. 문득 우리는 ‘소울메이트’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동생이 직접 그린 엽서 크기의 그림을 선물했다. 뒷면에는 짧은 편지가 적혀 있었다. ‘나의 영혼의 친구인 00 언니에게’ – 놀라고 기뻤다. 다행이었다. 행복했다.



총 3개의 글로 구성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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