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첫 방문기(2018년)
‘이번 정차할 곳은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입니다. 대한항공, 에어프랑스, 델타항공, 네덜란드 KLM 탑승객께서는 이번에 내리지 마시고 제2여객터미널에서 하차해주시기 바랍니다.’
익숙한 인천공항을 지나쳐 공항버스는 한참을 내달렸다. 기사로 읽었던 제2터미널까지는 생각보다 꽤 거리가 멀었다. 15km를 더 달려 10분 정도가 흐르자 마침내 처음 보는 목적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시작이구나. 심장이 두근거렸다. 약간 기분 좋은 흥분 상태였다. 막 가을에 들어선 9월 초 저녁 9시 한산한 밤공기는 어느 때보다도 싱그러웠다. 배낭을 뒤로 메고 보조 가방을 옆으로 한 채 10년 넘게 매년 함께 세계를 누비고 있는 듬직한 동반자 검은색 천 캐리어를 끌고 새로 지어진 공항에 들어섰다.
운항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직은 취항하는 항공사가 4개뿐이어선지, 밤이어서인지 공항은 상상보다 더 한산했다. (2018년에 개항했을 때는 스카이팀 Skyteam 소속 4개 항공사만 취항했다.) ‘오늘도 저희 백화점을 찾아 주신 고객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다음에 다시 뵙기를 바라며 늘 더 좋은 서비스로 보답하겠습니다’ 같은 안내방송이 울려 퍼져야 할 것 같았다. 점원들은 서둘러 물건을 정리하는 영업시간이 지난 백화점에 들어온 것 같았다. 체크인 카운터에 줄을 선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체크인 카운터 대부분이 운영되지 않고 있었다.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은 철저히 탑승 수속 절차 자동화를 지향하는 모양이었다. 잘만 한다면 탑승권 발권부터 수하물 위탁, 보안 검색, 출국 심사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담당 직원을 아예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 계속 기계와 직접 대면하면서 스스로 처리할 수 있었다. 범죄를 저지를 예정인 사람을 사전에 파악해 검거하여 범죄율을 낮추고 사회 질서를 유지한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 미래 세계에 온 기분이었다. AI 비서에게 ‘인물 정보를 보여줘’라고 요청하면 눈 앞에 바로 홀로그램 화면이 생성돼 정보를 파악하고, 터치 한 번에 다른 화면으로 넘어가는 세상이 머지않아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용할 항공사는 KLM Royal Dutch Airlines이었다. 창립 당시 이름을 가장 오래 이어오고 있다는 자부심과 전통이 있는 항공사였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 Amsterdam Airport Schiphol에서 환승해 최종 목적지는 포르투갈 리스본이었다. 그런데 여행의 첫 번째 관문부터 큰 난관에 부딪쳤다. 셀프체크인Self Check-In 키오스크에서 몇 번이나 시도를 해도 탑승권이 발권되지 않았다. 다행히 집히는 부분이 있었다.
며칠 전 항공사에서 이메일로 받은 비행 일정이 이상했다. 암스테르담에서 환승 후 리스본으로 출발할 비행기 시간이 내가 암스테르담에 도착하는 시간보다 몇 시간 일렀다. 아직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타야 할 비행기가 먼저 떠나버리는 일정이었다. 나를 둘로 쪼개지 않는 한 불가능했다. 처음엔 ‘에이, 이건 말도 안 되잖아. 오래전에 결제도 완료했는데 공항에 가면 항공사에서 해결해주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내 ‘혹시 모르잖아. 전산 오류로 내 예악은 빠져 있는데 만석이면 어떡해. 이러다가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개고생 하는 거 아니야. 가뜩이나 비행시간도 긴데 포르투갈에 도착하기 전에 기진맥진하는 거 아니야? 아…… 한국이면 의사소통이라도 원활하지. 타국에서 버벅거리는 영어로 사정하고 싶지는 않아’라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일을 미리 해결하고자 마음먹었다.
긴 통화 대기 끝에 KLM 한국 고객센터에 연락이 닿았다. 공항에서 발권을 할 때는 제대로 된 탑승권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확답을 받고 안심했다. 그런데 꼬인 일정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 문제를 키오스크가 해결해줄 수는 없었다. 결국 공항에서 직원의 도움을 받아서 원하는 탑승권을 손에 넣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늦은 밤이라 이용객이 많지 않아서인지, 제2터미널은 자동화 위주로 운영되어서인지, KLM 항공사의 방침인 건지 직원이 상주하는 수하물위탁 데스크도 모두 문을 닫았다. 아예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할 수 없이 SMART Bag Drop이라고 써진 자동수하물위탁 기계 앞에 섰다. 인천공항과 제주공항을 왕복할 때, 유럽에서 1~2시간 이내 거리를 저가항공으로 이용할 때 셀프드롭백을 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환승 대기 시간까지 합해서 편도 거의 20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비행에서 직접 수하물을 부쳐본 적은 없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난감한 표정으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살펴보고 있었다. 마침 옆에 설치된 작은 LCD 화면에서 음성이 흘려 나왔다. 해야 할 일을 친절하게 동영상으로 하나씩 알려주었다. 고마웠지만 이걸 언제 다 보고 숙지하지?라는 생각에 울컥했다. 이번에도 직원의 도움으로 무사히 수하물을 부쳤고 안심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사람에게 막대 모양 탐지기로 수색받는 대신 원형검색대에서 손을 머리 위에 올리고 있으면 자동으로 위험물 소지 여부가 판결 났다. 출국 마지막 단계인 출국 심사대에서는 가장 놀라고 당황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심사관이 각 심사대마다 없었다. 출국 심사관이 근무할 공간 자체가 없었다. 검색대에 여권을 찍고 지문 인증을 한 뒤 곧게 뻗은 통로를 쓱 통과하면 그만이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가로막을 사람은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물론 수상한 기색이 보이면 숨어있던(?) 직원이 바로 나타나겠지.) 상황 파악이 끝난 후 주변을 둘러보니 끝에 직원이 상주하는 심사대가 마련돼 있었다. 익숙하고 예상했던 바로 그 심사대였다. 외국인이나 지문 인식이 잘 되지 않는 사람을 직접 심사하는 모양이었다.
낯선 전 자동 시스템 덕분에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다이내믹했다. 처음 접하는 기계들에 매 순간이 당황스러웠고 고비였다. 말로만 들었던 인천공항 제2터미널 신고식을 제대로 했다. 사실 내가 탈 비행기가 제2터미널에서 취항한다는 안내를 받고 살짝 흥분이 되었다. 여행은 기꺼이 익숙함을 버리고 새로운 경험을 감수하는 거니까. 안전이 확보된다면 낯설고 신선한 경험은 언제나 여행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하니까. 나는 이미 단단히 준비된 여행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