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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Dec 03. 2020

지옥 같았던 암스테르담 공항 8시간

리스본행 비행기가 지연된 이유

11시간 40분 간 비행 끝에 환승지인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에서 당일 마지막 비행기로 밤 0시 55분에 출발을 했는데 암스테르담에 도착하니 이제 새벽 4시 반이었다.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창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어둠을 밝혀주었다. 새벽의 공항은 고요했고 적막이 흘렀다. 거의 모든 상점은 문을 굳게 닫았다. 어둑한 라운지를 천장에서 붉은 백열등이 비추고 있었다. 홀로 긴 테이블에 앉아있으니 분위기 있는 바 테이블에서 칵테일을 훌쩍이는 것 같은 감상에 젖어들었다. 처음에는 서늘했으나 9월인데도 점점 추위가 온몸을 휘감았다.


탑승 두 시간을 앞두고 탑승 게이트로 이동했다. 서서히 날이 밝고 공항은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눈에 띄게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침 6시 30분이었다. 큰 국제공항에서 환승 대기 4시간은 적당했다. 길을 잃거나 예상치 못한 문제를 해결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탑승 시간까지 고려하면 라운지에서 3시간 남짓을 보내면 된다. 영화 한 편을 보거나 책을 읽다 보면 금세 지나갈 시간이었다.


암스테르담행 비행기가 0시 55분으로 인천국제공항 당일 출발하는 마지막 비행기였다.




내가 여행을 했던 2018년 9월에는 인천에서 포르투갈까지 직항이 없었다. 약 1년 뒤인 2019년 가을에 아시아나항공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직항을 운항한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펼치는 광고 영상을 봤다. ‘우와, 이제 포르투갈까지 편하게 갈 수 있겠구나. 또 가야지.’라는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항공업계는 올해 초부터 전 세계로 확산된 코로나 때문에 큰 타격을 입었다. 아시아나항공은 경영난 끝에 추진된 HDC현대산업개발과 인수 협상이 결렬되었고 결국 대한항공이 인수를 앞둔 상황까지 겹쳤다. 아시아나항공에서 원래는 2019년 10월 28일부터 2020년 3월 25일까지 5개월 간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주 2회 직항 편을 단독운항 한다고 했는데 계획대로 운항이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리스본까지는 보통 유럽의 대표 허브 공항인 암스테르담 스키폴, 파리 샤를 드 골,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을 경유하는 노선이 최단거리이다. 암스테르담에서 1회 경유하는 내가 선택한 항공편이 환승 대기 시간 4시간 포함 총 19시간으로 한국에서 포르투갈로 가는 최단시간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오전 8시 반 비행기를 타고 3시간만 더 기다리면 마침내 고대하던 포르투갈 땅을 밟는 순간이었다. 긴 비행이라는 꿈을 꾼 뒤 주말에 늦잠을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 아점을 먹는 것처럼 리스본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야외 테라스에서 브런치를 먹을 기대에 부풀었다.


인생은 거의 뜻한 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비행기가 지연되기 시작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거의 4시간을 더 기다린 끝에 비행기는 정오가 다되어 출발했다. 이미 리스본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항공기에 문제가 있어서도, 공항이 너무 붐벼서도, 비행을 하기에 이곳 날씨가 좋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그곳 기상 환경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범인은 리스본 포르텔라 국제공항 Aeroporto de Lisboa을 휘감은 짙은 안개였다. 리스본에 착륙할 때 시계가 확보되지 못해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타야 할 비행기는 이미 아침 일찍부터 탑승구에 모습을 드러낸 채 하염없이 서있었다.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조급하지도 않으련만. 그림의 떡처럼 볼 수만 있고 탈 수는 없었다. 지연에 지연을 거듭할수록 창밖에 대기 중인 비행기를 쳐다보기가 괴로웠다.




한낮의 국제공항은 활기찼고 시끌벅적했다. 새벽의 고요했던 공항은 온데간데없었다. 정말로 꿈을 꾼 기분이었다. 문제는 내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내 몸상태가 영 아니었다. 벌써 암스테르담 공항에 도착한 지 반나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지는 거의 스무 시간이 다 되어갔다. 몸이 너무 추운데 배낭에는 더 이상 껴입을 겉옷이 없었다. 비행과 활동에 편한 긴팔 티셔츠에 긴 스커트를 입고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다. 오랜 시간 바깥에서 머물다 보니 9월 초인데도 긴 스커트와 스니커즈 사이로 드러난 발목을 타고 추운 기운이 올라왔다. 일행이라도 있으면 옷이라도 빌릴 텐데 나는 혼자 여행하는 외로운 여행객이었다. 언제 안개가 걷혀 비행기가 출발할지 누구도 알 수가 없었다. 게이트 근처를 벗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버티면서 리스본 안개가 속히 걷히기를 기다리는 일이 최선이었다.


몸상태는 점점 악화되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체기까지 들었는지 속이 몹시 불편했다. 따뜻하고 편안한 머리를 붙이고 누워 눈을 부칠 수 있는 푹신한 침대가 절실했다. 8시간을 기다린 끝에 탑승 게이트에 Now Boarding 불이 켜졌을 때 구세주를 만난 심경이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서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마침내 비행기에 올라탔다. 비행시간 내내 구토 봉투를 꼭 붙들고 제발 내 몸이 3시간만 더 버텨 주길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식은땀까지 흘리며 참고 또 참았다. 가지 않는 고장난 시계처럼 지옥 같이 긴 3시간이었다. 이렇게 길고 긴 우여곡절 끝에 거의 만 하루 만에 목적지인 포르투갈 리스본에 별일 없이(?) 무사히 도착했다.


꿈꿨던 리스본 전경. 언덕 위 붉은 지붕 집들 너머로 보이는 대서양으로 연결되는 짙푸르 테주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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