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부동산
이번에는 부동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여행 초반, 리스본에서 처음으로 여행자 임대 아파트를 경험하면서 당황했다는 에피소드(꿈에 그리던 포르투갈에 발을 딛다)를 꺼냈다. 에어비앤비나 2주에서 한 달 이상 장기 체류하는 사람에게 임대하는 경우는 들어봤다. 하지만 4~6개 세대가 거주할 수 있는 집을 한 채 이상을 보유하면서 1~4박 정도 단기로 빌려주는 전문 숙박업은 생경했다. 호스트는 꼼꼼하게 도시세도 거뒀으니 국가에서 허가를 받은 것이 분명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침실 1개, 화장실과 욕실 1개, 거실과 주방이 합쳐진 1인 또는 2인용 거주지가 있다고 치자. 총 4층 건물에서 1층은 상가이고 2~4층이 주거지인데 한 층에 거주지가 2개씩 총 6개이다. 이 6개를 전부 여행 온 외국인에게 대략 1~3일씩 합법적으로 비용을 받고 빌려주는 식이다. 전문적으로 진화한(?) 에어비앤비라고 볼 수도 있을 듯하다. 관광객이 넘쳐서 투숙객으로 방이 항상 꽉 찬다면 임대인(집주인)은 현지인에게 월세 형태로 장기 임대를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법적인 제재가 없다면 집주인은 당연히 외국인 여행자 대상 단기 임대를 선호할 것이다. 현지인은 내 집이 없는 것도 서러운데 기존 임대 주택들은 외국인 여행자가 차지해 빌릴 집마저 없는 상황에 처한다. 만일 남는 집이 있더라도 상승한 임대료를 감당할 수가 없다. 결국 현지인은 임차를 포기한 채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다. 사실 내 부동산 지식은 미천하지만 우리나라는 에어비앤비 형태의 임대에 상당한 제약이 있다고 알고 있었다. 국내에서 에어비앤비를 서비스 중이지만 규제가 엄격하단 말이다. 리스본 숙소는 쾌적하고 편안했지만 마음 한 켠에서 ‘어떻게 이런 식의 임대가 법적으로 가능하지?’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는 없었다.
여러 기사와 관련 글을 종합해서 파악하고 유추한 내용은 이렇다. 우선, 최근 몇 년 간 리스본과 포르투 시내 부동산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2017년 기준 전년보다 평균 12.4% 상승했다. 수요가 급격히 증가해서 매물(공급)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여행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2016년 방문자는 1,100만 명을 넘었고 최근에는 1,300명에 이르렀다. 포르투갈 전체 인구보다도 많은 외국인들이 매년 포르투갈을 찾는 셈이다. 2011년 집권한 보수 정권은 재정 적자로 허덕이던 포르투갈 경제를 회복하고자 주력 산업인 관광업을 살리고 외국인 직접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호텔 등 기존 숙박업만으로는 급증한 관광객을 수용하기에 역부족이었고 에이버앤비, 단기 임대 아파트 등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점점 더 활성화, 전문화되면서 리스본에서 만난 앨리처럼 주업이나 부업으로 여행자 대상 단기 임대 아파트를 본격적으로 운영하는 현지인들이 생긴 것 같다. 돈의 흐름에 민감하고 IT에 익숙하며 트렌드에 발 빠른 젊은이들도 낮은 금리에 대출을 받아 사업 개념으로 여행자 대상 임대에 뛰어든 듯하다. 리스본의 앨리와 하루밖에 묶지 않았던 포르투 숙소의 호스트는 모두 예상보다 무척 젊었다. 실업률이 높아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급증하는 여행자 대상 숙박업은 기회이자 돌파구였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주어진 기회가 다른 이에게는 고통으로 돌아왔다. 2018년 9월에 리스본에서는 관광객에게 밀려 살 집을 찾기 어려워진 현지 주민 수백 명이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임대료를 규제하고 우리를 쫓아내지 말라”, “관광 임대주택은 이제 그만” 등의 구호를 내걸었다. 시위대는 리스본에서 임차인을 찾는 1만 5,000여 개 부동산 매물 중 무려 4분의 3이 관광객을 위한 단기 임대주택이라고 주장했다. 주민들이 최대한 유리한 통계 자료를 인용해서 실제로 4분의 3까지는 아니었더라도 관광객용 단기 임대주택 급증으로 시민들이 절박한 상황에 처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엄밀하게는 서울 아파트인가?)은 해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집값에 허덕이고 박탈감을 느끼는 입장에서 리스본 시위대로 참여한 시민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잘 알 것 같았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 약 360만 호 중 왜 내 집은 없는 걸까. 임차한 집에서 사는 건 상관없는데 재계약 연도가 돌아오면 왜 이리 신경은 곤두서고 걱정은 느는 걸까. 전세든, 월세든 감당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더 외곽으로 이사를 가야 하면 어떡하지. 의식주는 생존과 직결되기에 거주지가 언제든지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생각은 때때로 생존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역시 대출을 받아 무리해서라도 집(아파트)을 장만하는 것이 답인가. 요즘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해서 대출로도 어림없을 것 같은데. 아직 집이 없는 사람도, 한 채 보유한 사람도, 다주택자도 결국 생각이 이처럼 귀결되니 부동산(아파트) 가격이 떨어질 수가 없지. 이 불안감은 진짜 불안감일까. 여론이 조장한 온갖 소문에 휩쓸린 '만들어진' 불안감일까.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핵심에서 벗어나기에 이정도로 마무리 한다.)
2011년 집권한 사민당 정권은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지하고자 이민 규제도 대폭 완화했다. 포르투갈 정부 통계에 따르면 해외에서 포르투갈로 이주해온 사람은 2015년 39만 명에서 2018년 48만 명으로 3년 만에 약 23%가 늘었다. 2012년부터 2019년 말까지 발급된 골든 비자는 9,000개가 넘고, 이 중 90% 이상은 부동산 투자로 이뤄졌다. 골든 비자란 외국인 이주민이 포르투갈에 50만 유로(약 6억 7,000만 원) 이상의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이에 준하는 직접투자를 하면 장기 체류 비자를 발급하는 제도이다. 또한 EU 다른 회원국에서 이주하는 사람에게 해외에서 받는 연금과 수입에 10년간 세금을 면제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럽인 세입자들이 집 구하기가 수월해졌다는데 역설적이게도 코로나 덕분이다. 관광객 발길이 끊겼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리스본 시는 단기 임대되던 빈 아파트를 정부가 5년 임대해 주택 보조금을 받는 세입자에게 저렴한 가격에 재임대 중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프랑스 파리 등도 관광객을 겨냥한 단기 임대를 억제하는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다시금 세상 모든 일엔 양면성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집은 제발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편안한 거주지로 역할을 했으면 한다. 이 단순한 상식이 왜 꿈을 좇는 것처럼 이상적으로 느껴질까. 입맛이 쓰다.
참고자료
수처작주 JW, 2018년 4월 26일,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omeaboard&logNo=221261483958&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월세 올라 못 살겠다" 포르투갈서 관광객 단기임대 반대시위, 매일경제, 2018.09.23
https://www.mk.co.kr/news/world/view/2018/09/599823/
김성욱, [World Briefing] 2020년 가장 주목 받을 유럽부동산, 단연 ‘포르투갈’, 한국금융신문, 2020.02.05
https://www.fntimes.com/html/view.php?ud=202002051608312857dd55077bc2_18
이정애, 코로나 역설…유럽인 세입자 집 구하기 숨통, 한겨레신문, 2020.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