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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Mar 03. 2021

30년 전 몰래 내 뒤를 밟은 엄마

처음 혼자서 학교가는 길

라디오에서 초등학교 자녀의 입학을 앞둔 내 또래 부모들의 걱정과 불안, 설렘이 묻어나는 사연이 흘러나왔다. 문득, 엄마가 숨겨온 비밀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집은 대가족이었다. 당시 나는 엄마와 아빠, 할머니, 두 살 터울 여동생, 결혼을 앞둔 막내 고모, 갓 제대한 막내 삼촌과 함께 살고 있었다. 크지 않은 집의 방 세 칸에 일곱 식구가 살았으니 살림이 빠듯했을 텐데. 국민학교 입학(몇 년 뒤 일제 강점기의 잔재를 청산한다며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 정문의 ○○국민학교라고 쓰인 명패가 ○○초등학교로 교체되자 신기해서 그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을 앞두고 부모님께서는 입학식 때 입으라고 고급 정장을 장만해 주셨다. 옷깃과 어깨가 넓은 상의와 무릎까지 오는 일자 스커트로 구성된 밤색 투피스였다. 입학식 전날, 몸에 꼭 맞고 심지어 잘 어울리는 투피스 정장을 입고서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입학식 날 아침, 타이츠를 신는 문제로 엄마와 실랑이를 벌였다. 그래서 거의 30년 전인데도 입학식 날의 매서운 추위를 여전히 기억한다. 마음속에 미리 정해 놓은 정장에 잘 어울리는 스타킹을 신고 싶은데, 엄마는 자꾸 바깥 날씨가 얼음장이니 두꺼운 자주색 타이츠와 겨울 양말을 신으라고 권하셨다. 밤색 정장에 자주색 타이츠라니…… 촌스럽기 이를 데 없다. 결국 나는 내가 점찍어 둔 스타킹을 끝내 고집했고, 야외에서 입학식이 진행되는 동안 속으로 엄마 말씀을 듣지 않은 후회의 눈물을 펑펑 흘렸다.


만일 내 지금의 연륜 그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간다면, 구령대에서 환영과 축하의 말씀을 하시는 교장 선생님을 향해 손을 번쩍 들고 외쳤을 것이다. ‘교장 선생님, 핵심만 간단히 말씀하시면 안 될까요? 이러다가 얼어 죽을지도 몰라요. 더 하시고 싶은 말씀은 유튜브에 올려주세요’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때는 순수한 8살 어린이였기에 살을 에는 추위에 얇은 스타킹 속 발가락이 얼어 점점 감각이 사라지는데도 한마디 대꾸 없이 고역의 시간을 견디었다.


강추위를 감안하고 멋을 한껏 부렸으니 사진이라도 한 장 건졌으면 좋으련만.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가 카메라 셔터 소리가 찰칵하고 들리는 순간, 눈을 감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게 바로 나였다. 초등학교 입학식 사진 속 나는 예쁜 옷을 차려입고 무표정한 채 질끈 눈을 감고 있다. 




학교까지는 걸어서 2~30분 정도 걸렸다. 어른이 된 뒤로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 가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지금 걸음 속도로는 10분 남짓 걸릴 것 같다. 엄마가 알려주신 학교 가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일단, 책가방을 메고 한 손에는 신발주머니를 꼭 쥔다.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큰 목소리로 외친 뒤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인사를 마쳐야 비로소 학교 가는 길에 오를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인사 잘해라’, ‘인사는 가장 기본이다’, ‘인사만 잘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라며 부모님께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사회생활을 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인사 하나만 ‘제대로’, ‘잘’해도 얼마나 큰 이점을 얻는지 알 것 같다.


이제 현관문을 나서 본격적으로 학교 가는 길이다. 집에서 왼쪽으로 쭉 가면 바로 앞에 횡단보도가 나타난다. 신호등을 기다릴 때마다 맞은편 현대자동차 대리점을 바라본다. 커다란 자동차들이 도대체 어떻게 저 안에 들어간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녹색불이 켜지면 횡단보도를 건너서 오른쪽으로 대리점, 왼쪽으로 하천을 낀 좁은 길로 접어든다. 다리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 직진인데, 비슷한 하천 풍경이 계속 펼쳐져서 여간 지루하지 않다. 그래도 신경 써서 길을 외우지 않아도 돼 그거 하나는 좋다. 마침내 다리가 보이면 학교까지 2/3 정도 온 셈이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하굣길에 용돈 50원, 100원을 내고 쫀드기, 누룽지테이프, 아폴로 빨대과자 등 불량식품을 사 먹던 구멍가게가 나타난다. 구멍가게가 왼쪽, 이번에는 하천이 오른쪽에 있도록 우회전을 해서 다시 직진한다. 이 구간에서 헷갈리면 안 되는데, 첫 번째 골목을 지나치고 두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서 계속 걸으면 조금씩 학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이차 선 건널목만 조심해서 건너면 마침내 목적지인 학교 정문에 도착한다.


길은 다 연결되어 있기에 어느 골목으로 먼저 진입하는가에 따라서 학교 가는 길은 무궁무진한 경우의 수가 펼쳐진다. 가령, 다리를 건넌 뒤 엄마가 알려주신 방법은 우회전해서 두 번째 골목에서 좌회전한 뒤 직진이다. 하지만 다리를 건넌 뒤 직진하다가 우회전을 해서 골목 두 개를 지나쳐도 학교에 갈 수 있다. 처음에는 무조건 엄마가 알려주신 길로만 다녔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키도 더 크고, 공간을 인지하는 감각이 발달하자 점점 아는 길을 응용해서 약간씩 다른 루트를 개척했다. 어느 날은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서거나 다른 다리를 건너는 식이었다. 졸업할 무렵에는 각종 상점이 즐비한 시끌벅적한 번화가를 통과해 집에 오는 날도 있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새로 알게 된, 엄마는 알려주지 않은 길이었다. 이젠 사람이 많은 복잡한 교차로에서 쉽게 길을 잃지 않으며, 엄마가 모르는 길도 찾아서 다닐 만큼 성장했다.




최근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처음 혼자서 학교에 가던 날, 엄마가 몰래 내 뒤를 쫓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길을 잃거나 헤매지 않고 엄마가 알려준 대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 걱정되지만, 이제 학교에 오가는 일은 나 혼자서 감당하고 해내야 하는 몫이기에 엄마가 나름대로 고민 끝에 택한 방법이었다. 엄마는 두어 번 몰래 내 뒤를 밟았는데, 제 몸 크기만 한 책가방을 메고 기특하게 알려준 대로 졸래졸래 잘만 가더라고. 물론, 두 번 정도로 마음이 완전히 놓이진 않았지만, ‘이제 학교 정도는 알아서 잘 찾아가겠지’라고 자신의 마음을 다독여 딸을 믿어보기로 하셨다고.


엄마가 몰래 나를 지켜봤다는 사실을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감쪽같이 몰랐다. 그러고 보면 엄마가 알려주신 길은 자동차가 거의 지나다니지 않았고, 대로는 아니지만 인적이 드물지 않으며, 기억하기에 쉬웠다. 아이의 첫 입학을 앞두고 가장 안전하면서도 8살이 외우기 쉬운 경로를 개발하고자 고심했을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그렇게 엄마가 나를 위해서 고안한 길을 따라 학교라는 사회에 무사히 첫발을 내디뎠다. 엄마가 혼자 간직하고 있을, 미처 나에게 와닿지 않은 관심과 사랑, 정성과 보살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엄마는 얼마나 많은 비밀 이야기를 여전히 숨기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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