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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l 21. 2021

‘고양이 좋아하세요?'라는 난감한 질문

낯선 감정을 싫어하는 마음과 착각하지 말기

친구 여러 명과 같이 길을 가다가 고양이를 마주치면 그렇게 난감할 수가 없다. 엄청 예쁘게 생겼다, 무척 귀엽네, 라며 발걸음을 멈추고 고양이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어정쩡하기 그지없으니 말이다. 나도 같이 ‘아이구, 귀엽다. 엄마는 어디 두고 혼자 돌아다니니?’라고 동조하며 친구들처럼 스마트폰으로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야 하나 싶지만. 고양이를 비롯해 동물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나는 그 고양이를 별로 귀엽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귀엽다’라고 거짓말을 하려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관심에 고양이가 놀라거나 불편하지는 않을지, 고양이도 나름의 일과가 있을 텐데 우리가 훼방을 놓는 건 아닌지도 신경 쓰인다. 그렇다고 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나만 무리와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멀뚱히 서있자니 그것도 뻘쭘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자세로 머리만 긁적이고는 한다.




내가 사는 빌라 1층에 있는 일식당에 식사를 하러 갔다. 메인 요리는 연어 모둠회인데 퓨전 파스타나 여러 감바스 요리도 모두 맛있고, 이젠 사장님과 얼굴을 익혀서 한 달에 한두 번은 들르곤 한다. 이날은 처음 보는 손님이 있었는데 바로 새끼 고양이였다. 어느 상가 옥상에 갇혀 있던 길고양이를 발견해 관리인 아저씨께 부탁드려 옥상 문을 열고 구출해 데려온 아이라고 하셨다. 새끼 고양이는 한눈에 보기에도 작고 연약했다. 사장님은 태어난 지 6개월 정도 된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가서 중성화 수술까지는 해줄 생각이라고. 그런데 보통은 수술을 시킨 이에게 배신감을 느껴 아마도 수술 후 이 고양이는 떠나리라고 말씀하셨다. 대체 옥상에는 왜 갇혔으며, 결국은 배신감을 느껴 떠나버린다니 고양이의 신세가 뭔가 안타깝고 처연했다.


순간 사장님께서 ‘고양이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말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자 ‘고양이에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은 괜찮아요. 그런 사람은 고양이에게 해를 끼치진 않으니까요. 고양이를 좋아하던 사람이 오히려 고양이를 괴롭히곤 하더라고요’.’라는 예상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고 보면 나 같은 사람은 사장님처럼 고양이를 구하거나 돌보지는 않지만, 아예 고양이 곁에 가지를 않는다. 끔찍하지만 고양이에게 해코지를 하려면 일단 고양이에게 접근하는 데 거부감이 없어야 하고, 고양이를 버리는 행위도 우선은 고양이를 좋아해서 키우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주변의 많은 애묘인에게 인사치레로 ‘요즘 ○○(고양이 이름)은 잘 지내?’라고 피상적으로 안부를 묻곤 하지만, 이날 나는 난생처음 고양이에 관해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길고양이 시절 하루




얼마 뒤 또 식사를 하러 갔는데 여전히 고양이가 있었다. ‘수술은 했나요?’, ‘네, 엊그제 잘했어요’, ‘보통은 수술하면 떠나간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어른도 아프면 아이가 되듯이, 고양이는 처음 왔을 때보다 수술 후 오히려 더 사장님께 의존하는 것처럼 보였다. ‘므아옹, 므아옹’ 끊임없이 사장님을 불러 대더니, 가게 바깥에 잠자고 휴식할 전용 매트를 마련했고, 정식 먹이통이 생겼고, 결국 사장님은 캣타워까지 설치했다. 고양이는 차츰차츰 짐을 늘려 자신의 보금자리 0.5평을 확보하며, 어느덧 가게와 우리 빌라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언젠가 외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가게 앞 공터에서 고양이와 사장님이 놀고 있는데, 고양이가 목과 머리에 수상한 깔때기를 차고 있었다. 동네 다른 길고양이가 배를 할퀴어서 또 병원에 가서 꿰매고 오는 길이라고. 아마도 상처 부위를 핥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장치인 듯했다. 내가 다 속상해서 ‘그래도 예전보다 이젠 꽤 컸는데 때리면 맞서 싸워야지. 맞고 있으면 어떡하니. 너 자신을 스스로 보호해야 해’라고 말했다. 사장님에게 듣기로는 길고양이도 동네에서 각자 자기 구역과 서열이 있다고 했다. 자신이 타이거라고 부르는 몸집이 크고 얼룩덜룩한 고양이가 대장 자리를 빼앗겼다가 최근에 다시 탈환했는데, 타이거가 가끔 와서 우리 고양이를 때리고 간다고 했다. 타이거라…… 나도 알고 있는 고양이였다. 근처 단골 카페에서 카페 사장님이 쉬라고 가게 앞에 마련해 놓은 고양이 매트에서 낮잠을 자주 자는 고양이였다. 네가 그랬단 말이지? 처량해 보이던 길고양이 타이거가 갑자기 고약하고 탐욕스러운 아즈라엘(스머프에 등장하는 악당 마법사 가가멜이 키우는 고양이)로 보였다. 그날도 잔뜩 살이 오른 모양새로 제 혼자 평온하게 단잠을 자고 있는데 얼마나 얄밉던지. 나는 독기를 가득 품고 ‘한번만 더 우리 고양이를 괴롭히면 가만두지 않겠다’라고 한동안 째려보았다. 물론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목 보호대를 착용한 하루


이젠 외출할 때마다 가게 앞으로 고개를 돌려 습관적으로 하루가 잘 있는지 확인한다. 특히, 사장님이 계시지 않은 아직 가게 영업 시작 전이나 쉬는 날에는 더 유심히 살펴본다. 한번은 하루에게 다가오던 타이거처럼 덩치가 큰 고양이를 쫓아낸 적도 있다. 엄밀하게는 쫓아냈다기보다는 덩치 큰 고양이가 나를 보고 스스로 달아났지만, 왠지 내가 하루를 악당에게 구해낸 영웅이 된 기분이었다. 전용 공간이 마련된 뒤, 다소 늦게 지어진 고양이 이름이 ‘하루’이다. 왠지 느낌상 하쿠일 것 같았는데, 하루나 하쿠나. 자음 하나 차이라며 내가 거의 맞춘 거나 다름없다고 우겨본다. 공원에 산책을 하러 갔다가 하루와 닮은 흰 바탕에 머리와 귀, 눈 주위, 등과 꼬리가 까만 고양이 무리를 발견했다. 재빨리 산책로를 지나 풀숲으로 사라졌는데, 그중에는 처음 하루를 봤을 때보다도 훨씬 작은 진짜 새끼 고양이도 한 마리 있었다. 태어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보였다. ‘우리 하루처럼 잘 자라야 할 텐데……’ 조그맣고 연약한 새끼 고양이가 야생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하루를 알기 전에는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싫어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낯선 존재로 여겨서 고양이를 어려워했다고 알게 되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렵다고 거리를 두니, 길고양이든 친구네 고양이든 마주치면 어쩔 줄 몰랐고, 그럼 고양이는 더 어렵고 낯선 존재로 각인되고,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이어지고…… 잘못된 믿음의 순환 고리가 생성돼 이는 점차 나의 성향으로 굳어졌다. 그런데 고양이 하루를 알고서 성벽이 서서히 허물어졌다. 여전히 고양이에게 먼저 다가가거나 쓰다듬거나 같이 놀아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어떻게 해야 할지 안절부절못하거나 내가 먼저 경계하는 눈빛을 보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무릎을 꿇고 앉아 최대한 고양이의 눈높이에서 ‘말을 건넨다’는 점이다. 고양이가 인간의 언어를 알아들을 리 없지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마음인지 관심을 기울이는 말을 붙이며 소통을 시도한다. 일종의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이다. 그럼 때로는 정말 고양이가 내 말을 이해하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다. 무엇보다 나는 검지 손가락으로 하루와 코 인사도 나눈 사이이다. 사람이든, 일이든, 동식물이든 간에 접할 기회가 없어서, 해보지 않아서 어렵고 낯설다고 느끼는 감정을 싫다는 마음과 착각하지 말기. 하루가 내게 알려준 인생 교훈이다.


그냥 귀여운 하루


하루 보너스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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