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 <아무튼, 비건>을 읽고: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1.
은행에서 집에 오는 길에 처음 가보는 골목길에 접어들었다. 집 근처이지만 있는지 미처 몰랐던 ‘응추 삼계탕’, ‘봉추 찜닭’ 등이 눈에 띄었다. ‘이번 주에 고기는 뼈해장국 한 번밖에 먹지 않았으니까 이번 주말에는 모처럼만에 삼계탕이나 찜닭을 먹자.’라는 행복한 고민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부터 부랴부랴 주말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기로 한 김한민 작가의 <아무튼, 비건>을 읽기 시작했다. 아무튼 시리즈는 책이 작고 분량도 많지 않고 주로 일상 소재를 다루고 있기에 이 책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고기를 거부하는 어린아이의, 흐리지 않는 눈으로 보면 연결은 그냥 보인다. 강아지도 동물, 돼지도 똑같은 동물, 외국인 가사도우미도 사람, 우리 엄마도 같은 사람, 동물과 사람 모두 우리 가족, 아이들의 세계에서 낯섦과 익숙함의 구별은 있어도, 차별은 없다. _14쪽
이 책을 읽다 보니 문득 지난 결혼기념일에 평소 눈여겨봐둔 고급 소고기 전문점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세트 메뉴를 주문하자 소 부위 중에 우설(牛舌)도 나왔는데 모르긴 몰라도 귀한 부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잠시 먹을지 말지 고민을 하다가 ‘그래, 이것도 다 경험이지. 언제 우설을 먹어보겠어.’라고 생각을 하며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망설였던 이유는 당연한 말이지만 너무 적나라한 혀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안심, 등심, 차돌박이는 고기로 보였는데 우설에서는 소가 떠오르면서 ‘연결’이 되었기 때문이다.
몇 쪽을 넘기고서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고기를 먹지 말자고 다짐을 했다. 더 읽다 보니 먹지 않는 게 아니라 먹지 못하게 되었다. 거의 매일 먹던 달걀프라이를 생각하면 노란 병아리가 떠올랐다. 달걀프라이를 얹지 않은 채로 밥에 나물과 양념장을 넣고 비벼서 나물비빔밥을 먹었다. 당연히 별생각 없이 주말에 먹고자 했던 삼계탕, 찜닭도 먹지 않았다. 도저히 목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이렇게 즉각적인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다니. 이 책은 ‘왜 비건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적어도 나라는 사람을 설득하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
2.
이 책은 비건이 무엇인지, 왜 비건을 해야 하는지, 비건으로서 지녀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 비건 반대론자의 주장이 왜 타당하지 않은지에 관해서 일목요연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비유나 표현이 다소 거칠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주장이 확실하고 일관성이 있으며 근거가 분명해 설득력이 있다. 다양한 예시와 사례를 들어 독자를 차근차근 자신이 하고 싶은 말로 이끌어 간다.
비건이란
단순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비건은 동물로 만든 제품의 소비를 거부하는 사람이자 소비자운동이다. 고기는 물론, 치즈나 우유 같은 유제품, 달걀, 생선도 먹지 않으며, 음식 이외에도 가죽, 모피, 양모, 악어가죽, 상아 같은 제품도 사지 않는다. (중략) 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게 음식이니, 엄격한 채식이라고 알고 있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_15쪽
3.
지인 중 비건이 있는데 ‘어떻게 먹던 고기를 안 먹고 살아가겠다고 결심을 할 수가 있지? 대단하다. 신념이 정말 강한 사람인가 보다.’라고 생각을 했다. 그에게 비건이 된 계기를 물었을 때 ‘우연히 소를 도살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너무 끔찍해서 그 이후로 고기를 먹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답변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렇구나.’하고 흘려 들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기 때문에 비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를 안 먹는 것이 아니라 도저히 ‘못 먹는’ 것이고, 모피 코트를 안 입는 게 아니라 이 또한 도저히 ‘못 입기’ 때문에 자연스레 비건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비건이 대단한 고행처럼 들릴 것 같다. 물론 한국에서는 아직 애로사항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고통받는 동물들과 지구를 생각하면 대수롭지 않은 고생. 보람이 훨씬 크다. 비건은 내가 자연과 동물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이다. _58쪽
공장식 축산업의 잔인한 동물 학대, 육류 생산을 위한 상상을 초월하는 물 소비량, 가축들이 배출하는 분뇨와 폐수의 하천과 토양 오염, 탄소 배출에 따른 지구 온난화, 열악한 가축 사육 환경 때문에 창궐하는 병균을 억제하기 위한 항생제 남용 등 공장식 축산업으로 고기가 생산되는 과정과 그 폐해를 충분히 납득하기 때문이다. 점차 비건적인 삶의 양식에 익숙해지고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잡기 때문에 비건적인 삶이 계속 유지되는 것 같다..
더 이상 고기를 먹지 않고, 모피도 입지 않고, 되도록 가죽으로 된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채식을 하면서 우유나 동물 실험을 한 화장품 광고를 찍지 않게 되었다는 이효리 씨를 보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전국적으로 알려진 유명인인데 대중과의 약속은 아니지만 어떻게 모두에게 자신이 채식주의자라고 공언을 할 수 있는지가 신기했다. 그녀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다.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라 육류는 먹지 않지만 유제품, 달걀, 해산물을 먹는 채식주의다. 이 책을 읽고 채식주의를 지향하는 효리 언니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과연 우리에게 동물을 죽일 권리가 있을까? ‘인도적으로 죽이기’라는 말은 말이 될까? (중략) 동물이 원하는 것이 뭘까? 약간 더 큰 우리에 갇히는 것, 햇볕 조금 쬐게 해주는 것, 좀 덜 아프고 좀 더 신속한 죽음일까? 아니면 그 동물의 특성에 맞는 자유로운 삶일까? 답은 자명하다. 다만 우리의 편의 때문에 인정하기 싫은 것뿐. _150쪽
4.
2박 3일이라도 좋으니 1년에 꼭 한 번은 외국을 여행하자는 생활신조를 갖고 있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트립어드바이저에서 근처의 식당을 찾다 보면 많은 식당이 채식주의 식단을 제공한다고 표시하고 있었다.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항공사의 경우(국내 항공 포함) 기내식으로 채식의 범주에 따라 다양한 채식 메뉴를 제공하고 있다. 나는 비건적인 삶에 관해서 전혀 이해도가 없었기에 이런 환경을 그저 ‘엄청 친절하네. 작은 부분까지 배려하고. 그런데 대체 채식주의 식단을 제공하는 식당은 왜 이렇게 많은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보면 우리나라는 아직 비건이 낯선 문화이지만 다른 나라 중에는 비건적인 삶을 추구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생각보다도 더 많은 것 같다.
완벽한 비건을 몇 명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다수의 사람들을 더 ‘비건적’으로 만드는 것이 사회 전체로 봤을 때 훨씬 효과적이라고. 동물을 살리는 데도, 환경을 보호하는 데도, 공중 건강을 위해서도 말이다. 일단 비건-친화적인 사회가 되기만 하면, 실천하기가 점점 쉬워지면서 비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건은 내게 정체성이나 명사이기 이전에 형용사이다. ‘비건적’인 작은 노력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비건은 소수자 운동을 넘어서서 정말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_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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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김한민, <아무튼, 비건>, 위고, 2018.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