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 <아무튼, 비건>을 읽고: 채식은 라이프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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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완벽한 비건이 되기는 어렵지만 비건적인 삶을 실천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도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부모님과 식사 횟수가 잦았던 20대 초반까지 나는 나물 반찬, 각종 김치류, 콩자반, 멸치볶음과 김, 오징어채, 두부, 생선 정도를 곁들인 식단에 익숙했다. 육류는 가끔씩 삼계탕, 소불고기를 먹었고, 삼겹살은 가족이 다 같이 모여 한 달에 한 번 구워 먹을까 말까였는데 그마저도 한 근 정도면 여섯 식구가 먹기에 적당하거나 남을 때도 있었다. 피자, 햄버거는 정말 특별한 날에 졸라서 겨우 먹었는데 이제 직접 요리를 하다 보니 가족의 식단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은 엄마의 정성은 정말 대단했던 거였다.
대학교를 입학하면서 외식의 빈도가 급격히 늘었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육류 섭취량은 더 늘어났다. 점심에는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 각종 햄과 소시지가 들어간 부대찌개, 회식 때는 고기가 단골 메뉴 아닌가. 나는 별로 고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언젠가 내가 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고서 맛있게 먹는다고 생각을 하신 건지 업무가 힘들 때면 팀장님은 ‘오늘 뭐 먹을까? 우리 00 씨, 고기 좋아하지, 고기를 먹으러 가자.’라며 고기를 사주곤 하셨다. 그러고 보면 나 스스로도 고기를 좋아하는 것도 같고 아닌 것 같기도 했지만 이후에 팀장님이 메뉴를 정하라고 하시면 무난하게 ‘고기를 먹으러 가요.’라고 말씀을 드리곤 했다. 지금의 남편인 남자 친구와 연애를 하고부터는 그의 말마따나 1일 1 고기가 당연한 건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는 햄버거와 피자, 치킨을 너무나도 좋아했고, 집밥을 먹을 때도 최소한 반찬으로 스팸 구이나 달걀프라이라도 있어야 했다.
한마디로 육류 섭취가 너무 과해졌다는 거다. 그만큼 고기 위주로 식사를 하기에 좋고,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순두부찌개, 두부 구이 등 두부 요리를 예로 들어보자. 우선 주변에서 삼겹살 구이, 돼지 껍데기 구이, 차돌박이 구이, 곱창 등 고기를 파는 음식점은 흔한데 순두부찌개 등 두부를 메인으로 하는 음식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외식을 할 때는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접근성이 좋은 고깃집을 가게 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고기 위주로 식사를 하다 보니 이미 단백질 섭취는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굳이 두부를 직접 요리해서 먹을 필요성까지 느끼지는 못했다. 회사에서 고된 업무를 마치고 집에 오면 잠깐 마트에 들러 두부를 사 오는 일조차 버거운 ‘일’이 된다. 결국, 외식을 하거나 밥과 달걀프라이, 참치김치찌개, 라면, 아니면 고기를 구워서 최대한 간편하게 저녁 식사를 해결하곤 했다.
일련의 나의 경험을 정리하자면 바쁜 현대 사회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비건적인 생활을 하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고기는 냉동실에 보관할 수 있고 달걀, 각종 유제품 류의 유통 기한은 두부, 채소 등의 유통기한보다 긴 편이다. 채식을 하려면 마트에 자주 가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조리 과정도 육류가 훨씬 간편한 편이다. 즉, 간단하나마 채식 요리를 직접 하기에는 체력과 시간이 부족하고, 외식을 하거나 비건 음식을 구매하기에는 근처에서 비건 관련 식당이나 상점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회사는 회식 문화와 점심에 식사를 같이 하는 문화가 있고, 비건에 관한 이해도가 매우 낮은 상황이기 때문에 여러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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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건적인 삶을 시도를 해보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나 같은 경우에는 과거의 식단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20대 초반까지는 적어도 식생활에 있어서는 육류 소비량이 적었는데 고기 섭취가 늘어난 지금보다 그때가 여러 가지로 더 좋았던 것 같다. (물론 너무 옛날이라 기억이 미화되었거나 10대~20대 초반 때라 고기를 먹든, 채소를 먹든 체력이나 건강 상태가 무조건 지금보다 좋았을 수도 있다.) 고기 위주의 식사를 하게 된 과정을 돌이켜보니 사회생활에 따른 여러 외부 요인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과했던 것을 줄인다고 생각하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어 보인다.
고기를 제외한 음식을 떠올려 보니 생각보다 너무나도 많았다. 비건적인 삶은 특정 음식을 거부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간편하게 고기를 먹느라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여러 음식들에 관심을 갖게 돼 식단의 다양성을 늘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약간 번거로울 수 있지만 생각해 보면 매일 먹는 음식은 거의 비슷하지 않은가. 요새는 인터넷 쇼핑으로 물건을 구매하기 워낙 좋은 환경이다. 평소에 먹던 고기 식단을 다른 식단으로 대체하고, 주변 마트에서 구할 수 없는 재료는 미리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는 등의 일련의 습관을 들여놓으면 될 것 같다. 그래서 비건을 단순히 고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습관(라이프스타일)’이자 문화라고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비건 음식이 맛이 없었다면, 단지 몸에 좋고 윤리적이라고 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_86쪽
동양식은 원래부터 풍부한 채식 옵션을 자랑한다. 동양인인 우리는 축복받은 셈이다. 지금은 동양식도 육식 위주로 바뀌긴 했지만, 기본은 채식 기반이므로 비건 버전으로 만들기가 쉽다. 한식, 인도식, 네팔식, 베트남식, 태국식, 레바논식, 에티오피아식 모두 이에 해당한다. 특히 한식의 다양한 김치, 나물, 전, 사찰 음식 레시피는 비건에게 축복이나 다름없다. _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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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의 <아무튼, 비건>을 읽고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과 깨우침을 얻었다. ‘비건’에 관한 관심이나 이해도가 아예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나에게 비건에 관한 그의 모든 주장과 의견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비건적인 삶을 추구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결국 동물, 자연이라는 타자, 비건이라는 타자를 어떻게 나의 삶과 ‘연결’을 해서 다양성을 존중하느냐의 문제와도 연결이 된다. 책을 읽는 동안 최근 전 세계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는 배타성과 다양성, 각종 차별과 상대성에 관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내가 비건에 관해서 읽은 첫 번째 책이다. 비건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환경 문제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이해를 했다. 하지만 통곡물, 콩과 식물, 채소, 씨앗 및 견과류 등이 고기를 섭취할 때 얻는 단백질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는 아직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미 스팸을 보면 아기돼지 삼 형제의 얼굴이 떠오른다. 주말 저녁에는 도저히 집에서 요리를 할 힘이 없어서 고민 끝에 근처의 베트남 쌀국수 음식점을 갔다. 버섯, 새우, 오징어가 들어간 해산물 쌀국수를 먹었는데 그렇게 좋아하던 새우 조차 별로 맛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경우에는 고기 먹는 양을 확연히 줄이거나 먹지 않는 게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건강적인 측면에 관해서는 다른 비건 관련 책이나 육식을 옹호하는 주장을 담을 글이나 책, 식품 영양에 관한 책 등을 읽으면서 지식을 보완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건의 목적은 백 퍼센트를 이루는 데 있지 않다. 지구와 동물들에게 끼치는 고통을 최소화하고 더 건강하고 윤리적인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데 있다. (중략) 이런 작은 행동들 없이 이루어진 사회 변화는 없었다. 152쪽
나의 이런 변화를 부모님이 아신다면 참 유별나다고 생각하실 것 같다. 아빠는 아마도 무엇이든 맛있게 먹으면 건강에 좋다고 하실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시작이 반이고, 작은 변화가 모여서 결국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 ‘채식주의’라는 개념이 낯설 수는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어릴 때 안 먹던 음식을 먹기도 하고, 먹던 음식을 안 먹기도 하는 것처럼 음식 취향은 변화하기 마련이니까. 음식 취향이 변했다고 생각하면 다른 이들이 나의 이런 생활양식을 이해하기가 좀 자연스러울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시작될 때 인용된 문구를 발췌한 내용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마도 작가가 이 책을 쓴 이유가 이 짧은 문장에 함축되었으리라.
이 책은 타자에 관한 책이다. 한 편의 시 같은, 철학자 레비나스의 말로 시작해보자.
참으로 사람다운 삶은
그냥 존재함의 차원에서 만족하는 조용한 삶이 아니다.
사람답게 사는 삶은
타자에 눈뜨고 거듭 깨어나는 삶이다. _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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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김한민, <아무튼, 비건>, 위고, 2018.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