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납치를 막으려고 가짜 공항을 지었다고?

<플레인 센스>, 하이재킹과 항공안전보안의 간략한 역사

by 스마일펄

“All aviation regulations are written in blood(모든 비행규정은 피로 쓰였다)”


과장이 아니었다. 오늘날 비행기를 탑승할 때 까다로운 출입국 절차는 당연한 일이다. 탑승권을 발권할 때부터 신분 확인을 목적으로 기본적인 질문을 받는다. 수화물로 각종 배터리와 전자기기는 금지되며, 기내 반입 물품에도 제한이 있다. 탑승객은 이런 법규를 각종 항공 사고를 방지하는 안전에 직결된 문제라고 인식해 거부감 없이 잘 따르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처럼 전수보안검사가 정착되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심지어 한 해에 50건의 하이재킹이 발생을 했는데도 정치인들과 항공사는 어떻게 하면 전수보안검사를 미룰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대안으로 그저 웃픈 황당한 방안이 제시되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각종 법규가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 예전도 오늘날과 비슷했지만 결국 올바른 방향으로 진전되었다는 점에서 위안이 된다. 다시금 당연하더라도 세상에 거저 주어지는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처럼 엄격한 항공보안정책이 마련되기까지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대한항공 김동현 기장이 쓴 <플레인 센스(웨일북, 2020.06.01)>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1. 미 서부 개척 시절, 강도들은 마차가 자주 다니는 길목을 노리고 있다가 지나가는 마차를 추격해 노략질을 했다. 강도들은 달아나는 마부 옆에 따라붙어 권총을 머리에 들이대고 “Hi, Jack(영미권의 가장 흔한 이름인 John의 애칭)”하고 협박을 했다. 오늘날 비행기 납치를 일컫는 하이재킹Hijacking 단어의 유례다.


2. 1950년대 초반까지 공항 터미널은 기차역과 비슷한 구조였다. 승객들은 티켓을 구입한 후 비행기가 서 있는 주기장까지 걸어가서 탑승했다. 공항 당국도 항공사 측도 승객의 소지품은 물론 신분증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무기를 숨기고 탑승해 하이재킹을 시도할 수 있었다.


68755020_10156250847220951_834482110906499072_o.jpg 1962년 호주 퍼스공항에 주기되어 있는 TAA B727기. 승객들은 항공권을 구입한 후 각자 비행기가 주기되어 있는 곳으로 걸어가서 탑승했다. (본문 25쪽 사진)


3. 1960년대 고전적 하이재킹을 일반인들은 낭만적 이벤트 정도로 생각했다. 테러범들은 승객의 불편을 초래했지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목적은 정치적 망명이었고 비행기 납치는 수단이었다. 반전운동과 히피문화가 주를 이루고 있던 60~70년대 대중에게 하이재킹은 테러라기보다는 ‘외로운 정치 혁명가와의 우연한 동행’이었다.

당시 북미의 하이재커들은 비행기를 납치한 후 대부분 최종 목적지로 쿠바를 선택했다. 카스트로가 미국과의 모든 교류를 봉쇄했기 때문에 일단 쿠바에 내리기만 하면 미국으로 송환될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종실을 장악한 테러범이 기내 방송으로 “이 비행기는 우리가 접수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을 쿠바로 모시겠습니다”라고 하이재킹을 선언하면, 승객들은 오히려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쿠바산 시가나 납치범들의 요구 조건을 주제로 잡담을 나누었다. 승객은 신변의 안전을 걱정하지 않았다.


4.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까지는 말 그대로 하이재킹의 황금시대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하이재킹의 배경에는 남미의 공산혁명과 중동의 오랜 민족분쟁이 도사리고 있었다. 조직적으로 테러 훈련을 받은 납치범들이 공중에서 아무런 대비가 없는 비행기를 납치하는 것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를 납치하는 것보다 쉬웠다.

하이재킹의 효과는 컸다. 테러범들은 납치한 승객들을 인질로 동료의 석방이나 막대한 돈을 요구했고, 수백 명의 인질을 희생시킬 수 없었던 당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납치범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특수부대를 투입한 진압 과정에서 애꿎은 민간인과 군경들이 희생됐다.


5. 납치범은 승무원과 승객을 단번에 제압할 수 있는 무기가 없으면 비행기를 장악할 수 없다. 즉, 무기가 기내로 반입되는 것만 막으면 모든 하이재킹을 방지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항공 당국과 항공사 모두 이 간단한 명제를 이해하고 있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6. 모든 탑승객의 신원과 소지품을 일일이 검사하는 일은 수백만 달러의 비용이 소요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항공 당국은 쉽게 전수보안검사의 시행을 결심하지 못했다. 항공사들은 전수보안검사를 시행하면 승객들이 까다로운 보안검색을 불쾌하게 여겨 비행기 대신 열차나 자동차를 이용할까 봐 우려했다. 1970년대에만 자그마치 50건이 넘는 하이재킹이 발생했지만 항공사들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전수보안검사의 시행을 미룰 수 있을지에만 쏠려 있었다. 항공사들은 정부가 전수보안검사를 법제화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로비를 했다.


7. 정치인들과 항공 당국은 전수보안검사라는 확실한 대책을 외면하고 여러 가지 대안을 발표했다. 이 중에는 쿠바와 인접한 플로리다에 가짜 하바나 공항을 건설하는 방안도 있었다. 비행기가 납치범의 요구대로 쿠바로 가는 척하다가 플로리다에 지어진 가짜 하바나 공항에 착륙한다는 아이디어였다.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문제라 실제로 시행이 되지는 못했다. 비행기 제작사는 기내에서 승무원이 하이재킹을 제압할 수 있는 장치들을 고안을 했다. 예를 들어, 객실 좌석에 독약이 든 주사 장치를 삽입한 인젝션 시트를 창작하는 것이었다. 테러범이 앉으면 승무원이 기내 서비스를 하는 척하면서 장치를 작동시켜 테러범을 제압할 수 있는 장치였다. 납치범을 화물칸으로 추락시켜 격리할 수 있는 부비트랩 플로어도 고안했다. 객실 아래 화물칸에 감금실을 만들어 놓고, 테러범이 조종실 문 앞에 서 있을 때 기장이 버튼을 누르면 바닥이 꺼져 테러범을 감금실로 추락시킬 수 있는 장치였다.


8. 하이재킹이 무고한 시민들에게도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당국은 더 이상 탑승객들에 대한 전수보안검사를 미룰 수 없었다. 당국은 엄청난 예산을 들여 국제공항을 중심으로 엑스레이 검색대와 보안 요원을 배치했다. 전수보안검사에 대한 승객들의 거부감도 항공사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크지는 않았다.




책의 앞부분에 실린 하이재킹과 항공안전보안의 역사 이야기다. 경이로운 ‘비행 인문학’이라는 부제처럼 흥미진진한 새로운 이야기를 찾고 있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오늘날 항공기의 양대산맥인 보잉과 에어버스의 조종 차이와 설계 철학은 물론이고, 랜딩기어베이에 숨어 태평양을 건넌 소년, 항공사별 독특한 콜사인, 각종 비행기 사고 발생 시 벌어지는 일들, 조종사의 입장과 태도 등 다채로운 에피소드를 만날 수 있다. 항공산업은 최첨단 과학기술이 집약돼 있기에 현대 기술과 과학의 발전을 정리한 책이기도 하다. 앞으로 비행기를 타게 될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면서 공항 출국부터 비행, 입국까지 지루했던 시간이 즐거워질 것 같다.



1. 본문 17쪽 / 2. 본문 25쪽 / 3. 본문 26쪽 / 4. 본문 31쪽 / 5. 본문 42쪽 / 6. 본문 42~43쪽 / 7. 본문 43쪽 / 8. 본문 58쪽 에서 발췌


김동현, <플레인 센스>, 웨일북, 2020.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