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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ug 17. 2021

"I know you can do it"

난생처음 스쿠버다이빙

평화로운 코타키나발루 아침에 나 혼자 긴장해서 몸이 굳었다. 오늘은 난생처음 스쿠버다이빙을 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물안경을 쓰고 물 위를 둥둥 떠다니며 바닷속을 구경하는 스노클링은 해봤지만, 스쿠버다이빙을 앞둔 긴장감은 달랐다. 조심성 많은 겁쟁이가 과연 산소통에 의지해 바닷속으로 무사히 잠수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밴을 타고 다이빙 포인트에 도착했다. 수영복 위에 잠수복을 입고 오리발을 착용하니 제법 잠수부 티가 났다. 물속에서는 음성 언어로 소통할 수 없어서 의사 표현을 하는 수신호를 배웠다. 오케이(Okay) 수신호는 ‘괜찮다’라는 의미로, 엄지와 검지를 붙여서 동그란 원을 만들고 나머지 손은 최대한 펴서 표현한다. 강사님이 다이빙 중에 오케이 표시로 괜찮은지 물어보면, 나도 오케이 모양으로 괜찮다고 화답하느라 가장 많이 사용한 수신호이다.


손바닥을 아래를 향하게 손을 편 뒤 손끝을 번갈아 위아래로 흔들면, ‘문제가 있다’라는 표시이다. 강사님이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뻗어서 더 내려가도 되는지 물어볼 때, 손바닥을 흔들고 손가락 끝으로 귀를 가리켰다. 이퀄라이징(equalizing)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럼, 강사님은 알겠다는 의미로 오케이를 보내고 우리는 수심을 유지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강사님이 다시 아래로 향해도 되는지 묻는 식이었다.


지상에서 ‘좋다’라는 의미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엄지척은 물속에서는 다이빙을 마치고 위로 올라가자는 의미이다. 물속에는 물속의 문법이 있으니 수신호를 잘못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교육, 복장, 건강 질의 답변 등 모든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실전 다이빙을 할 시간이다. 우선은 바닥에 발이 닿는 연안에서 숨쉬기 훈련을 했다. 코로 숨을 쉬는 물 밖과 달리 물속에서는 산소통에 연결한 관을 물고 입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야 한다. 익숙한 숨쉬기를 버리고 새로운 호흡법을 익히는 과정이다. 친구는 코가 없다고 생각하라며 조언했지만, 물속에서 자칫 잘못하면 바로 숨이 막힌다고 상상하자 겁이 났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얼굴과 몸이 바닷속에 잠기기 무섭게 소스라치게 놀라서 수면 위로 계속 고개를 내밀었다. 수경은 헐렁한지 물이 자꾸 들어와서 짠 기운에 눈도 매웠다.


대체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스쿠버다이빙은 한번 꼭 해 볼 만하다며. 이게 뭐가 재밌다는 거야. 급기야 스쿠버다이빙을 적극적으로 추천한 지인들을 원망했다. 더는 못하겠다는 생각으로 잠수 시도를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나 빼고는 다들 잘하는 것처럼 보여서 더욱 자신감을 상실했다. 스쿠버다이빙을 하지 않는다고 인생이 망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영 소질이 없다고 결론짓고 포기하려는데 베테랑 강사님의 단호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Don't be afraid. I know you can do it. You are courageous!"

(두려워하지 마. 네가 할 수 있다는 걸 난 알아. 넌 용감하잖아!)


아직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베테랑 강사님은 포기하려는 내 속마음을 어느새 눈치채고 있었다. 타인의 믿음과 확신에 찬 말 한마디가 가진 힘이 이렇게 컸던가. 일순간 ‘맞아. 난 용감한 사람이지. 나는 할 수 있어’라고 용기가 불쑥 솟았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잠수를 시도했다. 1, 2, 3, 4, 5, 6, 7, 8초 …… 물속에 잠긴 채로 입으로 숨을 뱉고 들이마시고, 숨을 뱉고 들이마시기를 반복했다. 수경에 물이 차면 이번에도 차분하게 수경 아래쪽을 들고 코로 숨을 ‘흥’하고 힘차게 불어넣어 물을 뺐다. 귀가 아프면 이퀄라이징 하도록 기다려 달라고, 저쪽에 물고기 떼가 이동하고 있다고 강사님과 수신호로 소통했다. 어설프지만 연습 다이빙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못 할 줄 알았는데, 내가…… 해냈다.




연습 다이빙을 마친 뒤 잠시 쉬다가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아갔다. 입수하려고 보트가에 걸터앉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하나, 둘, 셋, 풍덩, 허리를 접어 발끝을 머리 뒤로 넘겨서 뒤로 360도를 회전해 입수했다. 나는 지금 지구상 어디에 있을까. 아래로 아래로 나아가도 결코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 위에 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고개를 수면 아래로 향하고 몸과 팔, 다리를 수평선 위에 나란히 띄운 뒤 천천히 물고기들의 세상 속으로 나아갔다.


화창한 날씨에 잔잔한 바다도 공기와 맞닿은 수면은 사알짝 파도가 일렁이기 마련이다. 반면, 수면 아래 그 자체로 완성된 또 다른 세상, 바닷속은 고요하고 평온하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알록달록한 빛깔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긴장을 풀고 아래로, 더 아래로 물고기와 산호, 해초들의 세계에 문을 두드린다. 수영장에서 온몸에 힘을 풀고 손으로 무릎을 감싼 채 물속에 머무는 순간을 좋아한다. 영화 <그래비티(알폰소 쿠아론 감독, 2013)>에서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 扮) 박사가 우주선에서 마치 태아처럼 몸을 웅크린 장면처럼 말이다. 바닷속 깊이 내려갈수록 내가 작은 점에도 미치지 못한 세포에 불과했던 태고의 시간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멀리서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물기둥을 발견했다. 가까이 가보니 물기둥이 아니라 수천 마리, 아니 수만 마리 물고기가 떼를 지어 힘차게 유영하고 있었다. 마치 한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수면을 투과해 굴절한 태양빛이 조명처럼 비추는 빛나는 은빛 물고기 떼는 경이로웠다. 지상이었다면 처음 보는 장관에 아마도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물고기들은 어디를 향해 쉴 새 없이 헤엄치는 걸까. 만일 물고기들이 뭍에서 인간을 본다면, 우리도 전부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일까.


물길을 가르며 갈 길을 재촉하는 바다거북도 만났다. 내가 계속 다른 곳만 쳐다보자 강사님이 어깨를 툭툭 치며 손가락으로 바다거북을 가리켰다. 얼마나 크다고 해야 할까. 물속이라서 거북과의 거리나 거북의 크기를 제대로 가늠할 수는 없지만, 직접 본 바다거북은 듬직한 크기였다. 용궁에서 오는 길이니? 라고 물을 뻔했다(별주부전 등장인물은 자라이지만). 우리를 봤는지 순간 깜짝 놀라더니 고개와 네 발을 등 껍데기로 쏙 집어넣고, 배가 위로 오도록 뒤집어졌다. 돌멩이나 부유물로 위장해 물살을 따라 깊은 바닷속으로 흘러갔다. 바다거북은 깊고 깊은 새카만 절벽으로 사라져서 우리는 쫓아 갈 수 없었다. 크고 낯선 생물을 피해서 바다거북은 바다거북의 세상으로 숨어버렸다.


경이로운 물고기 떼


수만 마리 물고기 떼




삶을 버겁다고 느낄 때 처음 스쿠버다이빙을 했을 때를 떠올린다. ‘이 고비만 넘기면 돼’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기운을 낸다. 물속에서 호흡이 엉켜 숨 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고요한 바닷속 세상에서 경이로운 물고기 떼를 눈앞에서 마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헤엄치는 바다거북을 만나는 가슴 벅찬 감동을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나는 겁(조심성)은 많지만 강사님의 말씀처럼 용감한 사람이다. 언뜻 같은 것 같은 다른 말을 혼동해서 나 스스로 가능성을 갉아먹지는 않는지 자신을 의심하고 돌아보고는 한다.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강사님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말 한마디 덕분에 용기를 내 마지막으로 한번 더 잠수를 시도할 수 있었다.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신 강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퀄라이징(equalizing): 압력평형. 물속에서 귀 안쪽 압력과 바깥 압력을 동일하게 맞추는 것.


인어공주의 한 장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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