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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pr 14. 2022

나는 왜 유독 스위스 여행을 자꾸 곱씹을까

자유와 따뜻함을 향한 갈망

심리상담 초반에 선생님께서 나는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아마도 어린 시절 아버지가 술 먹고 폭언하는데 어머니는 방치하는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한 나만의 전략이었을 것이라고. 집을 벗어날 수는 없고 내 감정을 살펴주는 사람도 없으니 부정적인 감정을 빨리 털어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교 가고, 공부하고, 생활해야 했을 것이라고. (그래서 부모로부터 지나치게 독립적이고, 평균치보다 과하게 긍정적인 성향으로 성장했을 것이라는 말이 이어졌다.) 당시에는 부정적인 감정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지적이 무슨 말씀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내 안의 불안, 분노, 슬픔,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그때그때 잘 직면하고 있다.


무슨 이야기가 이렇게 이어졌는지는 가물가물한데 상담을 거의 마칠 때 즈음 ‘선생님, 저는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를 참 좋아하지만 만일에 다시 태어나면 미국 캘리포니아나 호주처럼 1년 내내 따뜻하고 햇빛이 내리쬐는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 그럼, 제 차분한 성격도 좀 더 밝고 활달해질 것 같거든요. 저는 추운 게 너무 너무 싫어요’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 속마음을 가볍게 툭 털어놓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어쩌면 그것도 진주 씨의 결핍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네요’라고 웃으며 말씀하시며 상담을 마무리했는데,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문득, 코로나가 유행하기 직전 해인 2019년 가을에 동생과 같이 떠난 스위스 여행이 떠올랐다. 나는 왜 유독 그 여행을 자꾸 곱씹을까. 왜 감정적으로 힘들고 지칠 때마다 동생과 같이 찍은 스위스 여행 사진을 나도 모르게 꺼내 보면서 위로받고 미소 지을까. 아, 그 순간이 행복했기 때문이구나. 나는 왜 그 여행을 행복했다고 기억할까. 이것이 내 결핍과도 관련 있을까. 스위스 여행에서 느낀 행복감은 내가 캘리포니아나 호주에서 살고 싶은 이유와도 맞닿아 있었다.


가을의 스위스는 늘 화창하지는 않았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여행하는 열흘 중 절반은 눈부시게 화창했고 나머지 절반은 꿉꿉하게 흐리고 비가 온 날도 제법 있다. 우리가 패러글라이딩을 하려고 피르스트에 오른 날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란색 물감을 양동이로 쏟아낸 듯 하늘이 새파랬다. 스위스에서도 손에 꼽는 맑은 날이었다. 감히 완벽하다고 말하고 싶은 날씨였다.


패러글라이딩 약속 시간을 기다리면서 산 정상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우리는 건너편 드높은 산 봉우리와 푸르른 하늘이 보이는 한적한 너른 잔디밭에 자리 잡고 누웠다. 왜 그 자연으로 여행 가면 찍는 몇 가지 상투적이 사진이 있지 않은가. 인터넷에 사진작가들이 찍은 멋진 풍경 사진이 즐비한데도 꼭 어설픈 솜씨로 스마트폰으로 직접 풍경 사진을 찍어서 소장하고. 때로는 이 끝부터 저 끝까지 파노라마 촬영도 하고. 가끔은 유쾌한 점프컷도 담는다. 이날 우리는 풀밭을 배경 삼아서 나란히 누운 자세로 운동화 컷을 남겼는데, 여행에서 찍은 수백 장의 사진 중에서 유독 이 진부한 사진을 볼 때면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든다.


따뜻한 햇빛, 딱 기분 좋을 만큼 솔솔 부는 바람, 향긋한 풀내음과 탁 트인 시야, 조금 떨어진 길에 바흐알프제(호수)로 향하는 적당한 인파, 서로 존중하고 마음이 통하는 소울메이트 동생까지. 그곳에서 나는 갈망하는 온전한 자유와 따뜻함을 느꼈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 안전을 위협하거나, 나에게 지나친 부담감의 굴레를 씌워 압박하거나 의존하는 모든 가족들은 없었고, 내가 불안감을 느낄 요소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억압하고 소유물처럼 지배하려 해서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오히려 외롭게 하는 이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더 이상 외롭지도 않았다. 오로지 충만함 그 무언가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이 사진을 자꾸 꺼내 본다는 말은 나에게 짙은 외로움의 그림자가 엄습해 있고, 나 스스로 자유롭지 않고 심각하게 억압받고 있다는 의미이다. 나에게 캘리포니아나 호주는 따뜻함이고 자유를 의미하는 셈이니까 상담 선생님께 이처럼 말했을 때 내 마음은 한겨울 시냇물보다도 시리고 오랜 속박 끝에 지쳐서 너덜너덜 헤져서 큰 구멍이 나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한편, 나는 겁과 조심성 많기로 따지자면 거의 일인자에 버금가는데 혼자서도 훌쩍 멀리 해외로도 여행을 잘 떠나서 나 스스로도 의아했다. 여행은...... 그때그때 내 안에 존재하는 결핍을 채우는 내 삶을 빛내는 윤활유였다.




뿌리 깊은 내면의 결핍을 이해한 뒤로 예전만큼 여행에 집착하지 않는다. 도시에 살다 보니 한적한 자연을 향한 그리움을 늘 존재하지만, 자유와 따뜻함은 도시에서도 때때로 나만의 방식으로 채우려고 하고 있다. 호기심이 많아서 새로운 나라나 도시에 가는 일은 늘 설레고 기분 좋은 일이긴 하지만. 더 이상 다시 태어난다면 캘리포니아나 호주에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가 갈망하는 자유와 따뜻함만이 존재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곳에도 속박과 구속, 불합리함은 도처에 널렸을 테니까. 그래도 스위스 피르스트는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바흐알프제로 가는 길은 마치 다른 세상에서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든다던데. 지난 여행에서 패러글라이딩 약속 시간 때문에 시간이 짧아서 바흐알프제에 가보지 못한 아쉬움이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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