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에 대한 생각
2007년 가을부터 6개월 간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영국 런던에 머문 적이 있다.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 해외여행이 흔한 시대이기도 하고, 한편 외국에서 6개월을 자유롭게 보내는 시간을 누구나 누릴 수 있지는 않기에 굳이 내세우는 경험은 아니다. 교육비, 체류비, 생활비 등에 몇 천만 원 비용을 들인 것이 무색하게 여전히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부끄러운 마음에 감추고 싶은 경험에 가깝다. 영어는 여전히 내 콤플렉스이지만 최근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20대 초반 반년 간 해외 경험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느꼈는지 문득 깨달았다.
대도시 런던은 중앙부를 중심으로 6개 존(zone)으로 구분된다. 런던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풍경들, 빅벤과 국회의사당 옆으로 템즈강이 흐르고, 타워브릿지가 보이고, 버킹엄 궁전에서 근위병 교대식이 펼쳐지는 관광지는 대부분 완전한 중심지인 1존에 있다. 며칠 관광을 목적으로 런던을 갈 경우 1존에서 벗어날 일은 거의 없을 만큼 런던 중심지에는 보고 즐길 거리가 넘쳐난다. 내가 6개월 간 머문 곳은 2존의 리그린(Lee Green)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지역인데, 1존에 가려면 보통 리그린 역에서 기차를 타고 차링크로스(Charing Cross) 역이나 워털루(Waterloo) 역으로 가고는 했다.
런던에 도착한 첫날 가장 새로운 풍경은 주택 사이사이마다 녹지 즉,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처음 머문 숙소는 캐리비안계 흑인 집주인 언니가 혼자 살고 있는 가정집이었다. 집주인은 1층을 사용하고 내 방은 2층이었는데 방에 들어가자마자 환기를 하려고 창가에 다가서니 창밖으로 푸르른 잔디밭이 내려다보였다. 런던에는 생각 외로 많은 유색인종이 살고 있다고도 알게 되었다. 내가 처음에 한두 달 거주한 지역은 집주인처럼 캐리비안계 흑인이 모여 사는 곳이었는데, 처음에는 이를 알지 못하고 좀 무서워했었다.
가장 낯설고 적응이 필요했던 건 ‘버스’였다. 우선, 런던 버스는 정류장에서 정차 라인에 딱 맞춰서 서고, 승객을 다 태우면 바로 출발했다. 사실 당연한 소리이다. 한국에서 막 출발하려던 버스가 뒤에서 버스를 잡아타려고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승객이 있으면 몇 초 기다렸다가 닫았던 문을 다시 열어서 태우고 가거나(물론, 나도 그 뛰는 승객 중 한 명이었고), 버스 여러 대가 정류장에 들어오면 혹여나 뒤쪽에 대기하는 버스가 승객을 태우지 않고 가버릴까 싶은 불안한 마음에 굳이 두 번째, 세 번째 뒤에 서 있는 버스까지 직접 걸어가서 버스에 오르고는 안심하는 데 익숙했다. 그런데 런던 버스는 내가 뒤에서 버스를 잡아타려고 헐레벌떡 뛰어오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승객을 다 태우면 지체하지 않고 바로 떠나버렸다. 사실,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대중교통 원칙을 준수해서 버스를 운영하는 일은 버스기사가 해야 할 당연한 의무이다.
경기도민인 나는 처음 본 런던의 저상버스도 새로웠다. 힘겹게 높은 층계 두 칸을 오르지 않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버스에 오를 수 있었고, 바닥이 낮은 만큼 승차감도 훨씬 안정적이었다. 런던에 도착한 지 사나흘 즈음 지났을까. 갑자기 버스기사님이 운행을 멈추고 앞문을 지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무슨 일이지? 싶었는데 기사님은 휠체어를 탄 승객이 버스에 오르도록 돕고 있었다. 승객들(런던 시민)도 익숙한 지 휠체어를 탄 승객이 앞쪽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각자 자리를 이동했다. 휠체어 승객이 타느라고 버스가 지체된다고 불만을 터뜨리거나 얼굴을 찌푸릴 듯하지도 않았고 그냥 다들 ‘그런 가 보다’하는 분위기였다. 나도 런던에 살면서 이런 상황이 자주 펼쳐지다 보니 이내 익숙해졌다. 갑자기 버스기사님이 운행을 멈추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타시는가 보다. 그냥 그런 가 보다’하고 어느새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최근 출근 시간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지하철에서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해 달라며 시위를 벌인 일을 두고 전 국민적인 갑론을박이 일었다. 한 정치인이 장애인들의 행동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가장 최근 시위가 제일 이슈가 되었지만, 장애인의 이 같은 시위는 벌써 몇 번째 반복되고 있었다. 바쁜 출근 시간에 갑자기 누군가가 아무 이유도 없이 생떼를 쓰면서 지하철 운행을 방해한다면 나 같아도 짜증이 나고 화가 치밀 것 같다. 실제로 ‘왜 죄 없는 시민들을 볼모로 잡아서 생계 활동에 지장을 주느냐’, ‘굳이 바쁜 출근 시간을 택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시위 방법이 잘못되었다’라는 의견도 많은 듯하다.
나는 생각이 좀 다른데 우선 이들은 무작정 생떼를 쓰는 아무나가 아니다. 나와 똑같은 시민으로서 탈 권리를 보장해달라며, 시민으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고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래서 생떼를 쓰는 무례한 아무나를 마주쳤을 때와 달리 짜증도, 화도 나지 않는다. 아마도 이들은 몇 년 어쩌면 몇십 년째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해 달라며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왔을 것이다. 변화가 없거나 더디고 더딘 높은 현실의 벽을 자각하고 마침내 좀 더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고자 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선택한 시위 방법이 출근하는 승객에게 불편함을 준다고 알면서도 욕먹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지금은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선택한 방법일 것이다.
장애인들의 행동을 비판하는 여러 의견 중에 ‘왜 죄 없는(또는 선량한) 시민들을 볼모로 잡아서 생계 활동에 지장을 주느냐’는 말이 유달리 슬프게 다가왔다. 우리가 선량한 시민이면 그럼, 시위를 벌인 장애인은 ‘죄지은 장애인’라는 말이라서 가슴이 아팠다. 왜냐하면 나는 이 문제를 비장애인 vs 장애인의 대립 구도가 아니라 모두 같은 ‘시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약자에 속한 시민의 권리를 되찾도록 지지하고 응원해야 한다는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비장애인으로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퇴근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같은 시민인 장애인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퇴근하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장애를 가졌기에 사람들(비장애인)이 불편할까 봐 또는 외부 활동을 하기에는 어렵고 불편한 상황이 많아서 집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이들도 집에 머물지 야외 활동을 할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이 시위 현장에서 직접 불편을 겪은 승객은 아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 현장에 있지 않은 외부자의 입장에서는 장애인이 벌인 시위가 ‘어쩔 수 없는’ ‘절박한’ 시위로 느껴진다.
우리나라가 경제나 제도, 인프라, 문화 콘텐츠 측면에서는 여느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이미 역량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잘 갖춰진 하드웨어에 비해서 소프트웨어 즉, 시민의식은 여러 측면에서 과거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아이, 장애인, 동물이 행복한 나라가 평등지수가 높고 누구나 살기 좋은 나라라는 말에 공감한다. 우리나라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에 있는데 하드웨어인 경제 발전과 달리 소프트웨어인 시민의식 변화는 더디기만 한 것 같다. 그래서 여러 뉴스를 볼 때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익숙하게 버스를 타던 15년 전 런던 생활이 자꾸 생각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