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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Feb 17. 2023

대물림되는 애정결핍과 불안정애착

'가스라이팅'에 취약해지는 이유

영화 <사도>에서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명한다. 영조 대신 정사를 맡은 사도세자가 대신들과 논의해 자율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면 영조는 ‘네가 뭘 알아서 마음대로 결정을 하느냐’라며 질책한다. 한편, 사도세자가 어떻게 결정할지를 물으면 ‘그만한 일도 혼자 결단하지 못하느냐’라며 다그친다. 사도세자는 자의로 결정해도, 타의로 물어봐도 영조 눈에는 전부 못마땅할 뿐이다.


호남지방에 비가 오지 않아 농사를 망치고 있다는 상소에 영조가 자신이 덕이 없어 그렇다고 하자 결국 사도세자는 전부 자신의 탓이라며 자학하고 만다.


“임금인 내가 덕이 없어서 비가 오지 않는데 그것을 왜 세자에게 묻는가.”

“아니다. 내가 대리청정을 하고도 비가 오지 않으니 다 세자인 내가 덕이 없어 그런 것이다.”


열등감과 변덕이 심한 아버지 영조와 마음이 여리고 효심이 깊은 아들 세도세자는 내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나는 솔직하고 수다스러운 아이였다. 어렸을 때 식구가 다 같이 저녁을 먹을 때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는 했다. 신이 나서 한참 얘기하고 있으면 무표정한 아버지는 얼굴이 더욱 굳어지더니


“밥 먹는데 계집애가 왜 이렇게 시끄럽게 떠드는 거야. 그만 좀 쫑알쫑알 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고, 식사 분위기는 일순간 초상집처럼 숙연해졌다. 엄마와 할머니가 계셨지만 어린 나를 대신해서 아버지에게 맞서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사람들은 아이들을 향한 아버지의 괴롭힘을 늘 방관하고 방치하고 회피를 일삼았다. 그 사람들이 아버지의 막무가내식 거친 태도를 문제 삼고 제대로 지적했다면 아버지의 일관적이지 않은 행동에 이처럼 깊은 혼란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 다음날 샐쭉해서 말없이 조용히 밥을 먹으면 아버지는 이번에는 헤실거리며 제멋대로 농담을 던지곤 했다.


“이거 완전 땡삐네, 땡삐. 입이 쭉 나와가지고.”


하지 말라고 불쾌하다는 의사표시를 해도 자신이 기분 좋은 날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어린 자식들의 감정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 기분이 좋은 날과 나쁜 날 제멋대로 표현하는 감정의 온도차는 너무 컸다. 자신이 버럭 화를 낸 말과 행동은 안중에도 없이 자식들이 왜 다른 가족처럼 살갑거나 다정하지 않은 지 불만을 표시했다. 이조차 성격이 모나고 유난스럽다며 전부 자식들을 탓했다. 엄마도 종종 내 예민함과 까다로움을 지적하며 자신의 우울함과 힘겨움을 내 탓을 하고는 했다. 집에서 내가 기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아버지와는 말하지 않고 피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 상황에서 왠지 모를 불편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그나저나 아버지 고향은 강원도인데 왜 틈만 나면 이 가족, 저 가족에게 땅벌의 경상도 사투리인 땡삐, 땡삐 해댔는지 모를 일이다.




이처럼 부모의 일관적이지 않은 양육 태도 속에서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불안정애착을 형성한다. 자신을 절대적으로 사랑한다고 믿는 부모에게 때때로 사랑한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나 행동을 경험하면서 혼란을 겪는다. 내면의 성장을 저해하는 거리를 둬야 할 미성숙한 부모에게 오히려 인정받고 온전히 사랑받고자 집착하게 된다.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당연한데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부모와는 거리를 두면 오히려 불편한 죄책감이 들게 된다.


어린 자식에게 부모는 세상의 전부이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부모가 정신적으로 공격하거나 상처 주거나 보호해야 할 때 방치하더라도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무한히 사랑한다는 믿음을 쉽게 저버리지 않는다. 아이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본능적으로 부모를 무조건 사랑할 수밖에 없다.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양육자인 엄마(또는 아빠)가 힘들어 보이면 위기 경보가 발동한다. 자신이 짐이 되지 않도록 부모의 기분을 살피고 자신의 욕구를 희생해서라도 부모의 기대를 맞추려고 한다. 부모에게 안정적인 사랑을 느끼지 못하니 부모가 자신을 떠날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불안감이 클수록 자신의 욕구는 감추고 더욱 순응하는 착한 아이가 돼 부모의 인정을 받고 기대를 충족하는 사람이 되는 데 집착하게 된다.


아버지가 술주정을 할 때 나는 무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한편, 엄마의 바람대로 술 마시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괴감에 빠졌고, 아빠의 바람대로 살가운 딸이 되지 못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최소한 주정하는 아버지가 불편하고 두려워 피해야 한다는 자각은 있었다. 반면, 동생의 경우 술 취한 아빠 앞에서 자신이 재롱과 애교를 부리면 아빠의 과격한 언행이 줄어들고 얼어붙은 집안 분위기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그 공포스러운 상황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고 했다. 둘 다 부모님과 불안정애착을 형성했지만 나보다 어렸던 동생은 아마도 유기불안도 있었던 것 같다.


만취한 사람은 상식적으로 피해야 하는데 불안정애착을 형성한 자식은 술 취한 부모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거듭 이해하려 한다. 애당초 이해불가인 영역인데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고 부모를 향한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이런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거의 항상 불안하고 긴장한 채로 살아간다. 타인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이해하고 기대에 부응하고자 과도한 에너지를 쏟기도 한다. 극도로 내향형인 아이들은 심지어 문제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 찾다가 자기를 부정하는 단계에 이르기도 하며, 극단적인 자기부정은 자해를 하거나 자살 시도를 하는 등 자기 파괴적인 행동에 이르기도 한다.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무서운 점은 어렸을 때 한 번 고착된 애착관계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부모와 유사한 유형의 사람과 관계를 형성해 비슷한 감정 상태에 처했을 때,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부모에게 대처하던 습관 방식 그대로 행동을 재현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서서히 내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더 이상 배려하지 않고 심지어 무시하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데도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해서 외면하고 방치한다. ‘아닐 거야. 분명히 나를 사랑한다고 했잖아. 무슨 사정이 있을 거야.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라며 괴롭히고 하대하는 상대방을 더욱 이해하고 맞추려고 한다. 상처 주는 왠지 모를 불편한 관계는 의심하고 멀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자꾸만 다가가려는 희한한 심리가 작동한다.


이제는 어른이라서 건강하지 않은 관계를 끊어낼 힘이 충분한데도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지 못한다. 비단 연인관계만이 아니라 직장 상사나 동료, 친구 등 가깝고 친밀한 관계에서 어느 순간 나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거나 공격할 때, 어렸을 때 생존을 위해서 부모에게 맞춰야만 했던 습관 그대로 몸을 바짝 낮춰서 행동한다. 더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나 상황이 자꾸만 그렇게 흘러간다.


친밀한 상대에게 순응하고 맞추는 데 익숙해서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말하거나 갈등을 감수해서라도 맞설 용기를 내지 못한다. 아예 이런 생각은 선택지에 없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부모와 비슷한 사람과 친밀한 관계로 엮였을 때 자존감 낮은 관계를 형성하는 행동 패턴은 자신이 부모와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형성했다는 현실을 직시하기 전까지 계속 반복된다. 타인의 마음에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해서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 소위 말하는 ‘가스라이팅’에 취약한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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