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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Feb 20. 2023

엄마는 아빠와 왜 이혼을 안 할까

왜 자식에게 술주정 하는 아빠를 이해하라고 강요했을까.

부모님과 배우자가 물에 빠졌는데 안타깝게 한 명만 구할 수 있다. 그럼, 누구를 구하겠는가? 이번에는 배우자와 자식 가운데 한 명망 구할 수 있다면 누구를 구하겠는가? 이런 비극에 처할 확률은 희박하지만 연인이나 부부간 결혼관과 가족관을 냉철하게 점검할 수 있는 질문이다. 자신이 부모에게 정서적으로 독립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고.


나라면 첫 번째 상황에서는 배우자, 두 번째 상황에서는 자식을 구할 것이다. 부모는 내가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배우자는 평생 책임지겠다고 선택한 관계이니 선택에 따른 의무와 책임을 다하려고 한다. 자식은 내 선택으로 태어난 ‘생명’이니 위험한 상황에서 세상 누구보다 최우선으로 보호하고 지키려고 한다.


가치관에 따라 대답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옳다, 그르다의 영역은 아니다. 충효사상이 지배적인 가치관이었던 조선시대에는 자식은 다시 낳을 수 있고, 아내도 다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 어떤 상황이라도 부모가 최우선이고, 처자식은 후순위이지 않았던가. 그러나 오늘날 정신과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첫 번째는 배우자, 두 번째는 자식으로 ‘정답’이 정해져 있다고. 자신의 정신세계가 과거의 조선시대를 향하고 있는지 21세기 현대사회에 머물러 있는지 천천히 고민해 보기를 바란다.




내가 속했던 가정들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를 아무도 구해주지 않는, 수영도 할 줄 모르고 구명조끼도 없는데 알아서 생존법을 터득하지 않으면 익사하기 직전에 처한 환경이었다. 절대적인 내 편이라고 믿었던 부모님과 전 배우자 그 누구도 물에 빠진 나를 구하지 않았다.


엄마는 배우자와 자식 사이에서 목숨이 경각에 달린 물에 빠진 자식은 제쳐두고 심지어 안전한 뭍에 있는 멀쩡한 배우자를 선택했다. 전남편은 부모와 배우자 사이에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보내는 배우자를 뒤로하고 자신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착취하는 아버지를 선택했다. 이들은 내가 죽든 말든 상관도 없는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철저히 외면하고 방관했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물에서 살아서 나갈까 말까 한 나에게 이들은 더한 요구를 해댔다. 엄마는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구해주기는커녕 안전한 뭍에서 한가로이 술을 퍼마시고 있는 아빠의 장단을 맞추라고 떼를 썼다. 전남편은 물에 빠진 나더러 물에 빠진 자신의 원가족 전부를 구해달라고 억지를 부렸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이기적이고 버릇없는 아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사랑을 의심하지 않은 이들의 믿기 힘든 배신에서 늘 혼란스럽고 불안했고 무기력했다. 내 편이라고 굳게 믿은 사람 그 누구도 진정한 내 편은 아니었다. 세상에 혼자가 아닌 적이 없었고, 시리도록 외롭지 않은 적이 없었다.




엄마가 술 취한 남편과 까탈스러운 시어머니에게 에너지를 다 빼앗겨서 자식에게 온전한 관심을 쏟지 못했다고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술 먹고 행패를 부리는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자식들의 등을 떠밀었는지, 이혼 상황에서 정신이 무너진 딸이 아니라 만취해 꼬장 부리는 남편을 편들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전남편이 이혼 뒤 혼자 사는 자신의 아버지를 안쓰러워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부부간에 상의해서 결정해야 할 일을 아버지와 상의한 뒤 아내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보내는 배우자를 너무 쉽게 저버린 채 정신적, 물질적으로 착취하는 아버지에게 한없이 휘둘리는 모습은 도저히 이해불가였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은 17년 만에 헤어진 엄마(윤여정 扮)와 우연히 재회한 조하(이병헌 扮)가 숙식을 해결하려고 따라간 집에서 뜻밖의 동생 진태(박정민 扮)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엄마는 조하가 중학생 때 술 먹고 깽판 치는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 딴살림을 차린다. 조하는 일찍이 엄마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엄마는 미안함과 죄책감을 안고 있다.


조하는 어느 날, 엄마의 부탁으로 서버트증후군을 앓고 있는 이부동생 진태를 복지관에 데려가기로 한다. 갑자기 용변이 급해진 진태는 버스에서 내려 눈앞에 보이는 아파트 화단에서 볼일을 보고, 결국 경찰서에 가서 범칙금을 부과받는다. 귀가가 늦어지는 형제를 기다리던 엄마는 경찰서를 다녀왔다는 진태의 말에 해명하려는 조하를 무시하고 버럭 화를 낸다. 형이 되어서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동생을 제대로 책임지지 못했다며, 어른답지 못한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마구 쏘아붙인다.




이 장면을 보는데 엄마에게 아빠는 혼자서 제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진태이고, 나는 상처를 받았든 아무리 힘이 들든 멀쩡하게만 보이는 조하 같은 존재구나 싶었다. 엄마는 고되게 일하느라 술독에 빠져서 온전한 정신으로 살지 못하는 남편은 너무나 안쓰럽고, 그에 비하면 아빠가 번 돈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학교 다니는 자식은 하나도 힘들게 없다고, 어쩌면 축복받은 환경에서 성장하고 있다고 여겼나 보다. 20년 전 목숨을 잃을 뻔했던 사고를 당해 야망과 포부가 꺾인 원망과 후회를 내려놓지 못하고 여전히 술에 의존하는 남편에 비하면 이혼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딸 따위는 대단히 안타깝지는 않았나 보다. 엄마에게는 남편이라는 존재 자체가 너무 가엾고 딱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 자식이 아무리 힘든 상황에 놓이더라도 전부 별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나 보다. 자식이 제발 살려달라고 목놓아 외치며 아무리 구조를 외치더라도 귀를 막고 눈을 가렸는지 남편에 비하면 아주 멀쩡하게만 바라보이나 보다. 그러니 아빠와의 이혼은 무슨, 아빠 대신 죽겠다고만 하지 않아도 다행이지.


전남편에게도 전 시아버지는 <그것만이 내 세상>의 엄마 인숙이 진태를 바라보는 것처럼 아픈 손가락이고, 나는 막 대하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끄덕 없으리라고 믿는 강철덩어리 같은 거구나 싶었다. 그 사람 눈에 멀쩡하고 많은 것을 가진 내가 그 사람 시선에서 가엾고 불쌍하고 부족한 자기 아버지를 위해 무한히 베풀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나도 힘들었는데……

나도 괜찮지 않았는데……

나도 엄마의 사랑과 보살핌이

배우자의 사랑과 배려가 절실했는데

그들 눈에 나는 너무 멀쩡했나 보다.

한없이 기댈 수 있을 만큼 듬직해 보였나 보다.

나도 너무 아팠는데……

상처받고 외로워서 매일 밤 울었는데……

나도 너무 힘들었는데……

나도 전혀 괜찮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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