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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Feb 15. 2023

엄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주위를 계속 맴돌았던 이유

부모로부터 허구의 독립일 때 보이는 행동들

“엄마와의 관계는 어떠세요?”

“엄마는…… 음……”

엄마와의 관계를 묻는 상담 선생님의 질문에 무슨 이유인지 제대로 답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잘해주세요. 자식들을 누구보다 사랑하시고……”

말끝을 흐리고 대답을 하려다 말문이 멎기를 몇 번을 반복했다.

“엄마는 잘해주시는데 뭐랄까…… 너무 다 해주시려고 한다고 해야 할까요. 독립할 수 있도록 이제는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줘도 충분한데 계속 물고기를 직접 잡아주려고 한달까요. 엄마가 잘해주는데 전 그게 편하지만은 않아요. 그런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엄마에 대한 감정이 아직 잘 이해되진 않네요.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좀 더 알 수 있겠죠.”

첫 번째 상담에서 엄마에 대한 감정을 묻는 질문에 말문이 막히고 대답을 망설이는 나 자신이 당황스러웠다. 이제껏 엄마와의 관계가 좋다고 믿었는데 실은 그렇지 않은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엄마에 대한 복잡한 감정은 지난 페이스북 기록에서 잘 드러나고 있었다. 페이스북의 ‘과거의 오늘’ 서비스는 과거의 오늘 날짜에 남긴 기록을 모아서 보여준다. 이 기록에서 엄마를 향한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이 지난 10년간 변하지 않았다고 알게 되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지만 어떻게 10년 전과 이렇게 똑같을 수 있는지 충격이었다.


‘나도 더는 어린애가 아닌데, 휴……’

‘엄마는 끊임없이 나를 지배하려고 한다.’

‘엄마는 착하다는 말로 나를 길들이려고 한다.’

‘제발 그만 신경 쓰고 좀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나도 이제는 성인이라서 엄마 말을 꼭 듣지 않아도 된다고 머리로는 알지만, 엄마의 한마디에 왜 이렇게 지대한 영향을 받고 못 벗어나지 잘 모르겠고 답답하다.’

‘힘겨움을 토로하자 ‘어찌하겠니.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란다’라는 무성의한 반응만이 돌아왔다. 오히려 가슴이 더 답답해졌다.’


과거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미 오래전, 엄마가 나를 지배하고 통제하려고 한다고 잘 알고 있었다. 엄마의 태도에 답답함과 불편함, 부담스러운 감정을 끊임없이 호소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문제의식이 있는데도 10년 넘게 해결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방치했을까. 회피와 외면만이 최선의 해결책이었을까. 해결하는 법을 몰랐던 것일까. 실은 해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분명한 건 엄마는 늘 ‘너희들이 잘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하곤 하지만, 정작 자식들이 자신의 품을 떠나 완전한 독립을 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부모님이 우리 삼 남매가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바랐다면 우리는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진정으로 독립하기를 바랐다면 우리는 분명히 독립적인 어른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가 기대하고 바라는 대로 성장하기 마련이니까.


엄마의 진심은 자식들이 영원히 자신에게 의존하는 어린아이 같은 존재로 남아있기를 바랐다. 몸과 마음이 다 자란 자식을 어린아이 돌보듯이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품 안의 자식으로 키우는데 머물고자 했다. 이를 거부하면 말로는 ‘괜찮다’라고 하지만 얼굴 표정과 온몸으로 크게 실망한 티가 여과 없이 드러났다. ‘너는 애가 참 특이하다 또는 독특하다’라며 교묘하게 자식을 탓하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어린아이 상태로 머물기를 바라는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기는 결코 쉽지 않았고, 만일 이를 거절하면 죄책감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성인이 된 자식에게 어린아이에게 하듯이 강한 애착을 나타내는 엄마는 자식들의 독립을 지연시키고 무기력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엄마는 이것이 엄마로서의 역할이자 의무이고 사랑이라고 굳게 믿었다.




나는 지배적인 성향의 부모님에게 불편하고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일종의 허구의 독립을 형성하고 있었다. 허구의 독립이란, 실은 의존적인데 겉으로만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가상의 독립성, 수도-인디펜던스(pseudo-independence)라고 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중요한 대상자와의 관계에서 ’의존적 욕구’를 채우고자 한다. 의존적 욕구란 어떤 조건과 상황에 상관없이 나를 가장 소중한 대상으로 대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위로받고, 보호받고, 사랑받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의존적 욕구를 채우지 못한 아이는 허구의 독립성을 갖는다. 마음에는 상처가 있는데 겉으로는 독립적이고 굉장히 의젓한 사람으로 보이며, 알아서 제 앞가림을 다 한다.


허구의 독립성을 가진 아이는 부모를 실망시킬까 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부모의 처지를 예상해서 내가 지금 엄마를 필요로 하지만 엄마가 바쁘고 힘들다고 생각해서 말하지 못한다. 어린 시절 허구의 독립성을 가지면 가족의 모든 일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힘들게 살아가곤 하거나, 자녀를 키울 때 아이에게 지나치게 독립을 강요해서 아이에게 아주 어른스럽게 행동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서 내심 마음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모순적인 감정의 실체를 알 것 같았다. 알코올의존증 아버지의 횡포에서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은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고, 유약한 엄마의 눈치를 살피느라 어리광 한 번 부리지 못하고 감정을 억압하며 의젓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온전히 사랑받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은 욕구를 채우지 못한 깊은 결핍이 독립적으로 사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만 같은 내 오랜 복잡하고 방황하는 감정의 근원이었다. 지배적인 엄마를 벗어날 힘이 충분한데도 과감하게 떨치지 못하고 지금까지 엄마 주위를 계속 맴돌았던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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