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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Feb 13. 2023

올해의 목표: 매 순간 행복하기

지금 당장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기

중학교 2학년인가, 3학년까지 피아노를 배웠다. 동네 피아노 학원은 아이들이 보통 6~8세 때 배우기 시작해서 중학생이 되기 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비하면 또래보다 피아노를 오래 배운 편이다. 피아노라는 악기에 특출 난 재능을 보였느냐 하면 단연코 아니다. 학업과 병행할 만큼 피아노가 재밌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럼, 재능도, 재미도 없는데 부모님이 강요하거나 피아노 학원 원장님이 놔주지 않았는가 하면 그것도 그렇지 않다. 10대 중반까지 피아노를 배운 건 순전히 내 의지이자 희망 사항이었다.


피아노를 오랫동안 놓지 않은 이유는 ‘인내심’을 키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방이 막힌 연습실에서 잘 되지 않는 연주를 선생님이 정해준 횟수만큼 꾹 ‘참고’ 정직하게 완료하기. 이 지루하고 하기 싫은 과정을 ‘견뎌내는’ 만큼 나 자신이 단단해지고 인생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했다. 피아노가 좋아서 치는 아이와 피아노가 싫어서 거부하는 아이 사이에 믿기 힘들겠지만 피아노를 참을성을 키우는 도구로 삼은 아이가 있었다. 이때 나는 이미 좋다, 싫다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만큼 파괴되었고, 몸은 살아있지만 정신은 죽어버렸던 거다. 일찍이 나 자신을 잃어버린 채로 싫은 것을 참고 견디는 고단수로 거듭나고 있었다.




새해를 맞아서 지난해를 돌아보고 올해의 목표와 계획을 생각했다.


<올해의 목표>

- 매 순간 행복하기(+나답게 멋지게 살기)

- 소중한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대하기

-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 갖기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세우기는 난생처음이다. 세상에 행복에 관한 담론은 넘쳐나는데…… 왜 이제까지 ‘나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살지 않았을까. 


매해의 목표는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무엇인가를 성취해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욕구를 억압’하는 자체를 인생의 목표로 삼아왔다. 학업 성취와 대학 입학이라는 주어진 목표를 수동적으로 실행하던 10대를 벗어난 20대~30대에도 10대 때 몸과 정신에 익은 습관대로 살아온 것 같다.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좋은 학점을 받고 좋은 스펙을 쌓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고, 안정적인 회사를 입사한 뒤에도 좋은 평가를 받아서 계속 승진하는 것이 목표였으며, 가정에서도 늘 인정받는 딸이자 아내가 되고자 안간힘을 써서 노력했다. 새끼 때부터 말뚝에 줄이 묶인 채로 성장한 코끼리는 어른이 돼 말뚝을 뽑을 수 있을 만큼 힘이 세지더라도 도망가지 못하고 줄에 계속 묶여서 살아간다고 한다. 줄에 묶여서 자유를 박탈당한 채 말뚝 주위를 뱅뱅 돌며 사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정한 힘을 깨닫지 못한 코끼리처럼 나도 타인의 기준이라는 줄에 묶여 자유로운 신체를 정신적으로 억압해서 실제로는 평생 부자유 속에서 살아온 것 같다.




‘올해는 더 나은 조건의 회사로 이직하기’, ‘영어 회화 능숙하게 하기’, ‘자유롭게 운전하기’, ‘수영 마스터 하기’, ‘주 1회 이상 글쓰기’, ‘매주 책 한 권 읽기’, ‘주식과 부동산 공부하기’, ‘가족과 더 많은 시간 함께 보내기’, ‘주 2회 이상 유산소 운동하기’, ‘가을에 해외여행 가기’, ‘배달 말고 요리해서 먹기’ 등도 지금껏 매해 번갈아가며 세웠던 목표들이다. 이중에는 목표를 달성한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고, 현재의 목표인 것도 있다. 새해에 흔히들 세우는 목표이지만,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고 성취감을 느낀다는 점에서 10대 때 생활 패턴과 별로 다르다고 할 수 있지 않다.


마치 온라인 게임에서 미션을 클리어하듯이 습관처럼 규칙적으로 노력해서 하나의 목표를 이루고, 그럼 다시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분명한 성취감을 느끼고, 인정욕구를 채울 수 있으며 삶에 대한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다. 한편, 목표만을 바라보고 한참을 달리다가 이루고 난 뒤에 걷잡을 수 없는 공허함이 찾아오기를 반복한 것도 사실이다. 열심히 살지 않은 때는 드물고 대체로는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뛰어드는 건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은데, 때때로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이걸 꼭 해야 하나? 하지 않으면 안 되나?’ 같은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올해 난생처음 목표를 ‘행복하기’로 정하고 나자, 지금까지 열심히 살면서도 공허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매년 가변적인 결핍과 욕구에 따라서 그때그때 정한 계획이나 목표는 있지만, 정작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과 방향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노력해서 성취를 하거나 정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서 인정을 받더라도 만족하는 순간은 짧고,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은 허전함을 지울 수 없었던 것 같다.


집짓기에 비유하자면 ‘철근콘크리트는 꼭 작업해야 한대’라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열심히 철근콘크리트 작업을 완료하고, 어느 날은 지붕이 만들고 싶어 져서 이런저런 지붕을 참고해서 멋들어진 지붕을 만들어 두고, 요새는 계단 난간 디자인을 차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전문가의 말을 듣고는 또 계단 난간 디자인 작업에 집중을 한다. 이런 식으로 집의 각 부분을 열심히 작업을 하지만, 정작 집의 전체 설계도는 불분명해서 나중에 집을 완성했을 때 현재의 각 작업이 과연 통일성이 있을지, 크기 등이 어긋나지는 않을지 불안해서 도저히 만족할 수 없다. 심지어 이 집을 왜 지어야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지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고, 그저 집의 각 부분을 계획하고 목표한 대로 열심히 만들어서 완성하기 – 이것이 지금까지 삶을 살아온 방식이었다.




올해 목표로 세운 ‘매 순간 행복하기(+나답게 멋지게 살기)’는 목표보다는 더 넓은 범위로 실은 나아가고 싶은 인생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목적을 더는 ‘참고 견뎌서 목표를 성취하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기’에 두자 든든한 인생 울타리가 생긴 것 같다. 단순히 집짓기를 완료하려고 좋은 재료를 고르고 열심히 작업을 하던 공허함에서 벗어나,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집을 짓기 위해 전체를 설계하고 기초 작업을 하고 각 부분을 만들게 된 것 같다. 행복하고자 짓는 집인데 만드는 과정이 고행이기만 하면 그것도 또 집을 짓는 목적과는 어긋난다. 만드는 과정도 어떻게 하면 좀 더 즐겁고 덜 힘들 수 있는지 방법을 고민하기, 이것을 삶의 목적이자 목표로 삼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 변하고, 나 자신을 보호하거나 어떤 목적 또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참고 견뎌야 할 때는 너무나 많다. 때로는 알면서 모른 척 회피하거나 비굴하게 굴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니 ‘매 순간 행복하기(+나답게 멋지게 살기)라는 목표는 실현불가능한 이상적인 생각이다. 사실 ‘행복’이라는 것 자체가 ‘나는 누구인가’,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처럼 추상적이고 지극히 주관적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자 내 감정을 더 자주 들여다보고, 시시각각 변하는 결핍과 욕구에 더 집중하며 즉각적으로 대처하게 되었다. 타인이 좋다거나 해야 한다는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마음의 소리가 이끄는 대로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모두가 좋다는 데는 또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에 무조건 배제하기보다는 그 이유를 분명히 알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경주마가 내달리듯이 매번 힘껏 달려 나가기보다 힘을 줄 때는 주고, 뺄 때는 빼면서 좀 더 여유롭고 가볍게 사는 묘미를 알아가는 것 같다.



'매 순간 행복하기'를 1년 간 실천한 뒤의 변화는 아래 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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