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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Feb 06. 2023

엄마에게 정신적으로 벗어나지 못한 딸이 갖는 생각들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든다면 부모에게 아직 정서적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감정 착취를 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 부모님을 생각하면 갑자기 눈물부터 난다.

- 부모님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쉬어진다.

- 부모님은 나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 내가 부모님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 부모님과 같이 있으면 왠지 모르게 불편하다.

-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괜찮은데) 유달리 부모님에게 나는 나쁜 자식, 부족한 자식처럼 느껴진다.

- 부모님을 만나고 싶지 않은데, 정작 만나지 않으면 죄책감이 든다.

- 평소의 모습과 부모님 앞에서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

- 부모님 앞에서 가장 나답지 않은 모습을 꾸며낸다.

- 부모님을 만나고 오면 에너지가 바닥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최소한 부모님 얼굴에 먹칠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 내 뒤에는 부모님이 버티고 계시니 안심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복잡한 감정 상태가 뒤엉킨 채로 부모에게 정서적으로 잠식돼 있으면 현실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털어놓으려고 한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한편으로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 마음대로 하면 하는 것이고, 아니면 마는 것이지 무슨 이상한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런 모순적이고 불편한 감정에 사로잡혀 살아서 매 순간 불안했고 아주 드물게 행복했다.


운이 좋게도 인생은 대체로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원하는 대학의 원하는 학과에서 공부하는 행운을 거머쥐었고, 바랐던 회사에서 일하를 기회는 얻었으며, 이혼으로 마무리한 결혼이지만 당시에 사랑하던 사람과 의지대로 결혼을 선택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나를 존중하고 신뢰했으며 인간관계도 대체로 원만한 편이었다. 여러 상황에서 사람들을 설득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도 수월한 편이었다.


평탄하게, 별다른 문제없이 어쩌면 타인이 부러워할 만한 인생을 살면서도 나는 늘 부족하고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만 같았다. 겉으로는 모자람 없이 당당하게 잘 사는 듯 보이고, 주어진 역할도 대체로 무리 없이 잘 수행하는 편이었지만 나라는 사람에 대한 자신감이 거의 항상 없었다. 아무리 좋은 일이 벌어지고 대단한 성취를 하더라도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너무 짧았다. 내 온전한 노력을 스스로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깎아내렸으며, 나 자신이 늘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전형적인 자존감은 낮고 완벽주의 성향의 사람이었다. 누려야 할 행복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익숙한 불행을 자처해서 거북한 감정을 감내하는 것이 더 편한 사람이었다.


어른답게 독립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불편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분명히 살고 싶은 대로 사는데 결코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것이 부모로부터 허구의 독립을 했기 때문이라고 즉, 부모에게 정서적으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알게 된 건 오래되지 않는다.


부모님께 무한한 사랑을 받았다고 믿었는데 사실 어린 시절 부모님께 칭찬이나 감정적 지지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엄마는 표정이 없고 무슨 이유인지 늘 힘들어 보였다. 엄마는 활짝 웃어도 늘 행복해 보이지 않고 어딘가 슬퍼 보였다. 내가 마음대로 살아도 내 마음대로 사는 것처럼 느끼지 않듯이 엄마는 웃어도 웃는 게 아닌 사람이었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아마도 이때부터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다.


내가 무엇을 하더라도, 아무리 잘하더라도 주양육자인 엄마의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하거나 모호하기만 했다. 자식의 시험 전날에도 배려 없이 만취해서 난동을 부리는 아버지의 무관심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 허공에서 이내 흩어지는 연기처럼 사실 부모님의 기대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도 버거워서 자식들에게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고 사랑을 베풀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사람들이니까.


의존적이고 애정결핍이 심한 부모님은 애당초 무슨 짓을 하더라도 만족시킬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부모의 인정과 사랑이 고파서 더 부모의 눈치를 보고 기대에 맞춰 그들을 만족시키고자 살아왔다. 부모의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한 좌절감이 익숙했다. 그래서 이제는 나 스스로 하고 싶은 대로 살면서도 늘 불안하고 자신감이 없었던 것 같다. 잘하고 있는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의심하고 자기 확신을 하지 못하고, 부모를 향한 죄책감과 불편감을 안고 살았던 것 같다.




“지금껏 나 자신이 부모의 자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가 부모의 짐이 될까 봐 두렵다”


 : 불과 1년 전, 이혼했을 때 한 생각이었다. 내가 얼마나 사회적 시선과 부모님의 체면을 고려하며,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고자 살아왔는지 이 짧은 한마디에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이혼 당사자로서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가운데 이혼의 낙인을 짊어지고 앞으로 혼자 살아갈 나 자신보다 부모님께 짐스러운 존재가 될까 봐 부모를 더 염려하고 있다. 보수적이고 완고한 부모님께 딸의 이혼은 실망스러운 일이고, 그들의 인생에 흠집을 낸다고까지 생각했던 것 같다. 이처럼 나는 내 욕구보다 부모의 욕구를 우선시하고, 그들이 은연중에 내비치는 기대에 부응하는 자랑스러운 딸, 완벽한 딸이 되고자 사는데 익숙했다.




“나는 엄마 인생의 전부야. 엄마는 나 없으면 못 살아. 내가 무너지면 우리 엄마도 무너져내려. 제발, 내가 완전히 무너지게 하지는 말아 줘. 제발 부탁이야. 내가 이렇게 무릎 꿇고 빌게. 나를 더 이상 함부로 대하지 말아 줘. 나 완전히 무너지기 직전이란 말이야.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가 없어. 그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라고.”


 : 이혼 과정에서 전남편의 억지가 극에 달했을 때 절박한 심정에서 튀어나온 무의식을 반영한 진심이었다. 이제는 우리 부모님마저 수모를 겪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하자 내가 먼저 이혼을 요구해도 모자란 상황에서 후안무치한 전남편에게 매달리는 것이 당시에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는 엄마 인생의 전부야. 엄마는 나 없으면 못 살아. 내가 무너지면 우리 엄마도 무너져내려.’라니. 엄마와 나를 전혀 분리하지 않고 마치 한 사람처럼 완전히 동일시하고 있었다. 대체 엄마의 강력한 집착과 의존, 통제와 지배 욕구를 어떻게 수긍하고 견뎠을까.


엄마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연약하고 안쓰러운 모습이다. 무언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뾰로통한 얼굴로 측은지심을 자아낸다. 상대방은 결국 안쓰럽고 불쌍해서 엄마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 정서적으로 미숙한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연약함을 이용해 마음 약한 어른에게 원하는 것을 영악하게 얻어내는 심리와 똑같다.


엄마는 지금도 자식이 조금이라도 자신의 생각과 어긋나면 어쩔 줄 모르고, 갈등이 생기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울어버린다. 너무나 예민하고 자기중심적이라 상대방을 순식간에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해서 무슨 말을 하기가 겁이 난다. 같이 있는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세상 착한 사람이라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결국, 복종할 수밖에 없다. 아이였던 내가 오히려 더 아이 같은 엄마를 정서적으로 평생 보살피고 이해하고 무한한 사랑을 베풀며 사는데 익숙했구나 싶다.



2022년 7월에 작성한 <엄마에게 정신적으로 벗어나지 못한 딸이 갖는 생각들_1>, <엄마에게 정신적으로 벗어나지 못한 딸이 갖는 생각들_2>을 토대로 그동안 발전한 생각을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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