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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l 14. 2022

엄마에게 정신적으로 벗어나지 못한 딸이 갖는 생각들_1

허구의 독립이란 무엇인가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을 매일 살펴본다. 몇 년 전 유행한 <5년 후 나에게 – Q&A>처럼 과거 오늘 날짜에 무엇을 기록했는지 알 수 있다. 가령, 7월 13일이면 연도에 상관없이 7월 13일에 자신이 페이스북에 업로드한 콘텐츠를 전부 볼 수 있다. 내 과거의 기록을 보면서 ‘작년 이맘 때는, 5년 전에는, 10년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구나’ 기억을 떠올리며 잊었던 감정을 되살린다. 어느덧 연락이 끊긴 한때 소중했던 인연들을 하나 둘 곱씹는다. 그새 나이만큼이나 새해마다 떡국도 몇 그릇은 더 비웠을 텐데, 지금보다 어렸던 10년 전 나 자신이 훨씬 성숙하고 현명했구나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페이스북에 남긴 짧은 기록을 보면서 우습게도 ‘어떻게 이런 속 깊은 생각을 했을까?’ 과거의 내 모습에 감탄하며, 현재의 부끄러운 내 모습을 반성하고 때로는 꾸짖는다. 진부한 말이지만 어렸을 때 어른은 똑똑하고 현명하고 관대한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옹졸하고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칠까 봐 매 순간 갈등하고 실수하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점점 더 부족하고 부끄러운 하찮은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다.


‘과거의 오늘’ 기록에서 엄마를 향한 내 감정이 10년 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고 가장 놀랐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지만 어떻게 이렇게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20대의 나는 엄마와의 여러 사소한 일화에서 ‘나도 더는 어린애가 아닌데’, ‘엄마는 끊임없이 나를 지배하려고 한다’, ‘엄마는 착하다는 말로 나를 길들이려고 한다’, ‘이젠 나도 성인이라서 엄마의 말을 꼭 듣지 않아도 된다고 머리로는 알지만 엄마의 말 한마디에 왜 이렇게 지대한 영향을 받고 벗어나지 못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고 답답하다’, ‘신경을 그만 쓰고 제발 그냥 좀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라는 혼란스럽고 부담스러운 감정을 토로하고 있었다. 오래전, 현실을 이미 똑바로 직시했는데, 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방치했을까. 당시에는 회피와 외면이 최선의 해결책이었을까. 해결하는 방법을 몰랐던 걸까. 실은 해결하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닐까. 일기나 SNS처럼 과거의 짤막한 기록 속 감정과 생각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이미 그 상황과 원인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어서 깜짝 놀라곤 한다.


분명한 건 엄마는 늘 ‘너희들이 잘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하곤 하지만, 의도치 않은 무의식이라고 하더라도 엄마는 결코 자식들이 자신의 품을 떠나 완전한 독립을 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자신이 영원히 자식들이 의존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서 자식들의 독립을 지연시키고 심지어 무기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모든 것을 부모 탓을 할 수는 없지만, 부모님이 우리 삼 남매가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바랐다면 우리는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했을 것이고, 우리가 진정으로 독립하기를 바랐다면, 우리는 분명히 독립적인 어른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아이들을 부모가 기대하고 바라는 대로 성장하기 마련이니까. 오늘은 당시에는 몰랐던 부모, 특히 엄마에게 내가 정신적으로 벗어나지 못한 생각과 태도를 몇 가지 정리하려고 한다.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부모에게 허구의 독립을 한 건 아닌지 나 자신과 부모와의 관계를 찬찬히 돌아보길 바란다.




우선, 오은영 박사에 따르면 허구의 독립이란, 실은 의존적인데 겉으로만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가상의 독립성, 정신과에서는 수도-인디펜던스(pseudo-independence)라고 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중요한 대상자와의 관계에서 ’의존적 욕구’를 채우고자 한다. 의존적 욕구란 어떤 조건과 상황에 상관없이 나를 가장 소중한 대상으로 대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위로받고, 보호받고, 사랑받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의존적 욕구를 채우지 못한 아이는 허구의 독립성을 갖는다. 마음에는 상처가 있는데 겉으로는 독립적이고 굉장히 의젓한 사람으로 보이며, 알아서 제 앞가림을 다 한다.


허구의 독립성을 가진 아이는 부모를 실망시킬까 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부모의 처지를 예상해서 내가 지금 엄마를 필요로 하지만 엄마가 바쁘고 힘들다고 생각해서 말하지 못한다. 어린 시절 허구의 독립성을 가지면 가족의 모든 일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힘들게 살아가곤 하거나, 자녀를 키울 때 아이에게 지나치게 독립을 강요해서 아이에게 아주 어른스럽게 행동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나도 이런 측면이 강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복잡하고 생각에 그치는 정도이고 실제로 행동으로 연결하지는 않았는데, 아버지를 넘어서 할아버지, 작은 아버지 가정의 문제까지 자신이 해결하고자 한 전남편이야말로 전형적인 허구의 독립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한편으로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면 하는 것이고, 아니면 마는 것이지 이 무슨 이상한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다. 사실 나는 운이 좋게도 서른 중반까지 인생에서 큰 좌절을 겪지 않고 평탄한 인생을 살아왔다. 인생이 늘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일단 원하는 대학의 그것도 원하는 과에 입학하는 몇 안 되는 스무 살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을 거머쥐었고, 가장 원하던 기업에 취업하지는 못했지만 돌고 돌아서 일하고 싶었던 회사 중 한 곳에서 마침내 일하는 기회를 얻었다. 사람들은 내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고 신뢰해서 원하는 대로 업무 방향을 이끌어가는 편이었고, 이혼으로 마무리한 결혼이지만 어쨌든 당시에는 사랑한다고 믿은 사람과 내 의지대로 결혼을 선택했다.


누구보다 자율적으로 적극적으로 인생을 살아왔고, 타인의 시선에서도 그렇게 보이지만 희한하게 나 자신은 때때로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자격지심 비슷한 감정과 불안감을 늘 안고 살았다. 특히, 대학교와 결혼이 그랬는데 내 학습 능력보다 대학교 간판이 지나치게 크게 느껴졌고, 까다롭고 제멋대로인 부족한 나와 결혼해준 상대방에게 감사해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되도록 다 맞춰주려고 했었다. 서류 전형과 면접을 통과하고 수능 최저 등급 기준을 충족해서 입학이 허가된 대학교였고, 결혼 또한 내가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상대방도 동의해서 성사되었는데, 정작 당사자인 나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나 스스로를 낮잡아 보았다. 전형적인 자존감은 낮고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사람이 보이는 모습이다.


나는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달리 말하면 명확한 실체가 없는 부모님의 모호한 기대를 만족시키는 삶을 사는 데 익숙했다. 한평생 세트장에서 연기자들과 사는 데 익숙해서 허구와 실제를 분간하지 못한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 트루먼처럼 (사소한 의견 충돌은 있더라도) 큰 줄기에서 부모가 기대하고 원하는 삶을 사는 데 익숙해서 종국에는 부모의 뜻을 거스르거나 벗어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부모의 기대라는 것이 확실한 무엇인가가 있으면 차라리 ‘그건 아니다’라고 반박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리 부모님의 기대는 허공에서 이내 사라지는 연기처럼 존재는 하되 실체가 없다. 명확한 기준이 없고 자신의 감정에 따라서 시시각각 변하는 즉,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변하는 감정을 자식이 알아채고 충족하길 바라니, 자식 입장에서는 늘 좌절할 수밖에 없다. 내 감정이나 마음도 매 분, 매 초 변하기 마련인데 타인의 감정을 늘 만족시킨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이렇게 늘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불안감, 불편함을 안고 사니 자존감은 낮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불편한 모순적인 감정을 안고 살았을 수밖에. 심리학의 애착 유형으로 보자면 부모의 일관적이지 않는 양육 태도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불안형 애착이 보이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지는 글



브런치북 <부모님과 관계를 끊기로 했습니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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