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마일펄 May 06. 2022

부모님 vs 배우자 vs 자식이 물에 빠진다면?

누구를 가장 먼저 구할지?

부모님과 배우자가 물에 빠졌다. 안타깝게도 한 명밖에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 누구를 구하겠는가? 배우자와 자식이 물에 빠졌다. 이번에도 슬픔을 머금고 한 명밖에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때는 누구를 구하겠는가? 결혼할 배우자를 선택할 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이다. 가족과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확인하고 반드시 조율할 영역이기 때문이다. 내 대답은 첫 번째 질문은 당연히 배우자, 두 번째 질문은 당연히 자식이다. 어떤 대답을 하는지는 가치관의 차이이기 때문에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고민하거나 한치 의심할 여지가 없다. 즉, 설득당해서 대답을 바꿀 확률은 희박한 확고한 가치관이다.


우선, 동정을 바라고 이 글을 쓰고 있지 않다. 처량한 신세 한탄은 좀 하고 싶지만, 사실이 그러해서 쓰고 있다.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은 효성이 지극한 ‘척’한 전 배우자는 물에 빠진 나를 두고 자신의 부모를 구하느라 이혼을 선택했다. 나약한 어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와 동생들을 못 본체 외면하고, 자신만 살겠다고(생존하겠다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남편(나의 아버지)만을 구해냈다. 심지어 우리를 물에 처넣고 폭풍우를 불러온 장본인이 아버지인데도 말이다. 아무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아서 우리 삼 남매는 각개 전투로 익사 직전에서 간신히 숨만 붙은 채 버텼다. 불행히도 서로 보듬고 도와줄 여력 따위는 없었다. 지금도 어떻게든 살고 싶다고 허우적거리며 물비린내를 벗고 뭍으로 올라서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한마디로, 절대적으로 믿었던 배우자도, 부모님도 그 누구도 물에 빠진 나를 구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가장 가깝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자신들부터 살겠다고 나 몰라라 하고 다들 도망가버렸다. 나에게는 그들이 나를 구해야만 할 순간이었는데, 그들은 그것이 제 살길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물에 빠진 나더러 전남편은 물에 빠진 자신의 부모를, 엄마는 심지어 뭍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아빠를 같이 ‘구해달라고’ 떼쓰는 어이없는 요구까지 이어졌다. 간신히 공기방울을 내뿜으며 죽어가는 나를 두고 가장 가깝고 친밀하다고 믿은 사람들이 한순간 다 떠나버렸다. 항상 내 곁에 있겠다고, 무조건 내 편이라고, 자신들에게 나는 더없이 소중하다고, 나를 언제나 사랑한다고 말하며 굳게 믿게 만든 사람들이다. 혼란스러움과 배신감, 뒤이어 찾아온 절망감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험한 세상에 나만 혼자서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았다. 이토록 공허하고 허탈한 기분은 난생처음이라 당황스러운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보니 나는 세상에 혼자가 아닌 적이 없었다. 시리도록 외롭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다만, 부모님 특히 엄마의 혼란스러운 양육 태도에 잠식돼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부모님이 언제나 지켜주고 계신다고 착각 속에 살고 있었다. 착각을 걷어내니 씁쓸하게도 나는 늘 외로웠던 원래 있던 익숙한 자리로 돌아온 것뿐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20대 중반까지 본가에서 나는 혼자가 아닌 적이 없었고, 돌이켜보니 마찬가지로 결혼생활 4년 내내 외롭지 않은 날이 드물었다. 엄마는 자식인 나를 지켜야 할 때,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 남편에 대한 아내의 도리라는 원칙에 사로잡혀서 술 취해 폭언을 하는 아빠를 택했다. 전남편은 배우자인 나를 존중하지 않고 사랑해야 할 아내에게 오히려 자격지심에 사로잡혀서 깔아뭉개고자 무조건 자신의 부모가 옳다며 시종일관 부모 편에 서있었다. 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은 적은 없겠지만, 그들의 말과 달리 언제나 내가 최우선은 아닌 셈이다. '언제나'는커녕 내가 1순위여야 할 상황에서조차 나는 2순위인지, 3순위인지도 모를 후순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슬프게도 원가족도, 결혼해서 꾸렸던 가족도, 행복한 가정은 내 몫이 아니었다. 내 몫은 언제나 불행한 가정이었다. 다만, 의존적이고 회피적인 연약한 아이 같은 엄마, 엄마와 아주 많이 비슷한 전남편에게 속아서(애정관계라 객관적으로 자각하지 못해서) 최소한 불행하지는 않다는 착각 속에 살았다. 곱씹을수록 전남편은 엄마와 너무 많이 닮아 있다. 나는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 채 무의식이 이끄는 대로 엄마와 닮은 사람과 결혼했었다. 내가 기댈 사람이 아니라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야 할 유약하고 회피적인 사람을, 나는 가까운 관계에서도 다소 불편한 마음이 드는 애착관계가 익숙하니까, 이를 자각하지 못해서 착하고 평생 나를 아껴줄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 배우자로 선택했다.


엄마와 전 시어머니도 참 많이 닮아 있다. 전남편은 전 시어머니를, 이렇게 아들은 또 자신의 엄마를 닮았다. 그래서 그 셋은 잘 통했다. 늘 희한하게 나만 미운 오리 새끼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늘 나만 ‘그렇게 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려면 왜 결혼했는지 모를’ 특이하고 유별난 아내/딸/며느리여서 나 스스로도 불행한 결혼생활의 책임을 나에게 돌렸다. 심지어 내가 불행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는지도 모른 채 ‘원래 결혼은 다 이런가 보다. 시간이 지나고 적응하면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나도 모르게 내가 추구하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방식을 버리고, 그들에게 익숙한 회피하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제는 안다. 하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하며, 자신의 삶을 남편과 아내라는 타인에게 온전히 넘겨버린 억울한 탓을 결혼으로 돌리는 건 그들(엄마, 전남편, 전 시어머니)이다. 갈등이 싫고 관계가 끊어질까 봐 두려워서 문제에 직면하지 못하고 몸에서 사리가 나올 만큼 참고 또 참는 삶을 “선택”하고는 그들은 ‘결혼은 원래 그런 거’니까 그 억울한 대열에 합류하라며 수렁으로 나를 쳐 넣고 싶어 했다. 한편, 그들은 선하고 착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평생을 풀어도 다 풀지 못할, 새카만 속이 너무 타서 재로도 남지 않은 깊고 깊은 한을 간직한 사람들이기도 하고.


하지만 난 그들과 다르다. 함부로 그들의 삶을 투영해서 강요한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따라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더군다나 그들이 평생 쌓아온 한을 대신해서 풀어줄 수도, 그럴 의무도 없다. 이건 그들이 말한 것과는 달리 '당연'한 일이 아니기에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들의 한은 그들이 감당하고 처리해야 할 몫이고, 내 몫은 내가 살아갈 인생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이다. 나도 내 버거운 인생을 감당하기에도 이제는 힘에 부친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똑같이 물에 빠진 상황에서 구해줄 사람마저 아무도 없다면 각자 살아 나오거나 운이 좋으면 같이 협력을 하든가 해야지, 나도 똑같이 수영을 할 줄도 모르고 겁도 잔뜩 먹었는데 나더러 자신들까지 살려달라며 손으로 내 머리채를 붙잡고 계속 물밑으로 처박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내가 맺었던 가장 친밀하다고 믿었던 관계의 본질을 깨닫고, 그 관계에서의 (다소 억울한) 내 위치,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고(그들이 풀어야 할 문제를 풀지 못한 때문이라고), 이 또한 부모와 전 배우자의 한계라고 인정하니 오히려 친밀한 관계를 향한 강한 집착이 좀 사그라든 것 같다. 상처를 받아서 두려워서 관계를 회피한다기보다는 ‘산은 산이로되 물은 물이로다’처럼 관계를 맺고 끊는 데 좀 더 유연해진 기분이다. 물론, 억울한 감정을 풀고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수없이 번뇌하며 순탄하지만은 않은 힘겨운 시간을 보냈지만. 배우자는 법적 관계라서 어찌 어찌 처리했고. 억울해도 어쩌겠어. 부모를 바꿀 수는 없는 일인 걸. 내가 바라는 말이 통하는 다정하고, 내 마음을 읽어주고, 정말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부모는 이번 생(다음 생이 있나?)에는 내 몫이 아닌 걸.


유약한 엄마는 10대 때 물에 빠진 나 대신 자신의 남편을 고른 야속한 사람이지만 다행히 이제 그 일은 지나간 과거이다. 엄마는 여전히 같은 상황에서 남편을 고르는 변함없는 사람이지만, 30대인 나는 이제 엄마가 구해주지 않아도 혼자서 유유히 수영을 해서 물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 나에게 그런 힘이 있다고 깨닫기까지 돌고 돌아서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야 허구의 독립을 넘어서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브런치북 <부모님과 관계를 끊기로 했습니다>를

심리에세이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책으로 출간습니다.


현재 온라인 서점(교보문고 온라인,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도서)에서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책은 6월 22일(목) 발송 예정으로 예정일 이후 1~2일 이내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책 소개는 각 온라인 서점을 확인해주세요. ^^


이전 07화 엄마에게 정신적으로 벗어나지 못한 딸이 갖는 생각들_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