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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l 14. 2022

엄마에게 정신적으로 벗어나지 못한 딸이 갖는 생각들_2

나 자신이 ‘허구의 독립’이라는 증거

이어지는 글




지금껏 나 자신이 부모의 자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가 부모의 짐이 될까 봐 두렵다”


 : 이혼 당사자가 가장 고통스럽지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자식의 이혼이 결국 부모 자신의 일은 아니다. 잘 살아도 내 인생이고 못 살아도 내 인생이지, 내 인생이 결코 부모의 인생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내 이혼이 부모를 실망시키고, 그들 인생에 흠집을 낸다고까지 생각했다. 이로써 전적으로 내가 결정한 결혼이지만 한편으로 내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부모를 염두해서, 그들의 바람을 충족시키고자 결정한 결혼이라고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이 서른이 넘도록 부모의 욕구와 나의 욕구를 구분짓지 않고 평생 일치시키는 삶을 사는 데 익숙해서 벌인 뼈아픈 실수이다. 게다가 나 자신이 부모의 자랑이라니…… 내가 얼마나 그들이 바란 ‘완벽한’ 딸이 되려고 노력했고, 내 인생의 많은 선택을 그들이 바라거나 또는 좋아할 만한 기준을 설정하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살려고 발버둥 쳤는지 깨달았다. 



나는 엄마 인생의 전부야. 엄마는 나 없으면 못 살아. 내가 무너지면 우리 엄마도 무너져내려. 제발, 내가 완전히 무너지게 하지는 말아줘. 제발 부탁이야. 내가 이렇게 무릎 꿇고 빌게. 나를 더 이상 함부로 대하지 말아줘. 나 완전히 무너지기 직전이란 말이야.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가 없어. 그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라고.”


 : 드라마나 영화 대사 같은 이런 말들이 절박하니까 절로 나왔다.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현실을 부정하고 아직 이혼이 진행 중이지도 않았는데, 전남편은 나에게 알아두라며 이제 우리 부모님과 자신은 상관없는 사람이니 만일에 자신을 찾아오시더라도 (찾아와서 비시더라도) 예전처럼 대하지 않을 거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그런데 왜 우리 부모님이 그에게 찾아와서 비실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거지?) 협의이혼이지만 뼛속까지 지독하게 가부장적인 그 사람은 내가 그의 부모에게 잘하지 못한다는 명목으로 이혼을 요구했으니, 무슨 조선시대처럼 내가 아내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아내를 내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갑자기 감당하기 버거운 수많은 비상식적인 일들이 썰물처럼 밀려와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는데, 나 때문에 부모님이 수모를 당하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에 휩싸이자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이런 상황, 그의 말과 행동이 모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 순간, 그가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넘지 않도록 싹싹 빌며 내 절박한 심정을 전달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도 내가 이토록 흥분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해서 당황했는지 그런 일은 없을 거라며 일단은 나를 진정시키며 태도를 바꾸었지만, 나는 한편으로 그를 두려운 존재로 여기고 심각한 가스 라이팅에 잠식된 상태였단 생각이 든다.


절박한 상황에서 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엄마가 나를 엄마 자신과 분리하지 않고 거의 동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이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이 아니라 엄마를 위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고, 비록 부모님과 따로 살면서도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익숙한 무의식을 좇아 내가 바라는 것보다 부모님을 염두 한 선택을 했을 공산이 크다. 내가 무엇인가를 잘못하면 나를 힘들게 키운 부모님을 욕보이는 일이라고까지 생각하며 착하고 바른 사람으로 보이고자 나 자신을 지독하게 억압하고 통제하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엄마 인생의 전부야’라고 생각할 정도면 엄마는 평생 동안 대체 얼마나 자식에게 집착하고 지배해왔던 걸까. 엄마는 가벼운 우울증을 진단받고 한동안 약을 복용하다가 최근에 자의로 약을 끊었다고 했다. 약을 먹으면 마음이 편해지는데 딸(내 동생)은 오랫동안 조울증으로 고통받는데 자신만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즉, 계속 같이 고통 속에 놓여있길 바란다는 의미인데, 밖으로 소리 내서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엄마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제정신이 아니고 어쩌면 엄마는 최근에 우울증 진단을  받았지만 훨씬 오래전부터 우울증을 앓았고, 그것이 자식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몇 개월 전까지 나를 지배했던 생각과 달리 엄마는 나 없어도 잘만 산다. 더 이상 엄마의 눈물이나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는 연약한 모습, 어린아이 같은 순수하고 불쌍한 모습에 넘어가지 않으니 비로소 다른 세상이 열렸다. 내가 무너지면 내가 무너져 내리는 거지, 엄마가 무너져 내리지는 않는다. 내가 엄마에게서 태어났고, 한때 엄마의 몸속에서 엄마와 연결돼 성장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때도 엄마는 엄마이고 나는 나였다. 엄마도 아이를 낳느라 고생하지만, 태아도 사람의 형태를 갖추느라 애를 쓴다고 하니, 나도 살아남으려고 무진장 고생을 했겠구나 싶으면서 나 스스로를 가만히 감싸 안아주고 싶어졌다.




시청률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는 ENA 화제의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2화 ‘흘러내린 웨딩드레스’ 말미에서 영우는 드라마 초반 결혼식에서 딸 손잡고 걷는 게 아빠들의 로망이라고 밝힌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는 결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폐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만약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결혼식을 한다면 동시 입장을 하겠습니다. 아버지가 배우자에게 저를 넘겨주는 게 아니라 제가 어른으로서 결혼하는 거니까요. 대신 아버지에게는 부케를 드리겠습니다. 아버지는 미혼부라 결혼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제가 결혼한 뒤 혼자 사시기보다는 결혼을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빠의 손을 잡고 입장했던 내 결혼식이 생각났다. 딸이 워낙 독립적이라고 생각해서 배우자와 동시 입장을 할 거냐는 아빠의 물음에 어떻게 된 일인지 아빠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사는 평소 나답지 않게 아빠의 손을 잡고 입장하겠다고 말했었다. 나는 독립적으로 보였지만 자식을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하는 아빠에게 평소 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늘 안고 살았어서, 결혼식에서만큼은 아빠의 로망을 충족시켜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를 일종의 화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나는 허구의 독립을 한 사람이라서 결혼을 하면서 오히려 그전까지 추구하던 완전한 독립에서 퇴행해서 허구의 독립에 머무르려고 했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을 하면 효자로 돌변해서 심지어 아내에게 대리 효도를 강요하는 남성들의 심리와 원리는 같다고 할 수 있다. 매회 성장하는 드라마 속 영우를 보면서 진정한 독립이 무엇이며, 여러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어떻게 정립하는지는 배운다. 10대 시절, 사춘기와 20대에 했어야 할 일들은 뒤늦게 그러나 한편으로 너무 늦지 않게 하나씩 해 나가는 기분이 드는 요즘이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2화 ‘흘러내린 웨딩드레스’ 중에서



같이 읽으면 좋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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