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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Feb 02. 2024

내 행복에 5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겨봤다

1년 간의 행복 연습 성적표

지난해(2023년)는 ‘매 순간 행복하기’가 목표였다(관련 글: https://brunch.co.kr/@smilepearlll/271). 난생처음 인생의 목적을 ‘행복’으로 정했다. 타인의 눈치와 사회의 시선을 적당히 의식하면서도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우선으로 하는 균형 잡힌 자아를 형성한 사람에게는 이 무슨 당연한 이야기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불행도 습관이고 행복에도 연습이 필요해서 자기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억압하면서 부모, 연인, 상사, 친구 등 타인의 욕구와 욕망을 채우고, 그들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 익숙한 사람에게는 이 당연한 행복 추구가 낯설고 어색하다. 나도 목표지향적으로 견디는 데 익숙하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착한 아이로 살고자 해서 이제껏 단 한 번도 ‘나의 행복’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 2023년 목표: 매 순간 행복하기(+나답게 멋지게 살기)

♣ 부제: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지금 당장 게을리하지 않기

♣ 세부안: 
 - 소중한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대하기

-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 갖기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목표지향적인 계획에 치중하기보다 이처럼 행복이라는 삶의 태도를 목표로 삼고 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실천하자니 ‘나는 언제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지’ 모른다는 문제에 봉착했다. 사랑처럼 행복도 쟁취하려면 쉽지 않고,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노력의 일환으로 매일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을 간략하게 일기를 쓰고, 그 옆에 5점 만점으로 행복 점수를 매기기로 했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좋아하는 신라면을 끓여 먹을 때: 5점 만점에 3점


-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5점 만점에 4점

- 서로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를 나누고 추천할 때. 심지어 상대방과 음악 취향이 비슷할 때: 5점 만점에 5점


- 산뜻하게 이불 빨래 완료: 5점 만점에 5점

- ‘해야지’하고 미뤄온 일을 드디어 해낸 통쾌함: 5점 만점에 5점


- 열심히 일 하고 운동도 마치고 따뜻한 물로 차분히 샤워하며 긴장을 풀 때: 5점 만점에 4점

- 계획한 대로 빡세게 알찬 일과를 보내고 하루 마무리 겸 설거지할 때: 5점 만점에 5점

- 긴장을 풀고 생각을 내려놓고 눈을 살포시 감고 이완 상태에 돌입했을 때: 5점 만점에 5점


- 내 수준보다 약간 높은 고난도 필라테스 동작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시도하고 해냈을 때: 5점 만점에 5점


- 내가 한 이야기에 타인이 재밌어할 때: 5점 만점에 5점

- 오랜 편한 친구와 두런두런 두서없는 전화 통화를 할 때: 5점 만점에 5점

- 타인의 성향과 마음, 감정을 오롯이 이해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건넸을 때: 5점 만점에 5점

- 감사하고 소중한 친구에게 선물과 편지를 보내고, 반응을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 5점 만점에 5점




행복 일기는 보름 정도 쓰다가 그만뒀다. 매일 비슷한 내용이나 상황을 반복해서 쓰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는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분명한 지점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겹치는 상황을 한 문장으로 요악해서 정리했지만, 대체로 어떤 일이나 순간에 집중해서 몰입하고 진력을 쏟은 뒤 얻을 수 있는 나른함과 이완감, 만족감, 이 전체적인 과정과 감정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예를 들면, 땀이 날 정도로 질주한 뒤에 소중함이 배가 되는 산들바람의 향긋함과 상쾌함, 이 전체적인 과정과 그 끝에 얻은 결과까지가 나에게는 최상의 행복이었다.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 위해 몰입하는 과정이 중요하고, 노력하는 과정을 떼어놓고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이치를 알고 있다는 점에서 행복의 원리를 어느 정도 깨닫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보다 더 큰 행복감은 타인과 제대로 정서적 교감을 이룬다고 느끼는 순간에 찾아왔다. 혼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보다 그 음악을 친구와 공유하며 이야기 나눌 때, 좋아하는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알아갈 때, 타인을 발견하면서 나의 새로운 면모 또한 발견할 때, 격의 없고 목적도 없는 편안한 대화를 할 때, 나의 생각이나 의견이 타인의 인생에 보탬이 된다고 느낄 때, 소중한 사람에게 생각지도 않은 반가운 연락을 받았을 때 등 타인과의 관계와 정서적 교류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개인적인 성취에서 얻는 행복감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년 동안 ‘매 순간 행복하기’를 목표로 두고 살아본 결과, 행복이란 결국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상황이라도 나의 태도와 몰입도에 따라서 만족감으로 나타나는 행복감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같은 강사님께 매번 50분 동안 똑같이 필라테스 수업을 받더라도 어떤 날은 만족감이 높고 홀가분한데 어떤 날은 어정쩡하게 불만족스러웠다. 그 차이는 얼마나 집중해서 오로지 코칭에 따른 동작 하나하나에 몰입해 얼마나 완성도 높은 동작을 50분 내내 만들어냈는지에 달려있었다. 한마디로 딴생각하지 않고 순간순간에 얼마나 몰입하는지가 곧 행복의 크기를 결정했다. 샤워할 때는 오로지 따뜻한 온기와 물소리에 집중하고, 잠을 잘 때는 오직 수면의 질에만 신경 쓰고, 사람과 대화를 할 때는 그 사람의 표정과 어투를 세심히 살피며 대화의 내용에 온전히 귀 기울이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오로지 음식의 맛과 향에 온 촉각을 기울이는 것, 이것이 바로 행복이었다.

수시로 변하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자신의 욕구에 제대로 귀 기울이며 적절히 대처하는 것도 행복이었다. 타인을 착취하면서까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지나치게 앞세우는 것도 문제지만, 도덕적 관념이나 경직된 신념, 사회적 시선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억압하는 데 익숙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마음의 목소리에 따라 행동할 필요가 있다. 행복에도 익숙해지려면 일정 기간은 충분한 반복 연습이 필요하니까. 힘들면 일이든 집안일이든 책임감을 내려놓고 잠시 멈추며 쉬고, 밤에 배가 고프면 살이 찔 염려를 내려놓고 야식도 좀 먹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지르기도 하고, 하고 싶은 일만 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말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만나기 싫은 사람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만나지 말고…… 타인에게 명백한 가해자로서 피해를 입히는 행위가 아니라면 지레 겁먹고 나 자신을 스스로 지나치게 옥죄며 엄격한 잣대 위에서 가혹하게 대하기보다 관대하게 대하며 내면을 풀어놓을 필요가 있다고 알게 되었다.


지난 1년 간의 행복 연습과 노력으로 매 순간 행복하기를 목표로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행복에 익숙하고 당연해지자 삶이 보다 유연해진 것 같다. 빡빡해서 삐거덕거리던 인생이라는 기계에 행복이라는 윤활유가 적당히 공급돼 이제야 제대로 원활하게 굴러가는 기분이다. 내면에 근육이 붙고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사람과 사물을 다각도에서 조명하고, 세상을 넓게 바라보는 힘도 생긴 것 같다. 그리고 저마다의 행복 연습으로 이 놀라운 변화를 다른 이들도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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