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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Mar 02. 2023

얼마 전 이혼 1주년이었다.

이혼이란 한마디로 무엇인가

얼마 전 이혼 1주년이었다. 다들 결혼기념일을 어떤 날짜를 기준으로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결혼식을 올린 날인지, 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한 날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대부분 결혼식을 치르고 세상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부부가 되었다고 선언한 날을 기준으로 삼지 않을까 싶다. 세상 대부분 사람들에게 결혼이란 일단은 ‘결혼식’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이라면, 이혼은 법적으로 서류를 완전히 정리하는, 그러니까 혼인신고서에서 기혼 상태의 기록을 지우고 ‘해당 사항 없음’이라는 이 한 장의 깨끗한 문서를 얻기 위한 고통과 인내의 여정이다. 즉, 나에게 이혼 1주년은 구청에 이혼신고서를 제출하고, 법적으로 이혼 절차를 마무리 지은 날이다.


이혼 1주년이 뭐 그리 대단한 날인가 싶기도 한데, 사실 나도 이처럼 의미부여를 하며 소소하게나마 기념을 하고 싶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콧노래가 흘러나올 만큼 흥겹고, 그 어떤 자부심과 만족감에 가득 차서 엔도르핀이 솟구치는 것만 같아서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얼음땡 놀이를 하다가 얼음을 외치고 일부러 자신을 속박하고 있다가 ‘땡’하고 얼음이 풀려서 다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된 기분이다. 지난 1년 동안 인간관계에서 몸을 한껏 움츠리고 있었다면 물론, 지금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이혼 1주년을 기점으로 사람들과의 교류의 폭을 넓히며 다시 인간관계가 좀 더 유연해지고 자유로워지고 있다.




나에게 이혼이란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의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대한 반성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We do not learn from experience,

we learn from reflecting on experience.

_존 듀이 John Dewey


세상은 온갖 기쁜 일과 힘겨운 일, 분노할 일과 슬픈 일 들로 가득 차 있다. 늘 기쁘고 즐거운 일만 가득하면 좋겠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소리소문 없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슬프고 아프고 분노할 일을 피해 갈 수 없다. 세상이 불공평한 것 같지만, 불행한 일은 부유하든 가난하든 외모가 아름답든 추하든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은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든 아니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으니 이런 면에서 어찌 보면 인간이란 존재는 결국 공평하기도 하다.


이혼이라는 갑자기 들이닥친 불행에 갈피를 못 잡고 휘청거렸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지금은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라며 내 이혼을 두고 웃으면서 자조 섞인 농담을 건넬 만큼 진정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나아가서 타인의 상실에 진심으로 매우 적절한 위로를 건네고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불행의 강도가 클수록 마음속 상처가 깊고 아픔도 클 수밖에 없지만, 그 불행을 끝끝내 불행으로 머물게 할지, 한 단계 성장하고 거듭나는 행복의 발판으로 삼을지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문자를 통해 머리로만 깨달은 것이 아니라 몸소 부딪히며 경험으로 체득하게 되었다. 물론, 세상에 긍정적인 경험, 부정적인 경험은 끊임없이 교차 반복되지만, 피상적인 경험 자체가 아니라 존 듀이의 말처럼 그 경험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 한걸음 더 나아가서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기로 ‘선택’하고 ‘결정’했는지가 실질적인 인생의 궤적을 그려 나가는 동력이 된다고 알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이혼이라는 인생의 큰 고비를 지나서 1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생각보다 빨리 어느 순간 마음속 상처가 거의 다 치유되었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마음속 상처도 결국엔 몸에 난 상처와 비슷한 것 같다. 입안에 혓바늘이 돋든, 발가락에 가시가 찔려 상처가 났든, 무엇인가에 부딪혀서 무릎에 큰 멍이 났든 이런 사소한 상처도 제대로 치유가 되지 않았을 때는 통증이 있어서 계속 아프고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신경을 쓰지 않고 어느 순간 잊어버리고 만다. 이젠 별로 아프지 않으니까 정신이 그쪽으로 기울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어, 그러고 보니 혓바닥이 더 이상 아프지 않네?’, ‘발가락 신경 안 쓰고 양말을 그냥 막 신고 있네?’, ‘무릎에 난 멍이 그새 어디로 가버렸네?’ 깨닫는다. 상처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완전히 치유가 된 것이다.


마음속 상처도 ‘과연 괜찮아질 수 있는 걸까?’, ‘왜 자꾸 떨치고 싶은 기억이 자꾸 떠오르는 걸까?’, ‘대체 언제까지 감정의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해야 하는 걸까? 미치겠다’ 싶다면 여전히 치유 과정에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혼의 경우에는 전 배우자가 잘 생각이 나지 않고, 생각이 난다 하더라도 ‘그래, 그런 사람이 있었지’ 정도로 가볍게 생각이 지나쳐버리고는 하는데, 이때가 되니 비로소 ‘내 마음이 제대로 치유되었구나’ 싶다.


이 과정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너무 잘 알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제대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에 앞으로 몇 번은 이혼 뒤 상처 치유 과정에 대해서 좀 더 나눠보려고 한다. 아마도 상처 치유 과정이면서 건강한 인간관계란 무엇인지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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