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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Mar 04. 2023

이혼은 결혼의 실패인가

이혼은 단연코 결혼의 실패가 아니다

한동안 청첩장 받는 일이 뜸하다가 올해 친구들이 우르르 결혼하고 있어서 오래간만에 결혼식 순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혼을 하고, 더 정확하게는 이혼의 상처를 치유한 뒤 지인들의 결혼 소식을 듣는 심정은 ‘아무 생각이 없다’가 가장 가까운 것 같다. 결혼은 물론 축하할 일이고, 나 또한 아낌없는 축하를 보내고 있지만 이것이 더 큰 행복으로 가는 관문이 될지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탄 건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아주 성숙한 일부를 제외하면 평범한 대부분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믿는 순간에 이 사람과 함께라면 지금의 행복이 평생 계속될 것이라는 착각 속에 결혼을 선택한다. 결혼은 평생 한 사람을 믿고 의지하고 지지한다는 공식적인 선언이다. 자신의 마음도 매 순간 변하는데 하물며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도 없는 타인을 한평생 굳게 믿고 사랑하겠다는 서약이라니. 지극히 이상적이고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에 가까운 이 엄청난 맹세를 말 그대로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진지한 고민 없이 너무 쉽게 내지르고 기꺼이 불행의 길목으로 뚜벅뚜벅 접어들고 만다. 어느 때보다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사랑에 눈이 멀어 세상에서 가장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순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그 순간에 아이러니하게도 예정된 결혼의 비극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결혼은 대부분 가장 행복한 순간에 선택하고, 이혼은 대부분 인생의 최악의 순간에 선택한다. 결혼은 축하와 축복, 사랑, 행복을 동반하고 이혼은 외로움과 상실, 아픔, 심지어 사회적 편견을 가져온다. 그래서 결혼은 긍정적이고 이혼은 부정적이라는 이분법에 빠지기 쉽지만, 이는 수많은 관계가 얽혀 있는 세상사와 인간관계를 너무 쉽게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단순하게 단정 짓는 것이다.


이런 편협한 생각과 달리 결혼은 행복으로 가는 관문이 아니라 지옥으로 가는 열차에 오른 것일 수도 있으며, 이혼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죽음이 아니라 나 자신이 새롭게 태어나는 축복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혼 1년이 지난 시점의 나에게 이혼이란 세상의 (일부) 편견과는 달리 축복의 성배를 집어 들고 행복으로 가는 완행열차에 오른 계기였기에, 지금은 옅은 미소를 띠고 덤덤하게 이 같은 긍정적인 경험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혼은 과연 결혼의 실패인가. 나는 단연코 이혼은 결혼의 실패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미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혼은 그냥 이혼이고 결혼은 그냥 결혼인 그 자체로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가치중립적인 일종의 이벤트(사건)이다. 만일 여전히 이혼이 결혼의 실패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혼의 상처가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거나, 그래도 이혼보다는 결혼이 낫다는 일종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거나 지난 결혼에 대한 미련을 아직 다 떨치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이것이 잘못이라거나 책망하는 결코 아니며, 다만 ‘내가 아직 이혼의 상처에서 다 벗어나지는 못했구나. 내 상처가 그만큼 깊구나’라고 깨닫거나 자신이 인생에서 결혼에 생각보다 더 높은 가치를 두고, 사회적인 관습을 따르려는 경향이 큰 사람이구나 수용하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결혼과 이혼을 과연 성공과 실패라는 단어로 묶을 수 있을까. 이혼을 결혼의 실패로 정의한다면 그럼, 이혼하지 않는 것 즉, 결혼을 유지하는 것은 과연 결혼의 성공인가. 결혼을 실패한 결과를 이혼이라고 생각한다면, 이혼은 곧 실패이기 때문에 아무리 결혼생활이 불행하고 힘들더라도 악착같이 결혼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우리는 누구도 실패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사고방식으로는 불행한 결혼일지라도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쉽게 놓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이혼이 실패라면 결혼은 성공이어야 하는데 과연 성공한 결혼이란 무엇인가. 결혼을 한 자체가 성공인가. 결혼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성공인가. 결혼과 이혼은 인생에서 일어난 사건(이벤트)이기도 하지만 현재 나의 상태이기도 하다. 즉, 결혼한 상태, 미혼인 상태, 이혼 뒤 미혼인 상태처럼 말이다. 이혼이 결혼의 실패라면, 이혼 뒤 미혼으로 살고 있는 나는 결혼에 실패한 일종의 ‘실패자’인 셈인데 나는 내가 실패자라고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


만일, 이런 생각이 나를 지배한다면 마음이 너무 무겁고, 내가 미치 인생의 패배자 같고, 세상에 결혼한 사람들 전부에게 열등감을 느껴서 마음이 너무 힘들 것 같다. 이혼을 결혼의 실패라고 생각한다면, 이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결국 최대한 빨리 다시 결혼 상태로 돌아가는 것인데, 과연 이때의 결혼을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아마도 똑같은 불행을 반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이혼은 결혼의 실패가 아니다. 이혼은 법적으로는 결혼의 종료이며, 감정적으로는 인간관계의 끝맺음, 헤어짐이다. 한때 열렬히 사랑했고, 가장 큰 기쁨을 나눴으며,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하며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던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사랑의 크기가 크고 관계가 깊었을수록 상처는 깊고 아픔은 크며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지난 이혼에서 인연이 다한 관계는 미련과 집착을 버리고 자연스레 놓아줘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유효기한이 다한 인간관계를 미련에 집착해 애써 붙잡고 있다면, 이는 냉장고에 버려두고 방치해서 썩어서 곰팡이가 피고 냄새가 나는, 비싸게 주고 구입했던 한때는 좋은 식재료였던 그러나 지금은 음식물쓰레기로 전락한 것을 아깝다며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를 용기 내서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면 썩은내는 온 냉장고에 퍼져갈 것이고, 다른 좋은 식재료까지 결국은 부패해서 먹지 못하고 전부 버려야 할 수도 있으며, 시간이 더 경과한다면 아예 냉장고 자체를 버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준비된 자의) 이혼은 결혼의 실패가 아니라, 용기이고 더 나은 삶을 향한 발판이다. 익숙하고 편안해서 끊기 힘든 해로운 관성에서 벗어나 용기를 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결단인 셈이다. 결혼이라는 낡고 오랜 관습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유연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한편, 영화 <세 자매>에서 미연(문소리 扮)은 이혼을 원하는 남편에게 ‘이혼도 능력이 돼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데, 여기에서 능력이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요소는 바로 경제적 능력이다. 즉, 이혼은 경제적 능력을 갖춘 자가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필요한 시점에 이혼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는 결혼의 실패가 아니라 선택지를 두고 고민할 수 있는 여유롭고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관계에는 좋든, 싫든 언젠가 끝이 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연인이 헤어지면 이별이고, 부부 중 한 사람이 먼저 죽으면 사별이며, 부부가 살다가 헤어지면 이혼이라고 부른다. 명칭과 헤어짐의 이유는 다르지만 사랑했던 감정을 간직하고, 상실의 아픔을 견뎌내며, 외로움의 시간을 지나서 회복하는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직 이혼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다면, 조급해하지 말고 많이 아파하고 마음껏 울고 욕도 하고 화도 내며 자신만의 속도로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갖기를 바란다. 그러다 보면 이혼도 여느 이별과 다르지 않다고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순간이 불현듯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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