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구체적인 대학 수시 과정 경험담
너무 옛날이야기라 부끄럽지만, 연세대 신문방송학과(現 언론홍보영상학부)에 입학한 구체적인 과정을 정리하려고 한다. (나도 그렇고) 사람들은 대부분 타인이 얻은 좋은 ‘결과’에만 주목해 부러워한다. 실수투성이라 별로 멋스럽지도 않고, 시도하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일희일비해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싶은 ‘과정’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성인으로서 첫 사회 진출 준비였던 대학 입시 ‘과정’에서 나는 꽤 많은 삶의 지혜를 얻었다. 누구나 다 아는 삶의 철학이라 시시할 수도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신의 적성과 관심에 맞는 자리(여기에서는 전공과 대학교)를 잘 찾아가야지 만족하되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불안함과 덤덤함이 교차하는 가운데 대학 입시라는 인생의 큰 관문을 어떻게 지났는지 세세한 이야기를 떠올려보려고 한다.
우선, 나는 모의고사 점수가 좋지 않은 반면,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내신은 최상위에 속했기 때문에 수시(성적우수자전형 또는 학교장추천전형)에 집중하기로 전략을 세웠다.
1학기 수시에서는 가장 가고 싶은 대학교의 과 몇 군데만 지원했다. 2학기 수시 선발 폭이 훨씬 넓고 인원이 많기 때문에 1학기에 굳이 하향 지원을 할 이유는 없었다. 연세대학교도 지원했는데 서류 전형에서 떨어져서 면접조차 보지 못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는 서류 전형을 통과해서 면접을 봤지만 최종적으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1학기 수시는 선발 인원이 워낙 적기 때문에 실력이 월등한 이들이 뽑히고, 나처럼 평범한(?) 이는 합격하기 어려우리라 예상해서 충격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다만, 1학기 수시에 합격하면 대부분 수능 최저 등급에 상관없이 바로 입학 허가가 주어졌기에, 결국 수능시험을 치는 부담감을 끝까지 안고 가야 하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한편, 만일 이때 운 좋게 이화여자대학교 1학기 수시 전형에 합격했다면 나는 ‘이대 나온 여자’가 되었을 것이고, 이화여대보다 브랜드 가치가 높은 연세대의 프리미엄을 누릴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또 반에서 나와 성적이 비슷한 친구는 1학기 수시 전형으로 경희대 법대에 합격해서 만족하며 2학기에 입시 경쟁에서는 벗어났지만, 한편으로 더 상위 대학에 도전할 기회를 놓쳤다고도 할 수 있다. 이 경험으로 좋은 일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닐 수 있고, 나쁜 일이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닐 수 있으니 인생을 살면서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고 깨달았다. 또한 어떤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실력보다는 ‘운’과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연세대학교 입학은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운도 많이 따랐다고 생각해(사실이다) 겸손할 수밖에 없다.
2학기 수시에서는 웬만한 서울 소재 대학교에는 전부 지원을 했다. 나는 논술보다는 면접 전형에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면접 전형이 있는 학교는 상향 지원 같더라도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으로 희망하는 전공(신문방송/언론홍보 계열)에 지원했다.
상향 지원(고려대/서강대)인데 논술 전형인 학교는 인문 계열 지원자가 사회과학 계열보다 성적이 약간이라도 낮지 않을까 싶어서 크게 관심도 없는 불어불문학과 같은 인문 계열에 지원했고, 둘 다 논술 전형에서 떨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성적의 유불리와 지원한 과에 상관없이 나에게 약한 논술 전형을 통과해야 한다는 전형 방식 자체가 나에게 불리했던 것 같다. 이들 학교도 연세대처럼 논술 없이 면접만으로 선발했다면 나의 합격 여부도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서울대는 생각조차 안 했는데, 성적순으로 학교장추천 2인에 해당해서 지원할 수 있었다. 상향 지원이다 보니 자신감이 없어서 (언론학과보다 성적이 낮은 학생이 지원하지 않을까 싶어서) 뜬금없이 중어중문학과에 지원했고 면접 기회까지 주어졌지만 보기 좋게 떨어졌다.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배웠고, 고등학생 때 중국어 학원도 다닐 만큼 중국어에 관심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대학교에서 중국어와 중국문학을 전문적으로 배워야 할 특별한 동기가 있지는 않았다.
면접은 수능시험 며칠 후에 진행했는데 수능 최저등급(2등급 이상 2개 영역)까지 충족해 이미 연세대 입학을 확정했고, 내 입장에서는 수능이라는 마지막 중요한 고비를 넘어서인지 마음도 풀어졌다. 서울대 면접(서울대 수능 필수 과목인 국사를 선택했는데도 불구하고)을 앞두고는 ‘서울대는 가면 좋고 아니면 말고’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간절함도 덜해서 면접 준비에도 최선을 다하진 않았다. 차라리 이때도 생각지도 않게 찾아온 기회에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으로 관심 있는 언론학부에 지원했다면, 만일 운이 좋아서 면접 기회가 주어졌을 때 면접 준비를 좀 더 신경 쓰고, 합격할 확률도 중어중문학과보다는 높지 않았을까 싶다.
수시 전형으로 가장 먼저 입학 허가가 주어진 학교는 한국외대 신문방송학과였다. 2학기에 처음으로 면접을 본 학교였는데, 논술 전형에서 계속 탈락, 심지어 성균관대는 사회계열을 지원했는데 자기소개서가 별로였는지 서류 전형에서 떨어지는 등 연이은 불합격 때문에 불안감과 초조함은 극에 달했고, 거의 매주 논술 시험을 치거나, 시험 일정이 겹치면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스트레스도 극심해서 한국외대 면접을 볼 때는 절박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압박감에 시달렸다.
당시에 한국외대 신문방송학과 2학기 수시는 최종 2명 선발이었고, 면접 전형은 4배수인 8명을 선발했다. 합격 인원이 너무 적어서 처음에는 과연 두 명 안에 들 수 있을까 긴장했는데, 어차피 내 입장에서는 합격 또는 불합격인 50% 확률이므로, 최종 선발 인원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약간은 편해졌다. 8명 가운데 나는 마지막 면접자였는데, 한국외대 면접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살면서 이렇게 망친 면접은 처음이라 나의 한심함과 기회를 또 날렸다는 좌절감,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감에 시험장을 나오자마자 무슨 실연한 사람처럼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소리 내 펑펑 울었다.
한국외대 면접은 지원 동기 등의 기본 질문 외에 제시된 영어 지문을 그 자리에서 바로 해석하고, 내용을 요약해 설명하는 영어 시험도 있었다. 내가 받은 지문은 Levi Strauss 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고, 어려운 지문은 아니었는데 ‘레비’라는 사람과 지문에 등장하는 ‘광부’와의 연관성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끝끝내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결국, 면접관들 앞에서 Levi’s 어쩌고로 시작하는 문장을 읽으며 바보 같이 레비스, 레비스만 반복하다가 너무 당황해서 벙찐 얼굴로 면접관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시험장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 지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LEVI’S)의 유래에 관한 평이한 수준의 영문 단락이었다. 미국의 골드러시 시기, 거친 작업 탓에 쉽게 헤지는 광부들의 작업복을 목적으로 텐트를 만들고 남은 튼튼한 천으로 만든 바지가 청바지(Levi’s Pants)의 시초라는 익히 알려진 내용이었다. 아마도 Levi’s 라는 단어를 레비스가 아니라 르바이스 정도로만 읽었어도 금세 청바지를 떠올렸을 듯한데, Levi Strauss 에서 슈트라우스라는 명칭에 꽂혀서 레비라는 음악가 정도를 떠올리며 내용을 이해하려다 보니 도저히 내용을 파악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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