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구체적인 대학 수시 과정 경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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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대는 당연히 떨어졌다고 생각해서 합격자 발표일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 수능시험 전 유일한 면접 일정인 연세대 면접 준비에 몰두하던 어느 날, 복도에서 환한 얼굴의 담임 선생님을 마주했고 한국외대 수시 합격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전혀 뜻밖이라 처음에는 반갑기보다는 현실감을 잃었다고 해야 할까. 그 자리에서 굳은 것처럼 멍하니 서 있다가 갑자기 한여름 장맛비 같은 굵은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다. 이때껏 겉으로는 태연한 척, 괜찮은 척했지만 오로지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중압감에 짓눌려 실제로는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한국외대 2학기 수시는 수능 최저 조건 없이 합격하면 바로 입학 허가가 주어졌다. 이제 수능을 아무리 못 보고 다른 수시를 다 불합격해도 최소한 한국외대에는 다니게 된 것이다. 기쁨의 눈물은 이내 긴장감을 잠시 내려놓은 안도의 눈물로 바뀌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은 이때 복도를 지나가던 같은 반의 남자 친구들 몇 명이 내 소식을 알고는 복도가 떠나가라 힘껏 박수를 치며 소리 높여 축하와 격려를 보내주었다. 그 친구들은 성적이 좋은 편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서울에 있는 하위권 대학 진학도 어려운 형편이고, 선생님들께 공부 안 하고 말썽 부리는 아이들로 낙인찍혀 꾸중 듣고 지적받기 일쑤였지만, 타인과 자신을 지나치게 비교해 낮은 자존감에 사로잡혀 불행을 자처하지 않고, 같은 반 친구의 성취와 노력을 인정하고 한껏 축하할 줄 아는 심성이 곱고 마음이 넉넉한 사람들이었다. 다들 잘 살고 있나 모르겠네. 우연히 그중 한 친구의 소식을 SNS 때문에 알게 되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이 우리 반이었던 친구와 결혼해 전 세계를 여행하며 유쾌하게 살고 있었다. 그때도 둘이 서로 장난치고 투닥거리다 장난이 지나쳐서 한 명이 분을 못 이겨 울면 다른 한 명이 미안하다고 달래주며 묘하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두 사람의 관계가 잘 풀린 모양이다.
결과가 좋아서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2학기 수시 면접은 꽤 괜찮게 봤다. 면접 질문은 오늘 신문에서 기억 남는 기사가 있는지,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였는지, 대기 시간에 제시된 지문인 인터넷의 익명성과 인터넷 실명제에 어떤 입장인지 총 3개였다. 내가 생각해도 기본적으로 솔직하고, 10대 고등학생이라서 할 수 있을 법한 독창적인 생각을 논리적으로 일목요연하게 답변했다. 십 대 들어서 정한 꿈이 방송국 아나운서였고, 사소하지만 학급 신문이나 가족 신문 등 신문 만들기에도 흥미가 있었고, 초등학생 때는 지역 어린이 신문 기자에도 지원한 경험이 있으며, 고등학생 때는 교내 방송반에서 활동하는 등 흥미와 적성에 맞는 전공이기 때문인지 면접도 (잘 봤다는 자신은 없어도) 제법 수월하다고 느꼈다. 무엇보다 몇 주 전에 한국외대 입학 허가를 받아서인지 성의껏 최선을 다하되 ‘이거 떨어지면 끝장이야’ 같은 절박함보다는 심적인 여유가 생겨서 면접에서 기량을 한껏 발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연세대 면접을 보고 나왔을 때는 울지도 않았고 약간 달뜬 상쾌한 충만함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내가 준비한 만큼은 하고 나왔다’, ‘이제 결과는 내 손을 떠났다’ 같은 생각에 마음이 가볍고 기분이 좋았다.
지금도 불가피하게 한정된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할 때나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는 면접, 시험 등을 치러야 할 때면 가끔 대학입시 준비 과정을 떠올린다.
- 우선, 원하던 자리를 차지하거나 합격했다고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다른 귀한 기회를 놓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결과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 실패와 탈락을 거듭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야 할 일에 집중해서 노력하고 문을 두드린다면 어딘가 반드시 내 자리는 존재한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딱 한 자리만 차지하면 되는 거다.
- 합격과 성공은 ‘운’도 많이 작용하므로 자만하거나 자랑할 필요도 없다. 만일 연세대 수시 전형이 당시에 논술 위주였거나 면접에서 다른 면접관이 감독관이었다면 나도 얼마든지 탈락할 수 있었다. 물론, 고3 내내 열심히 노력했지만 입학 기준이나 과정이 달라서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해 나의 강점을 살릴 수 없었다면 결과가 어땠을지 결코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노력해서 원하는 자리를 얻고 대학에 입학하고 시험에 합격하는 일은 물론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인생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가치는 내가 진정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며 장단점은 무엇인지, 어떤 일은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등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파악하고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제대로 찾아갈 때 비로소 애써 공들인 노력도 빛을 발휘하고 주변 사람과도 잘 어울리며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불확실한 여정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