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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n 18. 2020

나는 입맛이 까다롭습니다.

총떡과 막국수

매년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있다. 크리스마스? 내 생일? 성과급 시즌? 반가운 날이긴 하지만 모두 아니다. 음력 12월 7일, 양력으로는 신년인 1월 어귀 즈음인 바로 할머니 생신이다. 일 년 중 유일하게 할머니께서 직접 만드신 총떡을 먹을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할머니께 직접 요리를 대접해드리진 못할지 언정 아흔을 코앞에 두신 할머니께 여전히 의지할 생각을 하다니. 아직 철이 들려면 멀었나 보다. 하지만 어떡해. 할머니의 총떡은 음식점의 메밀전병과 비교하는 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 정도로 무척 맛있는걸.


총떡이 뭐지? 싶은 분들은 얇게 펴서 기름에 부친 메밀반죽 위에 다져서 볶은 돼지고기, 채를 썬 무, 김치, 숙주나물 등을 올려서 익히다가 길게 돌돌 말은 후 가위나 칼로 송송 썰은 메밀전병을 떠올리면 된다. 그것이 바로 강원도 토속음식 총떡이다. 할머니께서 총떡을 부치실 때면 곧잘 ‘00야, 따뜻할 때 총떡 갖고 가서 먹거라.’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총떡? 촌떡? 메밀전병이라고 하시면 될 텐데 강원도에서 메밀전병을 부르는 말인가 보다 라고 생각을 했다. 알고 보니 총떡은 국어사전에 표준어로 등록이 되어있고, 총처럼 길어서 이처럼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종각까지 이어지는 종로 옛 피맛길에 지금처럼 현대식 아카이브 건물이 조성되기는 전이니 한 5~6년 즈음된 일인 것 같다. 지인들과 르메이에르 건물 안의 칼국수와 빈대떡을 파는 음식점에 갔다. 각자 식사 메뉴를 주문을 하고, 다 같이 먹을 주전부리로 메밀전병을 하나 시켰다. 요리를 해서 나온 메밀전병을 보고는 정말 깜짝 놀랐다. 우선, 양이 너무 적었다. 집에서 만들 때 기본 2~30개씩 쌓여있는 걸 나 혼자 마음껏 2~3줄씩 먹곤 했다. 한 줄인가, 두 줄인가 나왔던 메밀전병은 성에 찰 리가 없었다. 예닐곱 명이 입가심 정도로 한, 두 조각씩 먹고 나니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접시가 비워졌다.


양도 양이지만 심지어 맛이 너무 없었다. 피는 두껍고 간은 셌으며 부침개는 기름 범벅이라 느끼했고 기름 맛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맛과 양에 비해 8천 원인가, 1만 원인가 했던 가격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조각 맛을 보고는 더 이상 젓가락을 들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총떡은 크기는 파는 것보다 작고, 번철이 아닌 프라이팬에서 요리를 한 것이지만 부침개의 두께가 얇고 소의 간이 세지 않고 담백하다. 메밀의 투박한 고소한 맛과 소의 조미료를 넣지 않은 적당한 감칠맛이 잘 어우러진 맛이 느껴진다. 번철이란, 빈대떡 전문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을 부칠 때 사용하는 솥뚜껑을 엎어놓은 것처럼 생긴 무쇠 그릇이다. 가장자리로 갈수록 높고, 가운데는 낮아서 전체적으로 약간 오목하게 생겼다. 반죽을 번철의 가장자리부터 흘리면 전을 얇게 부칠 수가 있다. 기름도 적게 먹혀 메밀의 향이 죽지 않는다.


여느 전통 있는 음식점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할머니의 80년 노하우를 넘어서긴 쉽진 않을 것 같다. 에헴, 이것이 어른에 대한 예의지. 그렇고 말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먹이기 위한 요리와 수입을 목적으로 손님들을 위해 정성을 쏟는 것은 애당초 비교불가이지 않을까. 




강원도 할머니의 정성이 듬뿍 담긴 메밀총떡 맛에 길들여져서 메밀 요리 고급 입맛을 자랑하고 있다. 나의 이런 까탈스러움은 또 다른 유명 메밀 요리인 막국수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이건 다 할머니의 친동생이신 강촌 이모할머니 때문이다. 이모할머니께서는 오랫동안 춘천에서 막국수 음식점을 운영을 해오고 계신다. 아빠의 고향인 춘천으로 한식에 온 가족이 벌초를 갈 때면 어릴 때는 나도 따라가곤 했다. 벌초를 마친 후에는 꼭 이모할머니 가게에 들러서 막국수 한 그릇씩을 먹고 오곤 했으니, 가게 운영을 하신지 최소 30년은 되신 거다. 참고로 막국수의 ‘막’은 국수를 막 뽑아서 지금 바로 만든다는 의미가 있다. 또 다른 유래로는 동치미든, 육수든 있는 국물에 말아서 열무김치를 올리든, 양념장에 비비든 형편껏 마음대로 해 먹는 국수여서 막국수라고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메밀을 껍질째 막 갈거나 빻았기 때문이라거나 면발의 색깔이 거뭇거뭇하기 때문에 이처럼 불렀다는 설도 있다.


아마도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시험공부, 친구와의 약속 등을 핑계로 벌초에 따라가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늘 기다리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부모님께서 포장해 오신 이모할머니 표 막국수였다. 춘천에서 우리집까지 약 80km가량이니 길이 안 막힌다고 해도 승용차로 1시간 30분 정도는 걸렸다. 메밀로 만든 면은 당연히 그 사이에 퉁퉁 불고 말라서 잘 비벼지지도 않았다. 육수를 넣고 한참을 뒤적거려야 겨우 면이 풀어졌다. 불어 터진 면인데도 만들어주신 양념장을 넣고 비빈 후 김 가루를 뿌려서 먹으면 고소하고 담백하고 적당히 짭짤한 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너무 맛있어서 한 그릇을 비우고도 늘 모자라서 아쉬웠다.


막국수가 유행까지는 아니지만 서울에 전문점이 제법 늘어난 것 같다. 그래도 삼겹살, 치킨, 김밥, 떡볶이만큼 흔한 음식점은 아니기에 점심, 저녁 시간에 막국수 전문점에 가면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포기를 하거나 기다렸다가 먹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맛집이라고 소문이 난 데다가 늘 사람들로 문전성시니 함께 간 지인들은 보통 ‘맛있네요.’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이에 나는 ‘먹을 만하네요.’ 정도로 대충 얼버무린 대답을 하곤 한다.


약간 ‘라떼는 말이야~’ 싶기도 하지만 나름 막국수 시식 분야에서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입장에서 맛을 논하자면 이렇다. 메밀막국수의 본고장인 강원도에서 전문 요리사가 직접 만든 것을 거의 매년 먹은 지 어느덧 30년 가까이 된 사람의 말이니 믿어도 된다. 아, 이거 너무 약 파는 거 같은데. 믿고 싶으면 믿고, 말고 싶으면 말고다. 내가 생각할 때 면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면발이다. 내가 먹던 막국수는 면이 푸석푸석할 정도는 아니지만 끈기가 거의 없이 점성이 낮아 부드럽고 담백했다. 그런데 서울 맛집의 막국수는 냉면만큼 질긴 건 아니지만 면이 제법 탱탱하고 점성이 높았다. 아마도 반죽에 촉감이 거친 메밀이 들어가는 비중이 낮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파는 총떡과 마찬가지로 양념장 간이 너무 세다. 많이 맵고 짜서 메밀면과 양념이 입안에서 따로 노는 것만 같다. 자극적인 맛이라 물을 연거푸 들이켜더라도 한 그릇을 다 비우기에는 입도, 위도 부담이다. 내가 먹던 막국수는 간은 심심한데 달짝지근하면서도 짭조름한 게 고소했다. 면의 메밀 맛도 느껴지면서 양념과 아주 잘 어우러져서 담백했다. 약간 과장을 보태자면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전문 음식점이라고 하더라도 신선한 재료를 얻기에 더 수월하고, 지역민의 오랜 비법이 시나브로 녹아든 현지의 일반 식당에 비하지는 못할 거다. 이를 감안을 하더라도 지나치게 달고 짜고 매운 걸 선호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심심하면서도 오롯한 막국수 본연의 매력이 퇴색된 건 아닌가 싶어서 아쉬운 마음이다.


얼마 전에 집 근처에 막국수 전문점이 새로 개업을 했다. ‘그래, 한번 속아나 보자.’ 라는 생각으로 갔는데 맛있었다. 막국수 종류는 비빔막국수, 물막국수, 물비빔막국수 세 종류였고, 가격은 모두 같았다. 명칭만 다르지 조리법이 다른 건 아니고, 취향에 따라 요리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막국수에 육수를 부으면 물막국수, 양념장을 넣고 비비면 비빔막국수, 양념을 조금 덜 넣고 육수까지 부으면 물비빔막국수였다. 모든 이들이 똑같이 메밀 본연의 맛을 보면서도,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방식으로 개인의 입맛을 존중하는 막국수의 조리법이 참 좋다. 가까운 곳에 손맛이 좋은 주방장이 요리를 하는 음식점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나의 엄격한 기준으로 이모할머니의 막국수에 미치진 못하지만 비스무리한게 그럭저럭 괜찮다. 합격점이다. 이모할머니의 손맛은 절대 따라갈 수가 없다. 그녀는 넘사벽이다.




한편, 이모할머니의 막국수 가게는 십여 년 전, 갑자기 장사가 매우 잘되어서 줄을 서서 기다려도 먹지 못하는 맛집으로 급부상을 했다. 2009년 서울춘천고속도로가 개통을 하면서 위치적으로 목이 좋고 교통이 편리한 곳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그즈음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혁신적인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출시를 했으며, 이후 SNS 시대가 개막을 했다. 워낙 맛이 좋아서 한번 방문을 한 사람들은 SNS로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고, 편리해진 교통 덕분에 식객들의 방문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늘어난 손님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2호 점도 개업을 했다고 들었다.


우리 할머니의 말씀으로는 그렇게 속썩이던 자식들도 돌아와서 가족이 다 같이 가게를 꾸려가고 있다고 하셨다. 막국수 손맛 하나로 이십여 년 넘는 세월 동안 빠듯하게 가게를 운영을 하면서 자식들을 키우고 가족을 부양한 끝에 찾아온 행운인 거다. 할머니께서도 동생(이모할머니)을 두고 '그렇게 마음 고생, 몸 고생하더니 말년에 잘 풀리려고 그랬다 보다.'라고 하셨다. 정말 잘된 일이다. 기술의 발전과 교통의 발달은 기회를 창출하고, 풍요를 불러오는가. 우리 이모할머니의 사례에 한해서는 정말 그렇다 라고 말을 할 수 있다. 단, 의도치는 않았겠지만 그녀는 세월의 풍파를 견뎌오면서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던 거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_천상병, ‘귀천’ 중에서


나는 음식의 또 다른 이름이 ‘기억’이라고 생각을 한다. 누군가는 내가 이 글에서 표현한 것과는 전혀 다른 강원도 현지의 막국수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총떡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할머니가 만드신 총떡은 우리 가족만이 맛을 보았기 때문에 더욱 희소하다. 할머니의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가 먹어봤으니 고작해야 서른 명 남짓도 되지 않을 것 같다. 같은 음식을 먹은 서른 명도 제각각 기억하는 맛과 요리는 모두 다를 것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같은 음식은 세상에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거다.


천상병 시인은 인간의 유한한 삶을 소풍에 비유했다. 결국 모든 관계는 반드시, 언젠가 영원한 이별로 마무리 지어진다. 그때가 온다면 나는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었던, 다시는 맛을 볼 수 없는 할머니의 총떡이 너무나도 그리울 것 같다.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을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겨둔 채 다시는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오는 아련한 먹먹함이다. 내 기억 속에 각인될 그녀가 남길 소중한 유산인 거다. 우리는 이렇게 음식에 녹아든 각자의 기억과 그리움과 뭉클함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



참고 자료


총떡, 막국수의 명칭, 유래, 조리법, 특징은 기본적으로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을 토대로 위키피디아, 나무위키,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네이버 국어사전, 네이버 지식백과의 정보를 교차 확인했습니다.


강원도 총떡을 번철로 요리했을 때의 특징은 아래 칼럼을 참고했습니다.

https://blog.naver.com/dongtuni/22110455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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