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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ug 04. 2020

알차게, 멋지게, 오래오래 일하는 사람들

복합문화공간 ‘최인아책방’ 이야기

# 최근 47년생인 지인의 아버지께서 재취업을 하셨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사무실에는 컴퓨터와 내선 전화기가 설치된 책상도 마련이 되어 있었다. 그의 직책은 홀몸어르신살피미. 가족들조차도 73세인 그의 재취업은 불가능한 무모한 시도라고 생각을 했다. 은퇴하신지는 오래되었으나 남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직장을 다니고 싶다며, 마흔일곱 곳에 지원을 했다. 집념 끝에 그는 마침내 소중한 기회를 얻어냈다.


# “정년퇴직 후 다시 일을 시작할 때는 일자리가 있다는 자체도 즐겁고 나갈 수 있는 데가 있다는 자체가 너무 즐겁더라고요.” 경력 44년의 우리나라 최고령 호텔 도어맨 67세 권문현 씨. 1977년 웨스턴 조선 호텔에 입사를 해 2013년 정년퇴직을 했다. 얼마 후, 현재 근무 중인 호텔에서 제안이 와 지금까지 6년 반 동안 근무를 하고 있다. 특유의 꾸준함으로 그는 정년을 뛰어넘은 사람이 되었다.




강남에서 업무 미팅이 늦게 끝났다. 회사로 복귀하기에는 시간이 애매했다. 한창 주목받고 있는 ‘최인아책방’을 탐방한 후 바로 퇴근을 해도 될는지 팀장님께 문자를 남겼다. 출판 영업/마케팅도 여타 산업처럼 온라인 서점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온라인 서점의 베스트 순위를 높이고, MD를 설득해 메인 화면에 노출 구좌를 얻어내기 위한 이벤트/프로모션을 기획하고, 광고를 집행하는 게 가장 중요한 업무였다. 연차가 쌓일수록 매장을 방문할 일은 더욱 줄어들어, 기회가 생길 때마다 일부러 시간을 내, 보고 후 매장을 방문하는 것은 권장 사항이었다. 어차피 각종 업무는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메신저에 접속하는 순간 실시간으로 확인을 하고, 답변을 하면서 처리를 할 수 있는 세상이다. 팀장님의 답변을 기다릴 것도 없이 포스코 사거리에서 최인아책방이 있는 선릉역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계속 직진을 하다가 횡단보도를 하나 건넜다. 선릉역에 다다른 후 우회전을 해 150m가량을 걸어가니 목적지가 보였다. 방금까지 왕복 10차선의 테헤란로를 따라 걷다가 우회전을 한번 했을 뿐인데 왕복 4차선을 따라 조성된 거리는 고즈넉하고 한산했다. 보슬비가 내려서 더 기분이 차분해진 것 같았다. 최인아책방이 있는 건물의 1층에는 비꼴리끄(BUCOLIQUE)라는 딱 봐도 고급스러운 의류 부티크가 있었다. 옷이 단정하게 진열된 디스플레이를 지나니 건물 끝에 최인아책방으로 향하는 문이 있었다. 건물 우측에 설치된 나지막한 쇠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치 비밀의 화원에 들어 선 기분이었다. 왼쪽을 바라보니 드디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였다. 최인아책방은 4층이었다. 3층에는 ‘혼자의 서재’라는 곳이 있었고, 아마도 유료 공간인 듯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을 눌렀다.




내가 최인아책방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전 제일기획 부사장이자 첫 여성 부사장이었던 최인아 씨가 사장이라는 것이었다. 직접 설립했고 운영을 하는 책방이지만 서점 상호에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것은 참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에 착 감기는 묘하게 중독성이 있고 기억에 남는 책방 이름이었다. 기사에서 읽기로는 독특한 큐레이션이 특징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책을 찾게 되는 이유를 생각해 각 주제를 정한다. 분야 상관없이 주제에 부합하는 책을 골라 진열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까?’, ‘분야는 달라도 인사이트가 깊은 책’, ‘일을 하다 잠시 멈추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책’ 등과 같다. 지인에게 추천한 이유를 써 달라고 부탁해 독자가 책을 고를 때 읽어볼 수 있게 했다. 물론, 인문/소설/자기 계발/에세이/취미실용 등 익숙한 기존의 방식으로도 분류가 되어 있다. 단순히 책을 팔고 읽는 공간이 아니라 작가행사, 콘서트/공연, 강연회 등을 적극 유치해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을 콘셉트로 한다는 소개글을 읽었다.




의외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건물이었다. 크기와 높이만 다를 뿐 네모 반듯한 회색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에서, 색색의 갈색 벽돌로 쌓아 지은 청록색의 지붕이 잘 어울리는 약 5층 높이의 이 건물은 외관부터 독특했다. 외국의 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오던 1900년대 전후 경성(‘서울’의 전 이름. 1910년에 일본이 침략하면서 한성(漢城)을 고친 것이다.)에 생겨난 동서양의 건축 양식이 혼합돼 특이하면서도 세련된 건축물을 보는 것만 같았다. 2018년 tvN에서 방영된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쿠도 히나(김민정 扮)가 경영하던 글로리아 호텔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건물 전체 크기나 규모가 결코 작은 것 같지는 않은데, 층마다 천장의 높이가 높고 디자인에 변화를 주었기 때문인지 넉넉하면서도 아기자기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4층에 도착을 해 책방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 평대의 책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회사 생활과 관련한 책들이 진열이 되어 있었다. 굵고 투박한 글씨체로 <사직서에는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장재열·장수한, 스노우폭스북스, 2017.12)>라는 직설적인 제목에, 독립출판물 느낌이 물씬 풍기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신간,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위주로 진열을 하고 재고를 구비하는 대형서점에서는 이미 서가에 꽂혀 있거나 자취를 감췄을 책이다. 역시 동네 서점은 매력적이다. 미처 알지 못했지만 우연히 내게 딱 필요한 책을 만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표3(뒷날개)의 문구가 마음에 훅 들어왔다.


부장님은 말했습니다.
“요즘 애들 도무지 알 수가 없다니까?
속 시원히 말 좀 해 봐. 왜 나가는데?"

쓰고 싶은 말이 참 많습니다.
‘너 때문이다. 이거 하나는 레알 쓰고 싶다…’

그렇게 수많은 문장을 머릿속으로
쓰고 지우다 나온 건 딱 네 글자.
건.강.문.제.

퇴사자는 말하고 싶지만 할 수 없고,
상사는 알고 싶지만 절대 알 수 없는,
사직서의 ‘진짜’ 이유들.

지금 시작합니다.

_ 장재열·장수한, <사직서에는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스노우폭스북스, 2017.12)> 표3(뒷날개) 중에서




서점 안을 둘러보면서 구비된 책을 살펴봤다. 재직 중이던 회사에서 출간된 책의 진열도 확인을 했다. 기사 때문에 알고는 있었지만 왕왕 눈에 띄게 책에 꽂혀 있는 사장님의 지인들이 남긴 책을 추천하는 이유를 읽는 재미가 컸다. 추천인 중에는 이름을 들으면 알 법한 유명인들도 있었다.


공간은 전체적으로 두 개 층을 합쳐 천장이 높게 탁 트여 있어서 쾌적했다. 단정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외관은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한 내부 공간의 분위기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한쪽에는 마치 다락방처럼 복층으로 연결된 계단이 있었다. 위에는 주문한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구매한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 마련이 되어 있다. 계단 층계의 벽면과 책을 읽는 공간의 벽면 서가에는 주로 고전이나 인문/철학/역사서, 문학 작품이 꽂혀 있어 독서의 향취를 더해주었다.


적당히 내부 탐색을 마친 후, 이미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사기로 마음을 먹었던 <사직서에는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를 구매하고, 주문한 카모마일 차를 받아 들고 복층 독서 공간으로 향했다. 5개가량의 원형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의자가 2개씩 마련이 되어 있었다. 아래층이 내려다보이는 난간 옆에는 1인용 의자들이 아래층을 향해 사이드 테이블과 함께 교차로 놓여있었다. 의자가 어찌나 편하고 푹신하던지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계속 머물고 싶었다. 독서 공간은 아래층에도 있다. 참! 마법처럼 대략 6개월 정도 후에 정말로 퇴사를 했다. 사직서에 다행히(?) ‘건강 문제로 사직을 청하니 재가 바랍니다.’라고 쓰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대강 ‘그동안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도를 썼던 것 같다. 그게 그건가. 한 가지 확실한 건 사직서에는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 마음에 품고 살다가 무덤까지 간다는 것. (요새는 매장도 잘 안 하는 추세지.)


서점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서점 곳곳에 이르기까지 서점에서 진행 중인 작가 행사와 각종 강좌의 내용, 일시, 참여 방법, 비용 등이 상세히 잘 안내가 되어 있었다. 놀랐던 점은 심지어 클래식 공연까지 개최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 공간은 클래식 삼중주, 사중주까지도 충분히 소화를 해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실내 한켠에 살포시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있었다. 최인아, 과연 그녀의 인맥과 지인들의 신망 정도는 어디까지인지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현재는 더 다양한 행사들이 체계적으로 운영 중이다. 매달 신간 중 최인아 대표와 몇몇 전문가들이 엄선한 책 한 권과 편지를 받아보고, 원할 시 그 책의 작가와의 만남이나 독서 모임에도 초대(추가 비용 발생)가 되는 유료 북클럽도 흥행인 듯싶다.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은 입사한 지 29년 만인 2012년 12월에 사표를 제출을 했다. 은퇴 3년 반 만인 2016년 8월, 55세 때 광고쟁이 후배인 정치헌 디트라이브 대표와 함께 5,000여 권의 장서를 갖춘 책방 운영을 시작을 했다. 회사를 그만둘 때는 더이상 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2년 정도가 지나자 다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몇몇이 모여 광고회사를 해볼까 상의를 하던 중에 사람들에게 책을 읽힐 수 있는 솔루션을 찾아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후배와 동업으로 서점을 열게 된 것이었다.


55세. 4년 전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앞서 소개한 최근 재취업에 성공한 지인의 73세 아버지, 67세 호텔리어 권문현 씨에 비하면 무척 젊은 나이다. 끊임없이 트렌드를 쫓아서 이끌고, 치열한 아이디어와 기획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광고업계에서 29년을 몸 담은 뒤 마침내 은퇴를 했다. 지쳤을 법도 한데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기존에 없던 콘셉트, 상호명에는 자신의 이름까지 걸어 또다시 아이디어와 기획으로 무장해 승부수를 던졌다. 심지어 아이템은 인터넷과 미디어의 발달, 콘텐츠의 무한한 확산으로 갈수록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출판계', ‘서점’이다. 스스로는 더이상 부사장이 아니며 엄연한 ‘사장’이자 사업체를 책임을 져야 할 사업주가 되었다.




최인아책방처럼 서점과 문화활동이 결합이 된 복합문화공간을 추구하는 경향은 이전부터 있었다. 최인아책방이 문을 연 2016년 즈음에는 여러 특색 있는 서점을 중심으로 책을 파는 것에서 사업 범위를 조금씩 확장하는 흐름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소규모 작가 행사를 열거나, 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보는 신개념 콘셉트인 '책맥'을 도입하거나, 회원제를 운영을 하는 등 이었다. 최인아책방의 콘셉트가 기존에 없던 전혀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차이점이라면 보다 더 본격적이고 디테일이 살아있다고 할까. 우선,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특징인 당시에 주목을 받던 동네 서점과 달리, 공간은 더 크고 넓고 고급스러웠다. 운영 초반부터 섭외된 강연자의 수준이 높고, 행사의 빈도는 잦았다. 최인아책방은 많은 이들이 생각에 그쳤던 것을 강한 추진력으로 착착 실행해냈다. 나는 이곳이 최인아 사장님의 30년 광고쟁이로의 모든 노하우와 역량, 네트워크가 응축된 결정체라고 생각을 한다. 그녀의 커리아와 인생이 녹아든 공간이다.


2호점인 최인아책방 GFC점은 역삼역 강남 파이낸스센터에 있다던데, 이곳도 한번 가봐야겠다. 북클럽도 신청해보고 싶다. 누군가 골라준 책과 정성 들여 쓴 편지(손글씨 편지는 아니다. 타이핑 후 인쇄되어 있다.)를 매달 선물처럼 받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다. 참!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유료(1시간 15,000원, 2시간 22,000원, 1일 50,000원 외)로 운영 중인 선릉점 3층의 ‘혼자의 서재’이다. 차(tea)를 마시면서 공간 내에 구비된 책을 빌려서 자유롭게 독서를 즐길 수 있는 말 그대로 서재이다. 사진으로만 봤는데 마치 유럽에 있는 중규모의 조각 갤러리나 호텔 스위트룸과 같은 클래식 하면서 아늑한 분위기가 상상이 되었다. 결코 싼 가격은 아니지만 그곳이라면 복잡한 서울살이에서 홍보 문구처럼 충만하고 온전한 시간을 누릴 수 있을 듯하다. 마지막으로 나도…… 알차게, 멋지게, 오래오래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최인아책방 선릉점 내부 모습(출처: 최인아책방 페이스북)


최인아책방 선릉점 건물 외부(출처: 최인아책방 네이버소개 업체사진)



최인아책방


공식 웹사이트(페이스북으로 연결)

http://www.inabooks.com/


북클럽(유료 정기 구독 서비스)

https://www.inabooksbookclub.com/



자료 출처


47년생 지인 아버지의 재취업 이야기

https://www.facebook.com/sungwoo.jo2/posts/3336011676474466


우리나라 최고령 호텔 도어맨 67세 권문현 씨 이야기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 65화(2020.07.29 방영)


최인아 대표의 경력과 책방을 연 계기 등에 관한 이야기

서울 강남에 책방 차리는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 “30년 광고를 해보니 ‘생각의 힘’은 책에서 나오더군요” | 경향신문 | 2016.08.08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608082116025#csidx1155e1494bbf90196a77e6238bda56b


최인아책방 대표 최인아 | 월간객석, auditorium | 2019.03.18

http://auditorium.kr/2019/03/%EC%B5%9C%EC%9D%B8%EC%95%84%EC%B1%85%EB%B0%A9-%EB%8C%80%ED%91%9C-%EC%B5%9C%EC%9D%B8%EC%95%84/



책 정보


장재열·장수한, <사직서에는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스노우폭스북스, 2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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