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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ug 05. 2020

유재석이 강제로 독서토론 하던 곳

과학 재단이 설립·운영하는 서점, 한남동 '북파크(BOOK PARK)'

어느 주말에 MBC 인기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보고 있는데 한남동의 한 서점이 등장을 했다. 유재석의 휴가에 동행을 한 지석진, 이광수, 조세호는 쇼핑을 간다는 생각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난데없이 서점이었다. 심지어 휴가의 주인공인 유재석은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독서 토론’을 고집했다. 모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디지? 한남동의 저 정도 규모의 서점이면 내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직업병이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서점’ 한 마디에 자동으로 귀가 기울여지는 것. 방송 프로그램에 서점이 나오거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서재가 비칠 때면 나도 모르게 회사에서 출간된 책을 찾고 있는 것. 남들 눈엔 지나가는 흔한 소품 일지 모르나, 어느새 책들은 나의 DNA에 새겨졌나 보다. 0.1초 만에 지나갔는데도 책등만 보고도 어지간하면 무슨 책인지 알아맞힐 수 있다. 생(生)이 다하기 직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내가 거쳐온 인생 전체가 파노라마처럼 파바박 지나간다던데…… 비슷한 수준의 초능력인 것 같다. 아무튼, 그들 네 명이 방문을 한 서점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2~3층에 위치한 ‘북파크(BOOK PARK)’였다.




북파크는 대중교통으로는 6호선 한강진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인다. 블루스퀘어 건물 오른쪽에 외부로 돌출된 계단으로 올라가면 북파크 2층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유리로 된 출입문이 보인다. 지하철역과 블루스퀘어 건물은 지하도로도 연결이 되어 있지만,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의외로 층수와 방향이 헷갈리기 쉽다. 지하도는 공연장인 인터파크홀이나 아이마켓홀로 동선이 연결이 되기 때문에 공연을 보러 갈 때 이용하면 편리할 것이다. 서점인 북파크에 갈 때는 야외 계단 이용을 추천한다.


북파크와의 인연은 업무 때문이었다. 북파크 3층의 약 280석 규모의 카오스홀(KAOS홀)에서 여러 차례 ‘북 토크콘서트(Book talk-concert)’를 진행을 했다. 대관 장소를 답사를 하러 처음 북파크에 갔을 때 입이 쩍 벌어졌다. 우선은 규모에 놀랐다.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 한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곳일 테다. 이토록 쾌적하고 좋은 공간에 떡하니 서점이 자리를 잡고 있어도 되나 싶은 괜한 오지랖에 매출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 정도로 좋았고, 숨겨진 보물 장소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북카페가 지금처럼 많지도 않았기에 무척 새로웠다.


인상적이었던 건 다른 서점보다 평대가 낮고, 실내 중앙에 총총히 세워놓은 서가의 높이도 낮다는 점이었다. 공간 자체가 넓기도 하고, 통유리창이라 바깥에 보이는 나무 등이 내부의 연결 선상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은 평대, 서가 덕분에 공간이 더욱 넓고 쾌적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벽면을 가득 채운 벽면 서가에도 모든 책을 책등이 보이도록 꽂아 놓지 않았다. 평대에 놓여있는 책은 표지가 보이듯이, 서가의 상당 부분은 책을 북스탠드에 세워서 표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디자인적으로 시각적인 만족도 느낄 수 있었다. 평대로 사용되는 테이블의 두께가 얇고 철로 된 받침대인 다리도 얇기 때문에도 공간이 더 넓어 보이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장강명 작가님의 신작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는 인터파크와 협업하여 카오스홀에서 토크콘서트를 개최했다. 장강명 작가는 문학, 비문학을 넘나들며 꾸준한 신작 출간, 각종 연재와 방송 출연 등으로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이다. 장 작가님은 2011년 <표백>, 2015년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등의 소설을 연달아 출간을 하며, 한국 사회를 기록하고 문제를 지적하는 소설가로 한창 높은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었다. 내가 담당했던 2016년 11월 출간된 그의 신작 장편소설은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다. 북한 김 씨 왕조 붕괴 이후 북한 장풍군에서 3일간 사투를 벌이는 남북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근미래 액션 스릴러이다. 현재 버젓이 존재하며 때때로 남한에 위협을 가하고 있는 김 씨 왕조가 붕괴했다는 가정이라니. 설정부터 도발적이었다. 500쪽에 달하지만 속도감이 높고 결론이 궁금해서 한번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될 것이다.




출판 영업/마케팅 직군에 종사하면서 좋았던 점은 선망했던 작가님을 때때로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뜻밖에 찾아온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 장강명, 임경선, 이동진 작가님, 박막례 할머니와 김유라 PD 님과 업무 때문에 같이 차(tea)를 마신다거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천계영, 주호민, 강풀, 마인드C, 재수, 김중혁, 이도우, 서늘한여름밤, 도대체, 퍼엉, …… 작가님 등은 대체로 북토크나 사인회와 같은 행사 때문에 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탁월한 이야기꾼(Storyteller)이자 기라성 같은 작가님들과 함께 일을 했던 거다.


그때까지 웹툰을 아예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미 <신과 함께>, <무한 동력>, <순정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 수많은 흥행작을 남긴 주호민, 강풀 작가님도 잘 몰랐던 시절이다. 그분들의 책을 담당을 하면서 업무적 의무감에 부랴부랴 전작들을 찾아서 읽기 시작을 했다. 굉장…… 했다! 책무 때문에 읽기 시작했지만 순전히 재미와 감동 때문에,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자발적으로 유료 결제를 하고, 완결까지 정주행을 달렸다. 그분들을 만나고, 작품을 담당을 한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이제야 새삼 깨닫고 있다.


(문화계 종사자로서…… 어찌 된 일인지(?) 그때는 ‘신과 함께’도, ‘순정만화’도 잘…… 몰랐다. 어디선가 한번 스치듯이 들어봤던 정도?! 그래도 천계영 작가님은 어릴 때 으뜸과버금에서 빌려서 읽었던 <언플러그드 보이>, <오디션> 때문에 알고 있었다! 다만, 여성 작가로 알고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는 동안 다시 남성 작가라고 착각을 하고 살다가, 업무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나니 또다시 여성분이시라는 것을 제대로 인지했다. 독자 여러분, 작가님들의 팬 분들~ 당시에는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지, 신간이 출간될 때마다 여러분께 기쁨을 드리고, 만족감을 선사하고자 정말 엄청 열심히 생각하고 준비했어요. 이건 장담함.)




어떤 작가님은 상상했던, 내 머릿속으로 그렸던 모습과 실제 만났을 때에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실제로 만나고 있는 그의 말과 행동조차도 업무용 모습일 수도 있다. 진짜 그의 모습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갑자기 가수 김국환 씨의 노래 <타타타>가 떠오른다. 그래도 오랫동안 만남을 염원해 온 팬의 입장에서 좋아하는 작가를 실제로 만났을 때, 기대감이 충족이 되지 않으면 실망감과 함께 다소의 배신감을 느끼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지금까지 이런 작가님은 없었지만 예를 들어 보자는 거다. 가령, 책에서는 자연을 찬미하고, 동물을 사랑하고, 직접 재배를 한 재료로 요리를 하는 일상이 그려진다. 언론 인터뷰나 SNS에서는 부의 대물림을 걱정하고, 소탈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그런데 막상 만나 보니 관심사 중 하나가 스포츠카다. 취미가 신형 스포츠카 정보를 파악하고, 매장을 방문하고, 마음에 드는 차를 수집을 하는 거다. 그가 굳이 공적으로 자신의 스포츠카를 수집하는 취미를 밝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소탈하다.’라는 모습은 수많은 필터링과 편집 과정을 거쳐 전달된 지극히 적은 정보를 바탕으로 머릿속에 구현한 상상 속 이미지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는 정말로 소탈한 것을 지향을 하고, 전반적인 생활은 그에 맞춰져 있지만 단 한 가지, 스포츠카의 매력에 푹 빠져서 고집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용이 조금 많이 셀뿐. 속사정을 알 리가 없는 가운데 만일 이와 같은 작가를 만나게 된다면 무지 당황스럽고, 역시 사람은 겉 다르고 속 다르다고, 함부로 속단하면 안 되는 존재라고 다시금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다시 북파크로 돌아와서, ‘카오스홀’이라니 행사장 이름이 뭔가 좀 심오하지 않은가. 카오스는 혼돈, 혼란이라는 의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이아가 나타나기 이전 최초로 생성된 ‘텅 빈 공간’, ‘무(無)’, ‘절대공간’이다. 꿈보다 해몽을 해보자면, 심오하고 폭넓은 지식을 교류하는 장(場)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붙여진 이름인가? 그런데 잘 보면 혼돈을 의미하는 영단어 Chaos 가 아니라, KAOS 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Knowledge Awakening On Stage’의 앞 글자를 따서 지은 말로 ‘무대 위에서 깨어난 지식’을 뜻한다. 북파크는 카오스재단에서 설립을 해 운영을 하고 있다. 북파크를 대표하는 대형 강연장에 굳이 ‘카오스’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난해한 과학과 수학의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재단의 의지를 나타낸다.


가만히 살펴보면 북파크 곳곳에 과학과 수학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독서 모임을 하거나 원데이 클래스를 열기에 안성맞춤인 2층의 길고 넓은 테이블이 있는 15명 내외의 인원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은 ‘다윈룸’이다. 40명가량의 소규모 강연을 열기에 적당한 공간의 이름은 ‘뉴턴홀’이다. 3층 카페의 이름은 ‘필로스(Philos)’다. 철학(philosophy) 또는 철학자(philosopher)의 축약자다. 철학, 그러니까 필로소피아(philosophia)라는 말은 기원전 6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피타고라스가 처음으로 만들어냈다. 좋아함 혹은 사랑을 뜻하는 필로스(philos)와 지혜를 의미하는 소피아(sophia)를 결합을 했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은 지혜로운 사람 즉, 소포스가 아니라 단지 지혜를 ‘좋아하는’ 사람인 필로소포스 라고 이야기했다. 


다른 서점과 비교를 했을 때 특히, 과학 서적이 눈에 많이 띄고, 여러 기획전을 구성한 큐레이션이 잘 되어 있다. 층별로는 3층 도서분야(과학, 예술), 2층 도서분야(문학, 인문, 경제/경영, 취미/실용, 여행, 아동, 청소년) 라고 안내되어 있다. 매출 비중이 높은 문학, 인문, 경제경영, 아동서가 중심이 아니다. 비교적 수요가 적은 과학, 예술 서적이 한 층을 오롯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카오스 재단은 대체 어떤 곳이길래 한남동 역세권(?)의 블루스퀘어 건물 2~3층에 버젓이 문화 공간인 대형 서점과 강연장을 세우고 운영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궁금증이 들지 않는가.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바로 ‘파크(Park)’다. 북 ‘파크’, 인터’파크’(INTER’PARK’). 뮤지컬 등이 열리는 1층 공연장 중에는 인터파크홀 이 있다. 참고로 인터파크에서 운영을 하는 유튜브는 ‘공원’생활, 영어로는 ‘PARK’LIFE 이다. 카오스재단은 인터파크그룹 이기형 회장이 과학 지식의 대중화를 위해 사재를 털어 2014년에 11월에 설립을 했다. 인터파크 보유 주식 일부를 매각해 운영자금을 마련했다.


처음에 이 프로젝트는 ‘어렵다고 기피하는 과학을 더 많은 사람들이 친근하고 재밌게 느꼈으면 좋겠다.’고 서울대 자연과학을 전공한 4명의 82학번 생 동창들이 의기투합을 하면서 시작 되었다. 우선, 카오스 지식 콘서트라고 이름을 붙인 대중 강연을 2012년부터 6회를 개최를 했다. 수학을 주제로 음악과 수학, 공간과 수학, 자연과 수학 등 우리 생활 속 수학을 풀어내는 데 집중했다. 강연의 반응은 유료 강연이 매진이 될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이기형 회장은 아마도 적지 않은 사람이 과학 콘텐츠에 갈증을 느꼈던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아예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2년 뒤에 설립을 한 것이 카오스 재단이다.


눈 여겨 살펴보면 북파크에서 심심찮게, 꽤 정기적으로 과학자를 초청한 강연이 열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잘 모르는 주제, 유명세가 없는 과학자인데도 말이다.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소중한 과학 지식들을 발굴해 대중과 향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강연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사들도 다녀갔다. 2019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케일린 미국 하버드대 데이나파버암연구소 교수,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이자 영국의 유명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등 해외 과학자들을 초청했다. 과학저널 네이처가 선정한 ‘동아시아 스타 과학자 10인’에 뽑힌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기상청에서 사용하고 있는 엘니뇨 예측 모형을 개발한 국종성 포스텍 환경공학부 교수 등도 카오스재단이 주최하는 강연에서 과학대중화를 도왔다.




그나저나 2019년 겨울, 리모델링 이후 최인아책방에서 운영하는 혼자의 서재 처럼 북파크에도 유료 라운지가 만들어졌다던데 궁금하다. 유재석과 친구들이 난생 처음 독서토론을 했던 장소도 정확하게는 북파크 라운지로 알고 있다. ‘나만의 서재’라는 콘셉트로 1일 이용권은 9,900원. 북파크 라운지를 당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고, 프리미엄 카페의 음료 한 잔이 무료로 제공이 된다고 한다. 시즌·트렌드에 따라서 큐레이션 된 도서 총 3,000권가량을 자유롭게 열람을 할 수 있고, 다양한 의자와 테이블로 특색 있는 공간이 꾸며져 있다니 한번 들러봐야겠다. 게다가 한강진역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 6호선 역세권이잖아!



북파크 내부(출처: 북파크 공식 웹사이트)


북파크 내부(출처: 북파크 공식 웹사이트)


북파크 카오스홀(출처: 북파크 공식 웹사이트)



북파크

https://bookpark.modoo.at/


카오스재단

http://ikaos.org/ko/main/main.html


인터'파크' 유튜브: '공원'생활

https://www.youtube.com/ParkLife1



자료 출처


북파크 리뉴얼 관련

"도심 속 나만의 서재"…한남동 명소 '북파크' 새 단장 | 뉴데일리 | 2019.11.28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9/11/28/2019112800025.html


카오스재단 관련

설립 5주년 맞은 카오스 재단 '기초과학의 대중화' 실험은 진행형 | 동아사이언스 | 2019.11.27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32615

 

서울대 동문들 일냈네…'과학에 빠졌지말입니다' | 대덕넷(HelloDD) | 2016.02.11

https://www.hellodd.com/?md=news&mt=view&pid=56450


[월요인터뷰] 과학문화 확산 위해 카오스재단 설립한 이기형 인터파크홀딩스 회장 | 한국경제 | 2017.11.26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7112600651


필로소피아(philosophia)라는 말의 기원

필로스(philos) - [책 속으로] 김수영의 행복어 사전 | 중앙선데이  | 2018.06.09 

https://news.joins.com/article/22699344



책 정보


장강명, <표백>, 한겨레출판, 2011.07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민음사, 2015.05


장강명, <댓글부대>, 은행나무, 2015.11


장강명, <우리의 소원은 전쟁>, 위즈덤하우스, 2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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