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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ug 10. 2020

출판인, 직업으로서의 매력과 힘겨움

출판사 입사와 퇴사의 추억

출판인, 직업으로서의 매력과 보람


2006년 1월, 추운 겨울날이었다. 며칠 전 눈이 내려 응달에 쌓인 눈은 빙판이 되었다. 한국관광공사를 나와 꽁꽁 언 청계천 위 광교 사거리를 건너 여느 때처럼 영풍문고로 향했다. 궁궐 해설사 자원봉사자가 되기 위해 약 두 달간 일주일에 두 번이었는지, 세 번이었는지 한국관광공사 강당에서 교육을 받던 중이었다. 오전에 교육을 마친 후 영풍문고 종로본점에 들러서 책을 구경을 하는 게 어느새 고정 일과가 되었다. 대형서점이지만 한겨울 평일 낮 시간의 책방은 그리 북적이지 않았다. 광교 출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을 보면 각 분야 베스트셀러, 추천도서가 진열되어 있었다. 그 앞에 서서 요새 인기 있고 주목받는 도서가 무엇인지 한참을 쳐다보다가, 마음에 가는 책을 집어 들어 훑어보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는 시간이 참 좋았다. 어쩌면 그때부터 취업 진로 중 하나로 출판업을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한국관광공사는 2015년에 강원 원주 혁신도시로 이전했다. 중구에 있던 본사는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로 바뀌었다.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이왕주, 효형출판, 2005.08)>. 책 제목이 인상적인 캘리그래피로 그려진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 문화비평, 철학, 사회학 등에 관심이 많던 시기였다. 영화를 사례로 철학적 지식과 사고방식을 소개한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는 직관적인 책의 제목도 마음에 들었다. <트루먼 쇼>, <디 아더스>, <뷰티풀 마인드> 등 감명 깊게 본 영화를 다루고 있어서 금세 몰입이 되었다. 한참을 서서 읽다가 구매를 했고, 이 책 한 권은 훗날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약 8년 뒤 이 책을 기획하고 만든 출판사에서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면접 때 이 책이 나의 인생에 미친 영향을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했다. 마침내 취업 관문을 뚫고 일자리를 얻었다.




처음부터 출판인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진로를 이미 언론, 방송 쪽으로 염두하고 있었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자질과 능력이 필요한지는 잘 알지도 못한 채 그저 멋있어 보였고, 뭔가 좀 있어 보였고, 막연하게 스스로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었다. 정말 운이 좋게도 원하는 대학의 관련 과에 입학을 했다. 대학교 4년 동안 ‘커뮤니케이션’, ‘문화이론’, ‘사회학’, ‘문화인류학’, ‘영화예술’ 등 재미있는 수업들을 듣고 배우고 때로는 토론도 하면서 전반적으로 즐거운 학업 시간(?)을 보냈다. 언론사 입사는 경쟁이 무척 치열하고 준비할 것도 많아서 언론고시라고도 불린다. 나는 깨작깨작 준비하는 맛만 보다가 일찌감치 포기한 경우이다. 운이 좋아서 기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아무래도 나의 체력이나 스트레스 취약도를 고려를 하면 그 길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준비를 하면 할수록 엄습해왔다. 아나운서는 쇼맨십은 둘째 치고, 바꿀 수 없는 타고난 여러 외모적 조건 때문에 활동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판단을 내렸다. 늦지 않게 미련 없이 포기했다. 핑계일 수도 있으나 어떻게 보면 나름 자기 객관화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다. 그냥 그렇게 믿고 사는 게 나의 삶의 태도이다.




어찌어찌하다 이 또한 운이 좋게도 원하던 출판사에서 근무를 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출판인의 직업으로서의 가장 큰 매력은 아직 책으로 세상에 태어나기 전의 가공되고 꾸며지지 않은 원고를 원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직 세상에 몇몇밖에 알지 못하는 작가의 완전히 다듬어지지는 않은 생각을 읽는다는 것, 비밀 회동에 초대받은 선택된 소수가 된 것 같은 쾌감이 있다. 더군다나 평소 좋아하거나 관심 있던 작가의 원고인데, 심지어 글까지 좋다면 그렇게 마음이 두근두근 설레고 흥분되지 않을 수 없다. 직접 쓴 글도 아닌데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냐고 반문을 한다면, 나조차 잘 이해가 되지 않은 감정을 설명을 할 길은 없다. 엄밀히 따지면 내가 잘 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엔도르핀이 솟구치는지는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선배들의 말을 빌리자면, 한번 글밥 먹기 시작한 사람들은 희한하게도 벗어나지 못한 채 결국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굳이 설명을 해보자면 알 수 없는 운명에서 느껴지는 희열과 애증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힘이 들 때는 내가 담당했던 책들의 독자 리뷰나 SNS 태그를 찾아보곤 했다.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가 내게 그랬듯이 때로는 책 한 권이 개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때도 있다. 드물더라도 어쩌면 우연히 만난 만 원 얼마 하는 책 한 권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절망과 고통에 빠져 인생에 회의를 느끼던 찰나, 자신의 유년기와 닮은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에서 위로를 받고, 하루나마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십분 공감을 할 것이다. 책을 읽고 각자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쓴 독자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진부한 말이지만 출판인으로의 보람과 사명감을 느낀다. 다시 기운을 내서 엉킨 매듭을 풀고 차근차근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갈 원동력이 생긴다. 스스로가 한 업무에 대한 구매자 피드백을 바로바로 확인해서 때때로 반영하거나,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은 무척 매력적이다.




왜 그토록 매력적인 출판인을 그만두었는가.


회사에서 피해야 할 몇 가지 유형의 일꾼이 있다. 일 미루기 신공을 보이는 일꾼, 항상 날이 서 있는 고슴도치형 일꾼,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나을 듯한 무기력한 일꾼, 상황에 따라 말이 바뀌는 갈대형 일꾼, 직장을 전쟁터로 만드는 편 가르기 일꾼 등등. 10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유형의 일꾼을 만났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주의해야 할 일꾼은 바로 이들이다. 빅마우스!

_ 강지연·이지현, <일꾼의 말>, 시공사, 2020.07.25, 157쪽 중에서


이제부터는 그토록 매력적인 ‘출판인’을 왜 그만두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직전에 다녔던 회사는 10년 정도는 근무를 할 생각이었다. 출판사 가운데서 내가 가장 근무를 희망했던 회사였다. 운이 좋게도 출판계에 발을 디딘 지 1년 만에 ‘타이밍’이 맞아 원하던 종합출판사에 입사를 했다. 바라던 대로 좋아하던 작가들의 원고를 검토할 기회가 주어졌다. 나의 기획이 진행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결재권자를 설득하면 비용을 아낌없이 투자해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모르는 것을 알려줄 선배들이 도처에 있었고, 업무 체계와 보고 절차라는 것이 존재했다. (한편, 선배 개개인이 신입사원을 잘 이끌어줄 역량을 갖추었는지, 업무 체계가 올바르며 제대로 작동을 하고 있는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매년마다 전년보다 잘 성장을 하고 있다고 성과를 인정받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최상의 평가를 받은 적은 없지만 매번 좋은 평가였기에 급여는 매년 120만 원가량씩 상승했고, 성과급으로 1개월 월급의 절반치인 120~150만 원을 받았다. 성과급을 포함해 매년 적어도 240~250만 원 이상, 전년도 월급의 4/5 정도의 금액을 매해 차곡차곡 쌓아온 셈이다. 성취감 측면에서 만족스러웠다.


출판사도 회사이고 조직이라 <일꾼의 말>에 나온 것 같은 피해야 할 일꾼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같이 자주 부딪히며 일을 하는 이들 중 이런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회사 생활은 참 고달파지기 시작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회사의 조직력이 무너지고 곪아가던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불거졌다. 안타깝게도 주위에는 점점 피해야 할 일꾼들이 늘어갔다. 나쁜 기운은 빠르게 전파되어 내 안의 무기력증은 만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이유로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하나, 둘씩 떠났다. 퇴사는 유행처럼 번져갔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어디를 가더라도 분명히 잘 해낼 거'라고 하루라도 퇴사자에게 격려와 응원의 인사를 건네지 않는 날이 드물었다. 나보다 먼저 입사를 한 동료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빈자리는 새로운 사람들로 빠르게 메꿔져 갔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또다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더이상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무런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마지막으로 웃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정말 잘 웃는 사람인데, 웃음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이곳을 떠난다고 해도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환하게 웃는 날이 올 수 있을지 조차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벌이는 정말 중요한 문제이기에 감정적으로 결정하지 않도록 고민의 나날을 이어갔다. 나는 괜찮다고, 다들 이러고 살아간다고, 실력을 발휘하면서 인정을 받아 자리를 잡고 있다고, 상사나 동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듣지 않고, 아쉬울 것이 없는 직장인이 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이 정도면 괜찮은 거라고 꾸역꾸역 하루하루 버텼는데, 그게 아니었다. 결국 극심한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저하돼 몸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었다. 잠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업무 시간 중간에 휴게실에서 1~2시간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처방받은 약을 복용을 하고 매일 푹 쉰다면 몇 주 뒤면 완치가 될 것이었다. 업무량은 상사에게 당분간 조정을 요청하고, 몸이 완전히 회복된 이후 팀원들에게 부과되던 업무를 다시 가져와 그동안 못했던 만큼 시간과 노력을 들여 메꾸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회사 생활을 계속 이어가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몸의 이상 징후를 계기로 더이상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돈보다도, 일보다도 몸이 보낸 경고 신호가 나에게는 더 중요했다.


조직을 구성하고 만들어가는 것은 사람이다. 10년 가까이 조직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진리는 사람들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거다. 나보다 권력관계의 위에 있는 상사, 임원, 사장과 같은 이들의 성향이나 태도가 바뀌는 것보다는 차라리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걸 기대하는 게 더 현실적이다. 이들의 지위는 서로 정치 싸움을 벌여서 한쪽이 패하거나, 실적에 치명적일 정도로 문제가 있거나, 횡령이나 성추행과 같은 도덕적 결함이 알려지지 않는 한 굳건하다. 이들은 서로 갈등 관계처럼 보이지만 직원들이 같은 이해관계와 동료애로 얽혀있듯이 마찬가지로 동질감과 연대의식으로 똘똘 뭉쳐있다. 지위에 위협이 되는 일이 발생하면 언제 상대에게 날을 세웠나 싶을 정도로 돌변한 태도로 서로가 서로를 지켜준다. 내가 가치관과 정체성을 바꿔서 그들 편에 서지 않는 한 내적 갈등과 괴로움을 계속될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차피 1년 또는 2년 후 그곳을 떠날 것은 불 보듯 자명했다. 인생은 예상대로 되지 않으니까 어쩌면 하루하루 살아내다가 계획한 대로 5년을 더 채워 10년까지 버텼을지도 모르겠다. 뭐, 결론적으로는 어차피 벌어질 일, 하루라도 빨리 일을 벌이자는 생각으로 사직 의사를 밝혔다. 시간이 지나 내가 욕을 하던 이들의 모습으로 둔갑하기 전에 손쉽게 이탈하는 길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00 씨는 출판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


다음은 첫 번째 출판사 이야기다. 우리나라 단행본 출판사는 대략 인원 80~100명 내외의 대형·종합 출판사, 3~50명 내외의 설립 2~30년 남짓의 중형·중견 출판사, 10명 내외의 소형 출판사, 1인 출판사 정도로 구분이 된다. 교재, 유아동 전문 출판사를 제외한 종합, 중견 출판사는 50~70개 남짓으로 손에 꼽고, 아마도 소형 출판사와 1인 출판사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을 것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2020년 5월 발간한 <2019년 출판시장 통계>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신고 출판사 수는 59,306개이며, 2018년에 발행실적이 있는 출판사 수는 8,058개로 13.6%이다. 2018년 연간 1종을 발행한 출판사는 2,951개로 전체의 36.6%를 차지하여 발행실적별 출판사 비율 중 가장 높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연간 1-5종을 발행하는 출판사는 5,628개로 전체의 69.8%를 차지한다. 연간 101종 이상을 발행하는 출판사는 121개로 전체의 1.5%이다.


첫 번째 출판사였던 직원이 10명이 채 되지 않았던 소규모 출판사에서 만 1년 근무 후 비자발적인 퇴사를 강요받았다. 사장은 나를 불러서 ‘000 씨는 가만 지켜보니 출판 영업, 마케팅에는 영 적성이 맞지 않는 것 같아.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게 좋겠어. 닷새 후면 만 1년 근무이니 퇴직금은 지급이 될 거야.’라고 말을 했다. 한마디로 그 주 금요일까지만 출근을 하라는 통보였다. 감사하게도 나에게 얼마나 관심이 많았는지 적성까지 고려해 진로 고민까지 해주며 갈 길 가라는 말이었다. 말이 좋아 적성이고 퇴사였지. 눈 뜨고 코 베인다더니 합의를 가장한 불법 해고였다.


출판계에서 일을 하는 것을 갈망했기에 박봉에도 정말로 책에 대한 순수한 애정 하나로 열정적으로 열심히 일을 했었다. 연봉은 다른 회사에서 2년 8개월의 홍보 업무 경력을 감안해서 2천만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2014년 최저임금: 5,210원). 그 가운데 일부(아마도 절반가량)는 중소기업 청년추가고용지원금의 혜택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사가 안내해준 대로 지원금 지급 조건을 충족하기 위한 관련 온라인 교육을 받았다. 아마도 지원 혜택이 종료되기 1~2개월 전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조사관이 찾아와 몇 가지 물어보는 확인 절차가 있었다. 부디 지원금의 혜택을 더 받을 수가 없어서 직원을 내보낸 것이 아니길 바란다. 차라리 그냥 내가 하는 짓이 무언가 못마땅해서 고용주의 부당 권력을 행사한 것이길 바란다.


직접 당하고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건지 믿기지 않는 상황에 기가 찼다. 인수인계해주는 사람도 없었는데도 알아서 방법을 찾아보고, 지인들에게 묻고 물어서 정말 열심히 일을 했다. 전임자는 어찌 된 일인지 간략한 업무 기술서 1장 만을 깨끗이 정리된 책상 위에 올려둔 채 이미 사라진 뒤였다.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사장 한 마디에 하루아침에 쫓겨나다시피 정을 붙였던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던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울었다. 억울하고 서러워서 울고 또 울었다. 이해가 가지 않아서, 부당해서, 불합리한데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세상이 떠나가라 목 놓아서 꺼억 꺼억 울었다. 이러다가 죽겠다 싶어서 캐리어에 짐을 꾸려서 부모님 댁으로 갔다. 충격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한 채 쥐 죽은 듯이 몇 날 며칠 잠을 잤다. 하루 한 끼 엄마가 끓여준 죽을 먹었다. 그러다 좀 정신이 들면 동생 방 책장에 꽂혀 있던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말하고 있었다.


전쟁통에도 사랑은 꽃핀다고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교제를 시작한 지금의 남편은 훗날 이 상황을 듣고는 중소기업 도처에서, 특히 자신이 한때 몸담았던 디자인 업계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비일비재하더라도 분명 잘못되었고, 너무나도 불합리한 상황인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부터 잘못된 거라고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렇다. 비단 출판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 곳곳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근무 처우였다.


퇴직금이 급여에 포함이 되어 있으며, 연봉을 1/13로 나눠서 지급을 하는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출판계에 들어오면서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출판사에 첫 출근을 한 날, 같이 식사를 하는데 동료들이 ‘우리 회사에는 휴가가 없다.’라고 알려줬다. 그게 무슨 말이지?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제공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사항인데 휴가가 없다니?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회사 내 휴가라는 개념이 없고, 쉬고 싶으면 이사에게 얘기를 한 뒤 쉬는 방식이라고 했다. 유급휴가 이야기를 꺼내면 이사는 ‘그냥 말하고 쉬면 되지, 휴가를 정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응수한다고 했다. 그나마 여름휴가 5일은 보장이 된다고 했다. 내가 이곳에 영업/마케팅 담당 직원으로 채용이 된 건지, 가족 경영 출판 구조에서 상전을 모시는 노비로 선택이 된 건지 께름칙했다.




왜 출판계는 열악하다고 하는 걸까.


나의 이야기가 특수한 상황이기를 바라지만, 업계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안타깝고 슬프게도 2020년 현재에도 출판계에 이와 같은 불합리한 처우는 여전히 만연한 것 같다. 최소한 휴가의 개념이 부재하고, 퇴직금을 연봉에 합산하고, 초봉 2,000~2,400만 원인 것과 출판계의 불황으로 인한 열악한 근무 환경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를 나는 잘 모르겠다(2020년 최저임금: 시급 8,590원, 월급 1,795,310원). 고용주의 무지의 소치라고 믿고 싶지만 그러기에 그는 지식과 콘텐츠를 다루는 사업을 하고 있다. 결코 멍청할 리가 없다. 지금은 감이 떨어졌을지 몰라도 한 때 그는 뛰어난 독해력과 콘텐츠를 꿰뚫는 판단력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서 회사를 설립했고 기본 매출을 창출하는 몇 권의 스테디셀러를 만들어 나름 자리를 잡았다. 지식정보 산업에 종사하는 만큼 여러 분야의 사장들 중에서도 아는 것도 많고 지적이며 똑똑한 축에 속한다. 부당하게나마 자신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서 일부러 관심을 끄고 귀 닫고 눈 닫고 있는 것으로밖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출판계에 가장 회의를 느끼는 점은 우러러볼 ‘리더’가 부재한다는 점이다. 훌륭한 기획자와 1인 출판사 경영자는 많다. 그런데 5명~10명 남짓부터 100명 가까이 되는 직원을 고용을 해 회사를 운영을 하는 대표 가운데 올바른 리더십이나 기업가 정신을 지닌 사람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말로는 ‘혁신’과 ‘변화’를 외치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모른다. 말을 하는 순간조차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건지도 의문이 든다.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저 분은 좀 괜찮고 능력이 있는 것 같은데.' 싶으면 업적을 덮을만한 치명적인 면모들이 곧 드러나곤 했다. 직원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강한 불통과 독고다이 정신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예사다. 알고 보니 횡령, 성추행, 개인 용무로 법인카드 사용(안마방 등에서 결제) 등을 일삼거나 알고도 방관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과 실망을 준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이거 빼고, 저거 빼면 믿을 수 있는 리더가 있는지, 과거에는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히 지금 이 시간에도 머리 싸매고 고군분투하시는 사장님들이 계실 거다. 그런데 나에게 비친 사장님들의 모습은 대체로 노력한 것보다도 더 큰 대가를 바라는 것 같았다. 다수의 책을 출간을 한 뒤 운이 좋아서 예를 들면, 예상치 않게 힐링 컬러링북 열풍을 불러온 <비밀의 정원>처럼 베스트셀러로 빵 터지는 것을 ‘기대’한다. 어떤 책이 ‘터질지’ 모르니 지식 노동을 하는 직원들을 공산품을 만드는 공장 컨베이어 벨트처럼 기계 부품 다루듯이 쥐어짜고 다그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출간 종수를 늘려야 하니 고용 역량이 되지도 않는데 무리해서 고용을 하는 경우다. 책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찬 사회 초년생들에게 업계 관행과 취업 불황기라는 점을 악용해 월급 2,000~2,400만 원을 제시한다. 출판계에서는 그나마 양심 있는 고용주다. 음료수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음료수가 나오듯이, 오늘 무언가 지시를 하고 인풋을 하면서 훌륭한 아웃풋을 바로 내놓을 것을 요구한다. 그들은 평소에는 시간이 많아 보이는데 지시를 한 이후에는 늘 너무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아웃풋을 내놓으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데 직원들도 시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아직 사회생활에 요령이 없는 많은 착한 신입사원들은 사장의 말에 비자발적이면서도 자발적인 대가 없는 야근이라는 무보수 봉사활동을 시전 한다.


1인 기업이 아니고서는 최종 판단과 책임은 사장의 몫이다. 그러나 5인 정도 규모의 출판사만 하더라도 책을 만들고 파는 실질적인 일은 대체로 직원들이 하기 마련이다. 나 하나 정신줄 잘 붙들고 살자고, 좋아하는 일 하면서 자부심을 가져보자고 하기에는 리더 한 명이 미치는 영향력이 너무나도 크다. 해악일 경우엔 직원 개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더더욱 크다. 업계 발전에 한계가 느껴진다. 개인의 커리어의 끝이 훤히 보인다. 이를 간파한 현명한(?) 이들은 빠르게 월급루팡으로 전락한다. 기업이 성장할 일이 만무하니 급여가 인상될 확률은 희박하다. 새로운 일을 벌이거나 도전하기보다 만날 하던 대로 한다. 높아진 업무 처리 속도로 같은 일을 빠르게 처리하고 개인적인 여유시간을 확보하는 게 절대적으로 이득이다. 상사의 지시나 동료의 요청에 적당한 핑계를 둘러대서 순간을 무마하는 고급 스킬(?)을 탑재한다. 무기력은 주변 사람들에게 전염이 되면서 악순환은 반복된다.


사장은 책 한 권이 대박이 나서 건물주가 되거나 자신의 주머니를 가득 채울 일확천금을 노리는 속마음이 뻔히 보인다. 권력과 영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성장이나 업계의 발전에는 무관심하다. 일련의 행동에서 드러난 사소한 의사결정 과정을 들여다보면, 회사를 책임지는 대표자로서 판단력이 흐려진 것은 아닌가 싶다. 영 미덥지 않다. 노후 자금 마련, 마땅히 써야 할 비용까지 줄여 당장의 이익을 극대화 해 부를 축적하는 데에는 관심이 있다. 그토록 바라는 매출이 잘 나왔을 때 직원 성과의 인정, 공정한 배분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신의 지원과 회사라는 시스템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스스로를 치켜세운다. 직원의 엄연한 성과를 치하는 하지 못할 망정 노력마저 폄훼하려 든다. 그나마 희박하게 남아있던 정마저 뚝 떨어진다. 나에게 당면한 일이 아닐지라도 동료의 그간의 의지와 열정, 마음고생, 몸 고생을 보아온 입장에서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면 분통이 터진다. 억울하고 씁쓸한 마음에 눈물이 난다. 좋은 책 한 권을 제대로 만든다는 건 한 사람의 영혼을 갈아 넣는 일인데 말이다. 더 속상한 것은 사장이 이를 절대 모를 리 없다는 거다. 모른 척, 외면하고 싶을 뿐인 거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궁극적으로 출판 업계가 성장을 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사람들은 이야기,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작가)에게는 예로부터 늘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호기심과 앎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본성 아닐까. 출판이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불황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경제 전반의 저성장 기조의 영향, 콘텐츠와 채널의 다변화로 독서 인구, 독서 시간이 줄어든 이유도 있겠으나, 궁극적으로는 수많은 직원들에게 가해지는 불합리한 근로 처우가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그리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미련 없이 출판인을 그만둘 수 있었다. 현재 출판계나 여타 산업에서 7~10년 차 이상 경력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의 부재가 극심한 상황이라면 나와 비슷한 이유에서 그들이 좋았던 기억과 상처를 함께 안은 채 홀연히 떠났기 때문이 아닐까.


15년 전 겨울, 습관처럼 영풍문고 종로본점을 들렀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출판사에 입사하게 된 계기와 퇴사를 한 경험담, 내가 생각하는 출판업계가 성장이 더디고 여전히 근무 환경이 열악한 이유 등을 풀어놓게 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므로 판단은 개인의 몫이지만, 어떤 이유로든 출판업계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콘텐츠 산업에 관심이 많고 애정이 깊다면 IT 업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게 더 나을 듯하다. 선택을 할 수 있는 입장이라면 말이다. 세상이 바뀌어 IT 기술이 접목되지 않는 영역이 없다. IT 지식과 이해, 경험을 바탕으로 출판 콘텐츠와 산업의 확장을 꾀하고 변화를 모색한다면 무궁무진한 기회가 열릴 것이다. 세상을 구할 단 한 명의 영웅을 기다리는 건 정말 별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습에 젖어 성장이 더디나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출판계에 변화가 일어나려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강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이 출현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자료 출처


출판사 수와 발행 실적에 관한 자료

대한출판문화협회, <2019년 출판시장 통계>, 2020.05

 : I. 부록 1 > B. 2018년 년 기준 출판산업 관련 주요 통계 > 2. 사업체 수 (통계청 전국사업체 조사)


출판사 연봉 공개 설문지에 남긴 말말말 (19.12.17 기준)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ung870918&logNo=221739875824&categoryNo=1&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공지] 출판계 연봉 공개 (익명의 설문지)

https://blog.naver.com/sung870918/221688601058


“‘월급x13개월=연봉’? 이건 아닙니다” | 컴퍼니 타임즈(잡플래닛) | 2020.05.22


내일부터 해고…대표님 정말 힘든거 맞아요? | 컴퍼니 타임즈(잡플래닛) | 2020.05.18



책 정보


이왕주,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효형출판, 2005.08.25


강지연·이지현, <일꾼의 말>, 시공사, 2020.07.25


조해너 배스포드, <비밀의 정원>, 클, 20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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