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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ug 07. 2020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얽힌 추억

“오늘 어디에서 만날까?”

“교보문고 정문 앞 어때? 도로 쪽 출입구.”


요새는 식사를 할 식당을 미리 정해 놓고 그곳에서 바로 모이는 경우가 더 빈번하다. 20대 후반, 30대 초반만 하더라도 일단 만나고 봤다.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는 우선 만난 후에 자연스레 정해졌다. 종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인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약속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세종대로 사거리 교보생명 빌딩 지하 1층에 있는 광화문 교보문고는 대부분이 알고 있고, 눈에 잘 띄었다. 지하도로 지하철과 연결되어 있고, 주변 버스정류장들과도 가까워 교통이 편리했다. 심지어 지번일 때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가 1’이었다. 대한민국 정치 1번지로 꼽히는 종로구의 종로1가 1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오랜 역사를 지닌 서점이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참, 이 근처에서 만나서 밥 먹고 얘기하다가 어쩌다 같이 서점까지 들렀던 수더분한 소개팅남은 잘 살고 있는가 모르겠네.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무척이나 빡셌던 의대생의 하루 일과를 알게 되었다. 그의 마음속 평온을 기원하며 108편의 이야기가 담긴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를 그 자리에서 바로 사서 선물을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 되었던 쓰라린 추억이다.




“장담하는데 왕년에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 걸터앉아서 울어보지 않은 영업자는 한 명도 없을 걸.”


이미 출판계에서 잔뼈가 굵은 선배들에게 들은 말이다. 우리나라 출판산업에서 8~90년대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위세는 대단했고, 그곳에서 일을 하는 직원들의 텃세도 그만큼 심했다는 거다. 지금도 그렇지만 수많은 제조업체 사이에서 판로를 담당하는 유통사의 파워는 막강할 수밖에 없다. 제조업체는 많고 유통업체가 적을수록 유통사의 갑의 지위는 절대적이고 확고해진다. 8~90년 대면 굴러가는 돌멩이만 보아도 꺄르르르 웃었을 내가 한창 꼬꼬마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직접 경험을 해보지 않은 채 전설처럼 전해오는 카더라 뉴스라서 어느 정도 과장이 섞여 있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잘 가늠이 되지는 않는다.


요즘에는 출판이 정보통신업으로 분류가 되는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조업으로 분류가 되었는데 말이다. 문화산업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처음 출판사에 입사를 해 사업자등록증에 제조업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알고 있던 제조업은 휴대폰, 자동차, 아이스크림, 통조림과 같은 원재료를 가공·조립해서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것이었다. 잘못 본 건 아닌지 너무 의아해서 사업자등록증의 업체명과 업태가 일치하는지 몇 번이나 확인을 했다. 물론, 출판사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책이라는 실물 상품을 만들고 판매를 한다. 하지만 제조업이라기엔 무형의 콘텐츠나 지식을 다루고, 책은 그것들을 담는 그릇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공장도 보유하고 있지 않고, 대량생산이라기엔 좀…… 대체적으로 한 종의 발행 부수는 소박한 쪽에 가깝다. 뭐, 이후엔 출판사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인쇄소에서 일을 하냐고 질문을 하는 분들도 심심찮게 만났어서, 이제와서는 제조업으로 분류가 되었던 일이 별로 새삼스럽지도 않다.


서울에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문을 연 것이 1981년 6월인데(참고로 교보문고 설립일은 1980년 12월 24일), 서울에 두 번째로 설립된 교보문고 지점인 강남점은 그로부터 22년 후인 2003년 5월에 생겨났다. 광화문 교보문고는 지금은 자취를 감춘 종로2가에 있었던 종로서적과 함께 대형서점 양대 산맥으로서, 1980, 1990년대 대한민국 출판문화를 이끌어왔을 것이다. 서점인으로의 자부심이 어마어마했을 것 같다. 2016년 12월 23일, 종로타워에 신 종로서적이 개점을 했으나, 그 시절 6층 건물의 위용을 자랑하며 서점업계의 정신적 지주로 불렸던 종로서적과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여타 산업처럼 출판계도 호황기였으니 출판사의 출간 종수나 발행 부수는 지금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았을 거다. 듣기로 어지간한 책도 초판 1만 부를 제작을 해도 모두 팔렸다고 했다. 요즘 초판은 대략 2,000부 내외로 제작을 한다. 대부분의 책의 최종 판매 목표가 1만 부이고, 이를 달성하거나 초과하면 매우 잘 팔린 축에 속한다. 초판을 몇 만 부씩 제작을 하는 건 김영하, 유시민, 혜민 스님, 펭수 정도는 되어야 안정권일 거다.


인터넷 상점도 없던 시절이니 희소했던 교보문고와 같은 대형서점의 판매 영향력은 막강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출판사들이, 출판 영업 담당자들이 자사의 책을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눈에 잘 띄는 좋은 자리에 진열을 하고자 죽자 사자 목을 맸을까. 8, 90년대 권위주의 문화 속 갑을의 지독한 위계관계에 치여 얼마나 많은 비굴한 상황을 견뎌야만 했을까. 선배들의 말이 과장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홍보와 판매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서점이다. 다만, 옛날의 영업의 영향력은 오늘날의 광고 자본력으로 거의 대체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예나 지금이나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출판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 번도 실천에 옮긴 적은 없지만 20대 때 ‘우리나라 출판과 문화 트렌드를 파악하려면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가야 해.’라고 생각을 하곤 했다. 꿈은 원대했으나 평일에는 학교 또는 회사를 가고, 주말까지 집을 나서서 약 1시간 30분 거리의 서울 도심의 서점까지 가기에 나의 의지는 빈약했다. 광화문 교보문고는 아마도 대한민국 서점 중 가장 먼저 신간이 진열이 되는 곳일 거다. 인터넷 서점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최신간의 실물을 만날 수 있다. 작가들도 자신의 책이 출간되면 가장 먼저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들러서 확인을 한다. 출간 직후 오지 않더라도 반드시 한번 즈음은 들르는 것 같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자신이 쓴 책을 만난다는 것은 작가들에게도 큰 상징적인 의미인 것 같다.


신간이 출간이 되면 작가도 들르지, 매장에서 신간 구매를 원하는 독자들도 많이 찾아오지, 입고된 신간은 빨리 진열을 해야지, 보유 장서도 많지, 출판사의 재고 관련 문의와 각종 행사, 이벤트 제안도 많지, 본사의 각종 업무 협업 건도 처리를 해야지…… 구체적인 사정까지 알지는 못하지만 가늠만 해봐도 교보문고 광화문점 직원들의 업무량은 어마어마하다. 선배들 시절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본사의 운영방침도 그렇고, 서점 직원들 스스로도 서비스 마인드가 강하다. 출판사와는 갑을의 관계라기보다는 (적어도 서점 직원들의 생각은) 협력관계이자, 출판 영업/마케팅 담당자와는 같은 직장인으로의 동질감이 형성이 돼 있다. 만일, 서점에 가서 직원에게 문의를 했는데 퉁명스럽다고 느꼈다면, 정말로 너무 바빠서 영혼이 잠시 부재중이라 그랬을 확률이 높다. 기분이야 당연히 상할 테지만, 원래도 일이 많은데 일이 몰렸나 보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 얼른 털어버리도록.




나에게도 교보문고는 놀이와 휴식의 공간이었는데…… 이곳에서 존재했을 20대 초중반의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은 출판사에 취업을 해 일을 하는 동안 치열했던 일터의 기억으로 덮여버렸다. 떠올려보려 애를 써도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분명, 예쁘고 좋은 기억들일 텐데 지워져 버려서 약간은 아쉬운 마음이다. 대신, 파트장님, 과장님, 대리님들께 책을 홍보하고, 표지 설문조사도 하고, 같이 하면 좋을 업무들을 이야기 나눴던 시간들이 새롭게 남아있다.


무엇보다 작가 사인회 때마다 한껏 상기되고 긴장한 모습으로 작가님을 만날 시간을 기다리던 독자이자 팬들의 모습은 참 많이 기억에 남는다. 사인회 후 SNS에 ‘정말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작가님을 직접 만나서 사인을 받고 이야기를 나누다니 꿈만 같았다. 작가님을 만나려고 지방에서 새벽 6시에 출발했다.’와 같은 글들이 사진과 함께 올라온 것을 보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한 입장에서 내 인생에 손에 꼽는 뿌듯한 순간이다. 나 스스로가 알고 있다. 교보문고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故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이념으로 마무리 하며 이만 총총……







자료 출처


교보문고, 교보문고 광화문점, 종로서적 관련 정보: 위키피디아



책 정보


아잔 브람 지음, 류시화 옮김,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연금술사, 201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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