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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ug 11. 2020

우연히 만난 거리의 악사 같은 소중한 인생 서점

숨겨진 연신내 동네서점, ‘책방난달’

우리 동네 연신내는 골목골목을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다. 자주 가는 청과점, 정육점이 있다. 각 주인들께서는 이곳에 터전을 잡고 장사를 시작한 지 꽤 오래되어 보인다. 이사를 온 집 바로 앞에는 세탁소가 있었다. 잘 됐다 싶어서 옷을 맡겼는데 가격도 비쌀뿐더러 영문도 모른 채 옷을 찾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골목을 거닐다가 바로 집 앞은 아니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허름한 한 세탁소를 발견을 했다. ‘드라이 하시나요?’ 라고 여쭈니 이곳에서 세탁을 한 지 어언 오십 년이 넘으셨 단다. 거의 십 년가량 빨지 않아서 목 부분에 새카맣게 때가 낀, 세탁을 맡기기에도 민망한 봄 코트를 비롯해서 옷가지 여러 개를 맡겼다. 어찌 옷이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를 했느냐며 세탁소 사장님께 한소리를 들을 만했다. 이틀 뒤, 하늘에서 세탁의 신이 다녀갔는지 백화점에서 구매한 지 15년이 된 봄 코트는 신상품이 되어 있었다. 세탁, 다림질 퀄리티와 가격, 소요 시간까지 모든 면이 완벽했다.




‘책방난달’도 동네 구경을 다니다 발견한 동네책방이자 독립서점이다. 주민센터를 가거나 산책을 할 때 자주 지나다니던 길이다.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을 보면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동네에 이렇게 좋은 공간이 있었단 말인가! 통유리로 된 벽 너머로 서점 안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전체 공간은 4평 남짓 되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바로 오른쪽에 긴 디귿자 모양의 평대에 진열한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로 인문, 철학, 사회과학, 과학, 역사, 예술 또는 독립출판물을 판매하고 있었다. 작품성과 예술성을 갖춘 그래픽 노블도 눈에 꽤 많이 띄었다. 에세이와 시집 등도 있었다. 문화비평, 사회학 등에 관심이 많던 학부 때 읽던 분야의 책들이었다. ‘왜 세상은 불공평으로 가득한 것인지.’에 관해 고민이 많던 이십 대 중반까지는 약간은 난해하고 어려운 용어로 점철된 책들도 꽤 자주 읽었다. 책방난달에 들어오니 잊고 살던 기억, 반복되는 일상과 바쁘다는 핑계로 젖혀 둔 소중한 가치들이 되살아났다.


왼쪽 서가에는 대부분의 책들이 표지가 보이도록 책장 한 칸에 한 권씩 자리를 차지한 채 놓여 있었다. 책방 주인의 취향이 느껴지면서도,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추천 도서 큐레이션을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정성스럽게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세상에 태어난 책이 존재를 존중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형서점에도 책들이 대형 북스탠드에 표지가 보이도록 놓여있다. 대부분 종합 베스트셀러, 분야 베스트셀러이다. 간혹 ‘이달의 신간 추천도서’라는 이름으로 생소한 책들이 칸칸이 놓여 있거나, 같은 책이 도배되어 있듯이 칸 전체에 진열이 되어 있다면 99.9% 광고 도서다. 진열에 선정이 된 대가로 공급률을 낮췄거나 그 달 말에 광고비 계산서를 처리해야 하는 경우다. 몇 번은 일부 기획 코너에 한해서 왜 이 책이 진열이 되어야 하는지 출판사별 경쟁 피티를 진행해 투표로 선정을 한 적도 있었다.


이미 너무나도 유명하고 상업성의 정점에 선 책들을 보고 있자면 가끔씩은 유명세와 화려함에 치여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베스트셀러가 다 유익하거나 좋은 책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저 책들 중 몇 권이라도 꼭 읽어야 해. 읽지 않으면 트렌드에 뒤쳐질 거야.’라는 중압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대형서점의 북스탠드가 유행을 만들어 내고, 모든 것을 잘하는 게 당연한 인기 아이돌이라면, 책방난달은 여행 중 우연히 듣게 된 길거리 악사의 연주 같다. 연주와 선곡이 심금을 울려서 발길을 멈추고 연주에 계속 귀를 기울이게 된다. 비록 연주자는 무명이더라도 음악은 마음속과 기억에 남아 돼 두고두고 인생의 자양분이 된다. 스스로에게 최고로 훌륭했던 인생 연주를 만난 것이다.




책방난달의 책장을 둘러보다 모처럼 <일인분의 삶>이라는 독립출판물을 집어 들었다. 부모로부터 독립 후 1인 가구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나 다운 삶을 어떤 방식으로 가꿔가고 있는지에 관한 에세이였다. ‘자유롭다고 해서 책임이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다.’라는 뒤표지의 홍보 문구가 가슴에 들어왔다. 편집디자이너로 일을 했던 이슬기 저자는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편집과 디자인까지 직접 해서 책 한 권을 완성했다. 문장이 아주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진솔함이 느껴졌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밥솥’, ‘셀프인테리어’, ‘일인용 소파’ 등 사물과 관련된 1인 가구의 소회를 메모하고, 예쁜 일러스트를 그려 넣은 기획도 좋았다. 스스로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하나씩 헤쳐 나가면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작가의 모습에 뭉클했다. 1쇄가 2019년 4월 4일에 발행이 되었는데, 같은 년도 6월 10일에 4쇄가 출간이 되었다. 나처럼 생각하고 공감하는 이들이 꽤 많았나 보다.




서가 한쪽에는 비슷한 디자인의 시집이 여러 개 놓여있었다. 분홍색 파스텔톤의 시집에는 <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 윤동주 외 지음, 차일드 하삼 그림이라고 쓰여 있었다. 옥색 표지의 시집에는 <이파리를 흔드는 저녁바람이> 윤동주 외 지금, 에드워드 호퍼 그림이라고 써져 있었다. 구매 후 잘 살펴보니 표지에 은박으로 ‘열두 개의 달 시화집 0月’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열두 달의 계절과 느낌에 따른 시가 실려 있는 열두 권의 시리즈로 구성된 기획물이었다. 각 시집에는 에곤 실레, 앙리 마티스, 빈센트 반 고흐 등 유명 화가의 그림이 담겨 있었다. 쪽수가 없는 대신 각 시마다 一日, 二日, 三日, …… 등으로 三十日 또는 三十一日 까지 날짜가 표기가 돼 있었다. 열두 권의 시리즈를 모두 갖고 있다면 매일의 날짜에 해당하는 시를 하나씩 읊을 수 있다. 정말 멋진 기획이었다. 지인들의 생일에 별자리 액세서리, 탄생화 디퓨저, 탄생화가 그려진 머그컵 등을 선물을 하곤 한다. 1년에 책을 한 권 이상은 읽는 친구라면 생일 시를 적은 카드와 함께 생일 시집을 선물을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높이는 크지 않은 내 손으로 딱 한 뼘 크기였다. 작고 얇고 가벼워서 늘 가방에 휴대하면서 시간이 나는 대로 틈틈이 꺼내서 읽기에도 참 좋았다. 나처럼 시를 가까이하고 싶어 하지만 어렵다고 느껴서 거리감이 있는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인상 깊게 읽은 노자영 시인의 ‘장미’를 공유한다. 五月 十七日의 시이다. 오른쪽 페이지에는 아마도 장미 정원인 듯한 공간에 벤치를 마주한 채 덩그러니 놓여있는 의자에 무심히 앉아있는 여인이 그려진 차일드 하삼의 그림이 수록돼 있었다. 시의 분위기와 매우 잘 어울렸다. 그림의 제목은 'The artist's wife in a garden, Villers le bel' 이었다. 그림 속 장소는 프랑스 도시 빌리에 르 벨 이다. 여인은 어느 예술가의 아내 또는 차일드 하삼이 기혼이었고, 아티스트가 스스로를 지칭한 것이라면 자신의 아내인 모양이었다.


장미
                            노자영

장미가 곱다고
꺾어보니까
꽃포기마다
가시입니다

사랑이 좋다고
따라가 보니까
그 사랑속에는
눈물이 있어요

그러나 사람은
모든 사람은
가시의 장미를 꺽지 못해서
그 눈물의 사랑을 얻지 못해서
섧다고 섧다고 부르는 군요.


Childe Hassam, The Artist's Wife in a Garden, Villiers-le-Bel, 1889,  Oil on canvas, 83.8×130.2cm


‘그림은 말없는 시이고,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 – 기원전 5, 6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서정 시인 시모니데스의 말이다. 동네서점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이 시집의 존재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인터넷서점에서 어떤 책이든 검색을 해서 원하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직접 서점 매장에 방문을 했을 때만큼 능동적으로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지는 않다. 사이트에 접속을 했을 때 맨 처음 마주하게 되는 것은 메인 화면이다. 메인 페이지에서 책이 소개되는 영역은 지극히 한정돼 있다. 소개가 되더라도 한종에게 할당된 시간은 고작해야 3~4일이 전부이다. 이후에 그 책을 보기 위해서는 검색창에 도서 제목을 입력하고 클릭을 해야 한다.


제한된 영역에 인기가 많은 매출이 높은 책 위주로 반복해서 홍보를 하기 때문에 독자는 일정 기간 동안 수동적으로 비슷한 책에 노출이 된다. 사은품 이벤트, 광고, 문자 홍보, 이메일 뉴스레터 홍보, 작가 인터뷰 등은 대부분 출판사의 주력 도서나 베스트셀러에 집중이 된다. '이 책을 읽은 독자가 많이 본 책', '비슷한 취향의 추천 도서' 등의 인터넷 서점 큐레이션 서비스에도 대체로 보였던 책이 보이고, 또 보인다. 이런 책들은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도 눈에 자주 띈다. 요컨대 정보의 바다 인터넷만 돌아다녀서는 채널만 다를 뿐 비슷한 책에 반복 노출이 되기 십상이다. 인터넷에서 의외로 다양한 책들을 접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책방난달 외관(사진 출처: 네이버 업체 정보)


책방난달, 책의 표지가 보이는 서가(사진 출처: 네이버 업체 정보)



이어지는 글이 한 편 있습니다.

- 인터넷서점과 다른 동네서점의 특징을 계속 이어서 작성한 글입니다.

- 인터넷서점의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왜 가끔은 동네서점을 가서 책을 고르는 것이 좋은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루에 3권 독서는 기본이라고요. 아.시.겠.어.요?

 : 동네책방이 인터넷서점보다 좋은 이유



책방난달

주소: 서울 은평구 갈현로 273-1 1층 (지하철 이용 시 연신내역 하차, 7번 출구에서 도보 10~15분)

연락처: 010-4933-5905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ookstore.nandal/

영업시간: 평일 오후 운영. 토, 일 미운영. 대관 진행 등으로 방문이 제한이 될 수도. 한편, 책방 내에 책 읽는 사람이 있으면 영업시간을 연장을 하기도 함. 근처 거주자가 아닌 방문자라면 전화나 인스타 메시지 등으로 영업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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