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과 멈춤

회사도 버텼고 가정도 버텼지만, 결국 내가 멈췄다.

by 경리언니찐나

44세. 그리고 21년. 나는 그 시간 동안 회계라는 세계 속에서 살아왔다.

제조업, 급식업, 건설업. 회사와 업종은 달랐지만 일의 본질은 늘 같았다.

실수하면 안 되는 일.

회계는 참 이상한 직업이다.

잘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저 당연한 일이 된다.

하지만 숫자 하나가 틀리면 그 순간 문제가 된다.

그래서 회계 일을 하는 사람들은 늘 긴장 속에서 일한다.

나 역시 그랬다.

매월 마감 전에도 숫자를 몇 번씩 다시 확인했고

결산 시즌이 되면 늦은 밤까지 회사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오래 버텨왔다.

쉬는 건 내게 낯선 일이었다.

출산휴가 2주 전까지 일했고 육아휴직 10개월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쉼이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다시 출근하던 날

나는 이미 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이었다.

그 시절 여자 회계 담당자는 늘 불안했다.

“휴직을 쓰면 돌아올 수 있을까.”

“내 자리가 없어지는 건 아닐까.”

그 불안 속에서 나는 더 열심히 일했다.

회사를 옮길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다.

“이 사람은 일을 잘합니다.”

“이 사람은 필요합니다.”

그 말을 듣기 위해 나는 계속 버텼다.

하지만 어느 날 몸이 먼저 멈춰버렸다.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도 머릿속에는 숫자가 떠다녔다.

결산 일정, 세금 신고, 외부감사 자료.

생각은 멈추지 않았고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아침이 되면 출근 생각만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회사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사람이 싫어진 것도 아니었고 회사가 미워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번아웃일까.

아니면 내 몸이 보내는 마지막 신호일까.

외부감사를 혼자 책임지던 그 해 나는 팀장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 자신을 갉아먹고 있는 직원이기도 했다.

누구보다 완벽해야 했고 누구보다 불안했다.

회사에서 가장 많이 하던 생각이 있었다.

“내가 없으면 회사가 멈출까.”

하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나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가장 쓰라렸다.

21년 동안 버텨왔는데 회사라는 시스템은 언제든 나 없이도 돌아간다.

그날 퇴근길에 차 안에서 한참을 울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너무 오래 참아왔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잠깐 멈춰도 되는 걸까.”

나는 그동안 단 한 번도 멈춰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멈추는 것이 조금 무서웠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쉰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멈춘다는 것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살아가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라는 것을.


"경리언니 찐나의 다독임"

혹시 오늘 출근길이 조금 버겁다면

잠시만 숨을 고르길 바랍니다.

당신이 나약해서 힘든 것이 아니에요.

그만큼 오래 진심으로 버텨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이 말을 스스로에게 해도 좋아요.

“나는 충분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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