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 아무것도 몰라도 괜찮을까요?
나는 그날 밤, 가방을 세 번이나 다시 쌌다.
볼펜이 들어 있는지 확인했고, 작은 수첩이 있는지 확인했고, 지갑 안에 교통카드가 들어 있는지도 확인했다.
확인하고도 불안해서 다시 열어봤다.
마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처럼.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내일 아침이 너무 빨리 올 것 같았고, 눈을 뜨고 있으면 출근이라는 단어가 자꾸만 커졌다.
서른아홉에 다시 입에 올리기엔 조금 낯선 말이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몇 년만 지나면 다시 내 자리를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몇 년은 금방 십 년이 되었고, 그 사이 세상은 너무 많이 바뀌어 있었다.
메일 보내는 법도 예전 같지 않았고, 엑셀은 내가 알던 엑셀이 아니었다.
회사에서는 당연한 말들이 이제는 검색창에 하나씩 쳐봐야 하는 단어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일 아침 9시까지 출근해야 했다.
다온산업 관리부 경리 보조.
휴대폰에 저장해둔 회사 이름을 한참 바라봤다.
경리 보조.
분명 면접 볼 때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할 수 있다고 말해야만 했다.
“아이도 이제 컸고요, 성실하게 잘할 수 있습니다.”
면접장에서 그렇게 말하던 내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났다.
조용했지만 조금 급했고, 절실했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사실은 성실함 말고는 내세울 게 별로 없었다.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최근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혼 전 작은 학원에서 행정 보조를 조금 했던 게 전부였다.
견적서가 뭔지, 거래명세서가 뭔지, 세금계산서가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도 솔직히는 헷갈렸다.
그런데도 면접에서 대표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어려운 일 없어요. 하다 보면 다 익숙해져요.”
이상하게도 그 말은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말은 가끔 그런 식으로 가볍게 던져졌다.
하지만 나는 원래 하던 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오래 쉬었고, 그 사이 자신감도 같이 멈춰 있었다.
거실 쪽에서 남편이 물 마시는 소리가 났다.
방문이 살짝 열리더니, 그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직 안 자?”
“응. 그냥…”
“긴장돼?”
나는 대답 대신 웃는 척만 했다.
남편은 잠깐 나를 보더니 말했다.
“처음엔 다 그렇지. 금방 적응할 거야.”
그 말도 틀린 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자꾸 서운했다.
처음이 다 그렇다는 말은 그 처음을 지나야 하는 사람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괜히 이불 끝만 만지작거렸다.
남편은 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얼굴로 문을 닫고 나갔다.
방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책상 위엔 내일 입고 갈 블라우스가 걸려 있었다.
너무 꾸민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너무 후줄근해 보이지도 않아야 하는 옷.
출근 첫날에 입을 옷 하나를 고르는 데도 나는 이틀이 걸렸다.
이상했다.
아이 초등학교 입학식 때도 이 정도로 떨리진 않았는데.
학부모 상담을 갈 때도, 혼자 관공서에 가서 서류를 뗄 때도, 이렇게까지 심장이 빨리 뛰진 않았다.
그런데 취업은 달랐다.
다시 평가받는다는 뜻이었고, 다시 틀릴 수 있다는 뜻이었고, 다시 모른다는 사실을 들킬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게 무서웠다.
‘내가 진짜 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 때마다 이력서를 넣던 날들이 떠올랐다.
답도 오지 않던 문자들.
짧은 면접 후 연락이 없던 회사들.
나이와 공백을 설명할 때마다 괜히 내가 작아지던 순간들.
이번 회사도 사실 대단한 기회는 아니었다.
직원 수가 많지도 않았고, 사무실도 크지 않다고 했다.
관리부라고 해봤자 경리, 총무, 잡무가 다 섞인 자리일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나는 그 자리가 필요했다.
월급이 필요했고, 내 이름으로 다시 출근하는 아침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나는 아직 끝난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가 필요했다.
휴대폰 화면을 켰다.
알람은 이미 세 개나 맞춰져 있었다.
6시 10분, 6시 20분, 6시 30분.
혹시 몰라 6시 40분에도 하나 더 맞췄다.
그때, 방문 밖에서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아직 안 자?”
나는 얼른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어, 이제 자려고.”
문이 조금 열리고 아들이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
사춘기가 온 뒤로는 전처럼 살갑게 굴지 않았지만, 오늘은 웬일로 내 눈치를 보는 얼굴이었다.
“내일 첫 출근이지?”
“응.”
“잘할 거야.”
짧은 말이었다.
대충 말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그 말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잘할 거야.
남편이 했을 때와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그건 위로라기보다, 내가 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가까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자. 너 내일 학교 가야지.”
아들이 문을 닫고 나가고 나서도 한동안 그 자리를 바라봤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날 밤의 나는 잘하고 싶은 사람이라기보다, 그냥 도망치지 않고 출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일어났다.
식탁 위에 반쯤 식은 커피를 올려두고도 거의 마시지 못한 채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 내 얼굴은 생각보다 더 긴장해 있었다.
버스 창밖으로 지나가는 간판들을 멍하니 보다 보니 어느새 회사 근처 정류장이 나왔다.
건물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 오래돼 보였다.
유리문 옆 작은 금속 간판에 회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다온산업
나는 잠깐 숨을 골랐다.
지금 돌아가면 아무 일도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창피할 일도 없고, 실수할 일도 없고, 모르는 걸 들킬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다시는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가방끈을 한 번 고쳐 잡고 유리문을 밀었다.
사무실 안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복사기 열기, 종이 냄새, 믹스커피 냄새가 섞인 공기가 먼저 밀려왔다.
안쪽 자리에 있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 짧은 시선, 바빠 보이는 표정.
“오늘 오시는 분?”
나는 얼른 허리를 숙였다.
“네, 오늘부터 출근하게 된 김서윤입니다.”
여자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윤미라예요. 이쪽으로 오세요.”
선임 이름이었다.
면접 때 대표가 잠깐 말했던 사람.
나는 그녀를 따라 사무실 안쪽으로 걸어갔다.
생각보다 자리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칸막이는 낮아서 누가 뭘 하는지 다 보일 것 같았다.
한쪽에서는 누군가 전화로 “네, 오늘 안으로 보내드릴게요”를 말하고 있었고, 창가 쪽에선 다른 직원이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었다.
내 자리는 복사기와 그리 멀지 않은 쪽이었다.
모니터 옆에는 작은 화분 하나가 있었고, 키보드는 오래된 자국이 묻어 있었다.
“여기 쓰시면 돼요.”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앉았다.
앉고 나니 더 불안해졌다.
정말 회사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윤팀장님은 모니터를 켜며 말했다.
“오늘은 이것저것 보시면서 익히시면 돼요.”
“네.”
“전화 오면 일단 받아야 하고요.”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윤팀장님은 너무 당연한 말이라는 듯 덧붙였다.
“크게 어렵진 않아요. 회사명 말씀하시고, 메모하시면 돼요.”
크게 어렵진 않아요.
또 그 말이었다.
이상하게 그 말은 늘 하나도 안 쉬운 일 앞에 붙었다.
나는 작게 침을 삼켰다.
“혹시 제가 잘 못 들으면…”
윤팀장님이 처음으로 나를 제대로 보며 말했다.
“못 들으면 다시 여쭤보면 돼요. 중요한 건 아는 척 안 하는 거예요.”
그 말은 생각보다 조금 위로가 됐다.
아는 척 안 하는 거.
그건 내가 어젯밤부터 제일 못 하겠다고 생각한 일이었으니까.
잠시 후 대표님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면접 때 봤던 얼굴이었다.
빠르게 걷고, 빠르게 말하고, 별일 아니라는 듯 사람을 긴장시키는 타입.
“출근하셨네요?”
나는 얼른 일어났다.
“네, 안녕하세요.”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어려운 일 없어요. 미라 씨가 알려줄 거예요.”
나는 웃는 척했다.
대표님은 이미 다른 직원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오전 안에 거래처 쪽 견적 건 확인해서 저한테 주세요.”
견적.
아직 아무 일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그 단어 하나만으로 심장이 다시 뛰었다.
이 회사에는 내가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은 것 같았다.
그때 옆자리에서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지혜예요. 영업지원 쪽이에요.”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지혜 씨는 사람을 조금 편하게 만드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긴장되시죠?”
“네… 조금요.”
“다 그래요. 첫날엔 아무것도 안 해도 집에 가면 기 빨려요.”
나는 그 말에 작게 웃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힘들다는 말이 이상하게 큰 위로가 됐다.
오전 내내 나는 별것 아닌 것들을 배웠다.
컴퓨터 로그인하는 법.
공용 폴더 위치.
프린터 사용법.
사내 메신저.
직원 이름 외우기.
별일 아닌 것 같았지만, 그 모든 게 낯설었다.
한 번은 프린터 앞에서 용지를 어떻게 넣어야 할지 몰라 잠깐 멈춰 섰고, 또 한 번은 공용 폴더를 잘못 눌러 예전 문서를 열어놓고 혼자 식은땀을 흘렸다.
누구도 크게 뭐라고 하진 않았지만, 나는 하루 종일 틀리지 않으려고 너무 힘을 준 사람처럼 어깨가 굳어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직원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지혜 씨가 내 쪽을 보며 물었다.
“같이 가실래요?”
나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으로 걸어가는 짧은 길에도, 회사 사람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자기들 얘기를 했다.
거래처 얘기, 납품 얘기, 어제 늦게 끝난 일, 대표 흉, 복사기 고장난 얘기.
나는 거의 듣기만 했지만,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지금의 나는 대화에 끼는 것보다 따라가는 것도 벅찼으니까.
밥을 먹다가 지혜 씨가 툭 물었다.
“예전에 사무직 하셨어요?”
나는 잠깐 멈췄다가 대답했다.
“아주 예전에요. 오래 쉬었어요.”
지혜 씨는 괜히 안쓰럽게 보지 않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처음엔 다 헷갈려도 금방 익숙해져요. 여기 일 자체가 엄청 어려운 건 아닌데, 처음 듣는 말이 많아서 그래요.”
엄청 어려운 건 아닌데.
또 비슷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혜 씨가 말하니까 조금 덜 무서웠다.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린다는 걸, 나는 이 회사 첫날부터 배우고 있었다.
오후엔 더 별일 없었다.
아니, 겉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온종일 작은 경보음이 울리고 있었다.
누가 내 이름을 부를까 봐 긴장했고,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숨이 멎을 것 같았고, 누군가 파일 하나만 열어보라고 해도 손끝이 먼저 굳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대표님이 내 자리 옆에 섰다.
“첫날 어땠어요? 할 만하죠?”
나는 잠깐 웃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대신 이렇게 말했다.
“배우면서 하고 있습니다.”
대표님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내일부터 하나씩 보면 돼요.”
하나씩.
그 말이 오늘 처음으로 조금 괜찮게 들렸다.
다 안 해도 되고, 다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씩.
어쩌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그 말인지도 몰랐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 나는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한참 봤다.
아침보다 훨씬 피곤했고, 긴장이 완전히 풀린 표정도 아니었다.
그래도 아침의 나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나는 오늘 도망치지 않고 하루를 끝냈다.
잘한 건 모르겠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다.
프린터 위치를 익혔고, 사람 이름을 몇 명 외웠고, 회사 냄새와 분위기를 견뎠다.
그 정도였다.
하지만 어쩌면 첫날은 원래 그런 건지도 몰랐다.
무언가를 잘해내는 날이 아니라, 버티는 법을 배우는 날.
낯선 자리에서 너무 티 나게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우는 날.
그리고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인지 조용히 확인하는 날.
휴대폰 화면에 아이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엄마 첫날 어땠어
나는 한참 보다가 짧게 답했다.
안 울고 잘 버텼어
보내고 나니 조금 웃음이 났다.
정말 그랬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울진 않았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적어도 알고 있었다.
내일도 무서울 거라는 걸.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많은 단어를 듣게 될 거라는 걸.
그리고 아마 누군가 내게 서류 하나를 건네며 아주 아무렇지 않게 말할 거라는 걸.
“이거 정리해보세요.”
그때의 나는 아직 몰랐다.
회사에는 이름도 비슷하고 쓰임도 다른 종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 종이들이 나를 얼마나 자주 멈춰 세울지.
하지만 하나는 알 것 같았다.
오늘 문을 열고 들어온 이상, 나는 이제 다시 회사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라는 걸.
아주 느리고 서툴더라도,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첫 출근 날은 업무를 잘하는 것보다 자리와 흐름을 익히는 것이 먼저입니다.
모르면 아는 척하지 말고, 다시 묻는 습관이 더 중요합니다.
첫날에는 사람 이름, 자리, 기본 도구 위치, 공용 폴더, 프린터 같은 업무 환경 파악이 핵심입니다.
회사 적응은 한 번에 되는 게 아니라 하나씩 익히는 과정입니다.
“이거 다 외워야 하나요?”
둘째 날, 미라팀장님이 내 책상 위에 서류 몇 장을 올려놨다.
견적서, 거래명세서, 세금계산서…
이름도 낯선 종이들이 한꺼번에 쏟아진 날.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회사는 사람보다 서류가 먼저 말을 건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