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적서, 거래명세서 내용은 비슷하지만 사용 용도가 다르다.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공급가액이 뭔지 겨우 알고 나니까.
이번엔 또 다른 게 내 앞에 놓였다.
하나를 구분하고 나면 끝날 줄 알았는데,
회사는 그렇지 않았다.
그날 오전, 한준 씨가 내 자리에 종이 한 장을 내려놓았다.
"이거 거래명세서예요. 오늘 출고 건이라 확인해두셔야 해요."
나는 종이를 받아 들었다.
품목이 있었다.
수량이 있었다.
금액도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아주 솔직하게 생각했다.
이거… 견적서랑 뭐가 다르지?
나는 한참을 보다가 결국 물었다.
"한준 씨, 이거 견적서랑 거의 똑같이 생겼는데요."
한준 씨는 짧게 웃었다.
"그래서 다들 처음엔 헷갈려요."
그리고 한 마디 더 했다.
"근데 비슷하게 생겼다고 같은 문서는 아니에요."
요즘 들어 자꾸 반복되는 말이었다.
비슷하게 보여도 다르다.
이 회사에서 내가 가장 자주 배우는 문장이었다.
윤팀장님이 나를 불렀다.
견적서 양식과 거래명세서를 나란히 띄워놓고 말했다.
"겉모습은 비슷하죠?"
"네."
"근데 역할이 달라요."
나는 수첩을 꺼냈다.
"견적서는 거래 전에 보내는 문서예요."
견적서 = 거래 전
"거래명세서는 실제로 물건이 나간 뒤에 확인하는 문서고요."
거래명세서 = 거래 후
적고 나니 문장은 쉬웠다.
그런데 내 눈은 아직 그 차이를 바로 잡아내지 못했다.
윤팀장님은 거래명세서 각 칸을 짚었다.
"이건 오늘 출고된 내역 기준이죠."
"이건 실제로 나간 품목이에요."
"이건 실제로 나간 수량이고요."
그러다가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견적서는 '이렇게 드릴게요'고, 거래명세서는 '이렇게 드렸어요'예요."
그 말이 바로 이해됐다.
이렇게 드릴게요.
이렇게 드렸어요.
두 문장은 비슷해 보이는데, 회사에서 그 차이는 꽤 컸다.
나는 수첩에 크게 적었다.
서류 이름보다 이 문장이 훨씬 잘 외워질 것 같았다.
그때 한준 씨가 다시 왔다.
"아까 요청 수량이랑 실제 나간 수량이 다를 수도 있어요."
나는 바로 고개를 들었다.
"다를 수도 있다고요?"
"네. 창고 재고나 묶음 단위 때문에 조정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나는 거래명세서를 다시 내려다봤다.
아까보다 더 무섭게 느껴졌다.
견적서는 아직 보내기 전 문서라면,
거래명세서는 이미 나간 걸 적는 문서였다.
틀리면 수정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을 잘못 적는 게 됐다.
나는 메일 요청서를 다시 열어봤다.
원래 요청 : 복사용지 30박스 / 파일홀더 100개
거래명세서 : 복사용지 30박스 / 파일홀더 120개
"윤팀장님, 이거 수량이 달라요."
"어디요?"
"요청서엔 파일홀더 100개인데, 거래명세서엔 120개예요."
윤팀장님은 한준 씨를 봤다.
한준 씨가 바로 대답했다.
"아침에 거래처에서 추가 요청 들어와서 20개 더 실어 보냈어요. 전화로 확인됐고요."
그럼 거래명세서가 맞는 거였다.
요청서보다, 견적서보다,
실제로 나간 수량이 기준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수첩에 크게 적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까까지 나는 둘이 거의 같은 줄 알았다.
견적서에 있던 품목과 수량을 그대로 옮기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견적서는 예상이고,
거래명세서는 결과였다.
점심시간이 됐다.
지혜 씨가 커피를 들고 와서 내 수첩을 보더니 웃었다.
"이렇게 드릴게요, 이렇게 드렸어요?"
나는 조금 쑥스럽게 웃었다.
"이렇게 적으니까 덜 헷갈리더라고요."
지혜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실무는 길게 외우는 것보다 자기 말로 정리하는 게 오래 가요."
그 말이 꽤 좋았다.
자기 말로 정리하는 것.
내가 요즘 버티는 방식이 딱 그랬다.
오후 늦게, 서광오피스에서 전화가 왔다.
이번엔 내가 받았다.
"안녕하세요, 다온산업입니다."
상대는 거래명세서 수량을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오늘 출고 내역을 다시 확인하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네, 파일홀더 20개 추가 요청 반영돼서 총 120개 출고된 내역 맞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방금 거래명세서를 기준으로 설명했다는 걸.
아침엔 이 종이가 견적서랑 뭐가 다르냐고 했는데.
오후엔 이 종이를 보고 실제 출고 내역을 설명하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메모장에 짧게 적었다.
견적서는 약속이고, 거래명세서는 기록이다.
창밖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며칠 전의 나는 서류 이름만 들어도 숨이 막혔다.
어제의 나는 세금계산서 발행 버튼에 손이 멈췄다.
오늘의 나는 적어도 안다.
같은 품목과 숫자가 적혀 있어도,
그 문서가 거래 전인지 후인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문서가 된다는 걸.
그 정도면, 또 하루를 버텼다.
견적서와 거래명세서는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역할이 완전히 다른 문서다
견적서 = 거래 전 "이렇게 드릴게요" / 거래명세서 = 거래 후 "이렇게 드렸어요"
거래명세서는 실제 출고된 품목과 수량 기준으로 작성한다
요청 수량과 실제 출고 수량은 다를 수 있다. 견적서를 그대로 복사하면 안 된다
거래명세서 확인 순서 : 거래처명 → 날짜 → 실제 품목 → 실제 수량 → 금액
그런데 며칠 뒤, 윤팀장님이 또 다른 종이를 내 앞에 놓았다.
이번엔 이름부터 보고 멈췄다.
발주서.
또 비슷하게 생긴 문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