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 남자의 독법_10. 쓰기
어렸을 때부터 뭐 하나 시작하면 제대로 끝마치는 법이 없었다.
시험공부도 큰누나 눈치 보며 하는 척하다 시험 범위까지 끝마치지 못한 체 시험을 보곤 했고, 좋아하는 게임을 하다 끝판왕 보스를 만나면 깨려 노력하기보단 몇 번 하다 안되면 그만두었다.
끝까지 도전해본 것이 없었기에 지독하게 실패해본 것도 없었다.
언제나 중간이었다. 공부를 썩 잘하진 못해도 사고 안치는 아들이었고, 돈을 많이 벌진 못해도 자기 밥벌이는 충분히 하며 살아가는 그냥 평범한 프리랜서가 되었다.
생각해보니 지금의 내 모습은 어릴 적 내 모습과 다른 것 하나 없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자기계발이 필요하다 생각해 거금을 들여 등록한 통번역학원은 6개월 만에 일이 바빠 그만두었고, 타성에 젖어 있던 어느 날, 무심코 드럼을 배워야겠단 생각에 등록한 드럼학원은 2개월 만에 거리가 멀고 회사를 그만두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학원으로 향하던 발길이 무뎌졌다.
어렸을 때처럼 (학업이나 생계와 무관한) 당장의 급한 일이 아니면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끝까지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난 싫었다.
중간에 배우다 그만두는 일이 너무 반복되어서일까?이제는 새로 무언가 시작하는 것조차 어렵고 두렵기만 하다.
나를 찾는 일
영어를 배우고 취미활동을 가지려 했던 건 나를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회사에선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취미를 통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끊임없이 찾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일이 힘들 때 일이 아닌 다른 통로를 통해 위로받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 그런 활동마저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첫 회사를 그만두자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 대신 그동안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던 내 시간들이 생겼고 난 그 시간들을 책 읽는데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연히 발견한 그 시간들은 나를 흥미롭게 했고 그렇게 한 권, 두권 책을 사모으기 시작하다 나중엔 독서모임에도 나가게 됐다.
아무리 책 판매량이 줄고 있다 해도 책 읽는 사람은 여전히 곳곳에 존재했다. 한 권의 책을 가지고 그들과 토론하는 시간이 즐거웠고, 독서모임이 끝나고 함께하는 저녁 술자리도 새롭게 느껴졌다.
글을 쓰는 일
책을 읽고 독서모임을 나가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그 생활에 익숙해질때즘 여전히 무언가 허전했다.
읽던 책을 다시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새로 만나던 사람들과의 대화도 어느 순간 편한 친구와의 대화처럼 익숙해져가고,
더 이상 읽는다는 것만으론 내가 자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쓰라고 시킨 글만 여지껏 써왔기에 자발적으로 글을 쓴다는 건 내게 무척이나 어색했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몰랐고, 어떻게 글을 쓰는 건지 더더욱 몰랐다. '글'쓰는 법을 몰랐기에 처음엔 책을 읽고 그 안의 문장과 내 생각들을 조금씩 담아 짧게 문장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계속할 수 있는 일
지금도 내 글은 유연함이 없고, 뚝뚝 끊기며, 심지어 문맥이 안 맞기도 한다. 그래서 난 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계속 글을 쓰는 건
글을 쓰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글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과
자기 위안에 불과하지만 글 한편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다는 것과
지금의 나를 글로 기억할 수 있다는 것
그 모습이 좋아서였다.
대체불가능한 삶
생활의 달인을 보면 한 평생 한 가지 일만 하여 그 분야의 달인이 된 분들을 만날 수 있다.
어릴 적 그 프로를 참 즐겨봤는데 그분들의 현란한 기술보단 그분들의 삶이 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어떤 분은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고, 자식들 뒷바라지 때문에 힘들어도 자신의 일을 40년간 해오신 분도 있었고, 다니던 회사를 나와 달인 밑에서 칼질을 배우는 새내기 요리사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난, 내가 하는 일에서 그런 모습을 꿈꿨는지도 모른다.
시스템안에서 돌아가는 회사의 구성원인 내가 대체불가능한 인력이 된다는 건 허상에 불과했다. 아무리 내가 일을 잘해도 회사에서 난 언제든 대체가능한 사람이며, 특별한 기술을 배우지 않는 이상 달인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걸 나이가 들고 회사생활을 하며 깨닫게 되었다.
그렇기에 내겐 글을 쓰는 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내가 될 수 없고, 나만의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만족에 불과한 글쓰기이지만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마음의 동요를 일으킬 수도 있고, 생각에 잠기게 할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건 참 매력적인 일이다.
마지막 그 남자의 독법
내가 말하고자 했던 독서법의 마지막은 쓰기였다. 쓴다는 건 읽기에 비해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기를 말하는 건,
쓰기 시작하면서 우린 생각을 정리하게 되고, 정리된 생각을 표현 할 단어를 선별하게 되고, 그렇게 읽는 것보다 더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읽고 난 후
우린 글로 적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지 않더라도, 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쓰는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말이다.
책을 읽고 좋았던 구절을 나만의 글로 남겨두면 그 글은 나중에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기도 한다.
브런치는 오로지 '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그래서 독후감만 쓰던 내가 일과 사랑에 대한 글을 써보겠단 용기를 낼 수 있었고 자꾸만 글에 대해 욕심내게 해주었다.
나처럼 무언가 한번 시작한 일도 잘 마무리 짓지 못하고, 취미활동을 하기엔 체력적으로 힘들다면 이런저런 글 한편 쓰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읽는 것보단 훨씬 더 의미 있고, 즐거운 일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