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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Nov 08. 2017

서른, 모든 것이 혹독해지는 시기

#4 여운이 남는 독서리뷰_3. 서른다섯의 사춘기

누구나 아는 여행지가 아닌 우연히 마주친 낯선 장소가 날 감동시킬 때,  

가려했던 맛집보다 허름한 골목 귀퉁이에서 마주한 식당의 음식이 내 입맛에 딱 맞을 때, 

다이어리에 적혀 있는 읽고 싶은 책 리스트보다, 제목에 이끌려 성급하게 산 책 내용이 날 위로할 때, 

난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일요일 오후가 그랬다. 대학 졸업 후 4년 만에 만난 친구와 한껏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친구와 함께 서점에 들렀다. 읽고 싶던 책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책 내용을 확인하고 있을 때 한 권의 책이 내 눈에 들어왔다.  

'서른다섯의 사춘기'

책의 목차와 제목에 이끌려 읽어 내려간 책 내용은 흥미로웠다. 

❛ 왜 나이 들수록 걱정은 점점 많아질까?❜
 
지나치게 걱정만 하는 사람은 그 성향이 너무 뿌리 깊어서 그 많은 부정적인 생각을 제쳐 둘 능력이 거의 없다. 매번 이번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 1톤짜리 생각의 무게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본디 위험을 예견하고 대처하려는 정신의 예행연습이 ‘걱정’이다. (중략)
이와 같이 걱정과 지나친 걱정을 구별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거기에 쓰는 에너지와 시간의 양이다. 

과거보다 걱정이 많아진 이유는 지나치게 선택할 것이 많아서이다. 또 다른 걱정의 원인은 개인의 가치가 확고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삶을 대부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올바른 선택을 하려면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가치라 한다. 서른이 너머 내 생활을 꾸려 나가면서도 우리는 종종 내가 나쁜 선택을 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무엇이 최선인지 그 기준은 알 수 없고, 자신의 의욕이나 욕망, 판단력도 다 의심스러워진다. 만일 내가 나쁜 선택을 한 거라면 빨리 이 상태를 벗어나야 하는데, 그것도 잘되지 않아 조급하다. 

이제까지 책 제목에 이끌려 성급히 산 책들은 즐거움보단 실망감을 안길 때가 더 많았다. '서른다섯'이란 숫자에 이끌려 구매한 이 책도 큰 기대 없이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책은 내게 좋았다. 



30대, 미혼인 우리의 고민은 대부분 비슷하다. 

일에 대한 전문성과 안정성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는 친밀함과 갈등 

사랑에 대한 설레임과 이별에 대한 상처

결혼에 대한 환상과 결혼 이후의 걱정 

나이 듦에 대한 서글픔과 조금씩 건강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  

대략 정리해보면 이 정도가 아닐까. 

40대가 바라보면 다 지나갈... 어쩌면 지나고 보면 의미 없을 수 있는 고민들이 30대인 우리에겐 가장 큰 삶의 화두이자 난제인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나와 다르게 큰 걱정 없이 회사를 다니고, 어렵지 않게 결혼을 하며 살아가는 친구들이 많다. 가끔은 그래서 나만 힘겨운 고민을 안고 살아가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책에서 마주한 30대의 삶은 내 삶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1. 일

❛꿈과 현실의 거리 좁히기❜ 

이십 대는 우리 앞에 놓인 명제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였는데, 삼십 대가 되니 ‘모든 걸 해야 한다’로 바뀌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펴볼 것은 ‘모든 것을 해야 한다’가 아니라 ‘이미 많은 것을 했다’이다.  
날마다 꿈을 응시하며 지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늘 말뿐이지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 힘겹고 답답한 것들을 불평하면서도 그것을 바꾸기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남의 탓, 환경 탓, 가족 탓, 경력 탓을 한다. 그것이 왜 안되는지 이유만 늘어놓으면 꿈 이야기는 언제나 원점으로 돌아갈 뿐이다. 세상에 시간을 들이지 않고, 별다른 노력도 없이, 경쟁률은 낮으면서, 평생 고수입이 보장되는 직업이 있을까? 늘 현실을 운운하는 사람이 사실은 가장 비현실적인 사람일 수 있다. 현실에 안주하면서 현실로부터 벗어나는 꿈을 꿀 수는 없다.      

30대는 자신의 일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해 나가야 하는 시기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이런저런 이유로 감내하기 힘들다 해도 직장을 관두거나 직업을 바꾸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쉬운게 동종업계로의 이직이나 그마저도 어려울 수 있다. 결국 주어진 현실 속에서 긍정적으로 답을 찾아야 한다. 

평생 안정적으로 수입이 보장되는 일이 없다면 스스로 즐거울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것을 평생 업으로 연결시켜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직장이 우리의 노후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2. 사랑

❛서른다섯의 혹독한 외로움❜ 

이십 대의 사랑은 복잡하지 않았다. 좋으면 그냥 좋은 것에 집중하기가 지금보다 쉬웠다. 지금은 좋다는 감정에 닿으려면 거쳐야 할 단계가 아주 많다. 또는 단지 지나간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때의 남자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줄 수도 있다. 혹은 아직까지 사랑다운 사랑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제대로 된 연애를 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라도 더욱 기대를 안고 사랑을 찾는다. 마치 자난 시간을 모두 보상받겠다는 오기라도 부리는 것처럼, 어느 경우이건, 삼십 대의 사랑이 더 현실적일 거라는 기대는 오산이다. 

사랑은 언제나 아프다. 사랑을 하고 있으면 사랑 때문에 아프고, 사랑을 하고 있지 않다면 외로워서 아프다. 

아픔을 주는 사랑에 매번 속는 건 그 끝이 언젠간 행복할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그렇게 아픔으로 다져진 사랑의 끝이 행복할 거란 믿음은 어쩌면 헛된 욕망인지도 모른다. 

다져진 사랑도 행복을 담보하지 못하고, 미숙한 사랑도 행복할 수 있는게 사랑이다. 

사랑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당신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사랑의 모습이 결정된다. 그렇게 30대의 사랑은 자꾸만 차가워져 간다. 


3. 결혼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나이가 되었다❜ 

삼십 대는 과거 어느 시기보다도 불안한 결혼 생활을 목격하며 살아가는 세대다. 그러니 이들에게 ‘결혼의 영원성’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 서른을 넘기며 몇 번의 사랑과 실연을 거치면서, 인간의 자기중심적 욕구를 충분히 경험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연애 시절부터 벌써 경제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를 확연히 느끼는데, 결혼을 생각하면 더 계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그래도 결혼이 답인가 싶어 지는 것이다. 결혼이 이렇다 저렇다 해도, 주변을 보면 여전히 결혼한 사람들이 더 안정적이고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미래도 계획 가능한 것 같고 훨씬 밝으며 인생에 대해 대체로 만족스러워하는 듯하다. 내가 힘겹게 버둥거리며 살 때, 지칠 대로 지쳐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기진맥진할 때 그들은 현실을 마치 나의 꿈처럼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많은 것을 알아버려서 이것이 정답인 줄 알았는데, 다음 순간에는 또 저것이 정답인 것 같다.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이제는 선택이 되어버렸다는 마음 사이에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된다. 

결혼할 시기가 되었다 해서 무턱대고 할 수 없는 것이 결혼이지만, 

그 타이밍을 놓치면 영영 못할 수도 있는 것이 결혼이기에. 우리는 그만큼 30대의 시기에 신중해진다. 

내가 그 사람의 단점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인지 

그 사람은 내 못난 부분을 감싸줄 수 있는지 

30대의 우린 연애를 하며 끊임없이 서로를 감성적으로 또 때론 이성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저자의 말대로 우린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나이가 되었다. 


4. 습관 

❛관성의 법칙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우리가 어제와 다른 오늘을 향한 첫걸음을 떼기가 힘겨운 이유는 관성 때문이다. 이른바 관성의 법칙, 정지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 하고,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 한다. 
오늘 어떤 변화를 시도하려는 나는 정지 중인 물체다. 뭔가 다르게 하려는 당신의 시도에 대해 관성은 지금껏 하던 대로 계속하라고 밀어붙일 것이다. 이를테면 계속 걱정하는 편이, 참고 있는 편이 훨씬 쉽다. 참지 않고 변화를 향한 첫걸음을 떼는 순간이 저항이 극대화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일단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기만 하면 아무리 느리게 진행되더라도 관성은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렇게 관성을 깨뜨릴 수 있는 변화는 사소한 것이다. 어차피 변화는 단번에,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자라온 환경, 생각하는 방식, 지금껏 이뤄온 성취와 실패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하루가 자리 잡는다. 

특히 자라온 환경과 생각하는 방식은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뼈대가 되기도 한다. 한번 정해진 사람의 습관과 습성은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 

지금 내 어떤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건 어느 순간부터 잘못 자리 잡은 내 습관 때문인 것이다. 

삶의 변화를 원한다면 그에 따른 하루의 행동과 생각하는 모습이 변해야 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 당연한 것이... 왜 그렇게 힘든 것인지..

그럼에도 의식적으로 관성의 법칙에 저항하려는 노력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때론 낯선 누군가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에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비슷한 삶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공감이 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간절한 그들의 사연에 저자(심리전문가)의 진심 어린 조언이 더해지니 책을 읽는 내내 덩달아 내가 상담을 받는 듯했다. 다들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인생인데.. 괜히 나만 제자리걸음은 아닌지.. 이대로 한 살 한 살 나이만 들어가는 건 아닌지.. 끝없이 이어지는 일에 대한 고민과 결혼에 대한 걱정까지. 

이런저런 생각이 겹치고 겹쳐 나 자신이 소모되는 듯한 느낌의 요즈음. 

친한 친구도, 연인도, 가족도 

그 누구도 내가 될 수 없음을 깊이 알게 된 이 시기에 '서른다섯의 사춘기'는 다시금 날 돌아보고 생각하게 했다.


관계보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이다.


머리로 알고 있던 이 내용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주변 사람들이 날 바라보는 시선, 연인이 날 대하는 모습, 사회적인 위치와 관계 속에서 길을 잃은 내가 보였다. 정확히 말해 길을 잃었다기 보단 내 길을 찾고자 노력조차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어떤 삶의 모습을 간직한 체 살아가고 싶은지. 

난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에 따른 행동(삶의 실천) 또한 없었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빛나야 할 이 시기에 누군가의 잣대에 의해, 사회적 시선에 의해 스스로를 제단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삶의 방향은 한번 정해지면 틀기가 어렵다.  

일과 사랑 그리고 결혼은 특히 그렇다. 거대한 현실 앞에 선택이 어렵다는 이유로 난 이런저런 눈치를 보며 시간만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야 했다. 


30대 여성의 일과 사랑에 대한 고민을 다룬 '서른다섯의 사춘기'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남성인 내게도 공감되었다. 이렇게 책을 통해 얻은 위로와 조언 그 이후 삶의 모습은 결국 내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일도. 사랑도. 결혼도. 

그 선택의 무게와 책임은 결국 자신의 몫이다. 계속해서 미루는 모습이 아닌 앞으로 나아가는 연습이 내겐 필요하다. 남들과 같을 수도 있고, 남과 다른 삶의 모습을 살아갈 수도 있다. 

어떤 길이든 자신 있게 나아가는 내 모습이 필요하다는 걸..

책을 읽으며 간절히 느낀다.  

 

J에게도 이 책을 건넸다. 나와 비슷한 모습을 갖고 살아가는 그녀는 이 책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했기에.  

다음 주에는 그녀와 이 책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며.. 말이다. 

더불어 비슷한 나이에 똑같은 고민을 앉고 살아가는 이와 책을 통해 독서토론을 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서른 언저리의 나이가 아니었다면...

일과 사랑 그리고 결혼에 대해 이렇게 깊게 고민하고 있을 시기가 아니었다면... 

2010년 처음 출간된 책이 2017년 개정되어 서점에 깔리지 않았더라면...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거리를 거닐다 우연히 마주친 책 한 권이 내게 참 많은 위로와 조언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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