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책을 읽다가...
어제와 같은 익숙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린 가끔 일탈과 낯설음을 경험하길 원한다.
집과 회사를 오가는 평일의 권태로운 일상을 탈피하기 위해 주말이면 연남동이나 망원동을 찾기도 하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커피전문점 대신 익숙하지 않은 커피가게에 들어가 커피한잔을 마시기도 하고,
매일 만나던 사람대신 학연, 지연과 상관없이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에 나가기도 하고,
이런 것으로도 해소가 안되면,
평소 가보고 싶었던 지역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린 저마다의 방식으로 익숙함 속에 낯설음을 찾고자 의식적으로 행동한다.
어쩌면 이런 주기적인 낯설음과의 만남이, 권태롭고 익숙한 우리의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버팀목이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익숙하게 책을 읽다, 문득 새로운 단어를 만났다.
여러 권의 책을 읽으며 많은 단어와 마주치지만, 유독 눈이 가는 단어 하나가 있었다. 그 단어의 의미가 좋아... 글로 잡아두려고 보니 다른 낯선 단어들도 눈에 들어왔다.
큰일을 당해서도 놀라지 아니하고 보통 때처럼 침착하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는 진보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경쟁 구도 속으로 들어가는 한, 우리는 그 경쟁이 벌어지는 판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새로움, 고유함, 선도력은 시도되지 못합니다. 누구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경쟁구도 속에서는 승리자도 패배자도 모두 행복하지 않고 피곤할 따름입니다.
분명 ‘자약’한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감이 항상 자신에게서만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자약’하면 이미 존재하는 경쟁의 틀 속으로 들어가려고 급급해하지 않고 자신의 의도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_<탁월한 사유의 시선> 중에서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것처럼 하루에도 수십 가지 감정이 우릴 지나쳐간다.
어떤 날은 사소한 것에 화가 나기도 하고, 어떤 순간엔 그냥 이유 없이 슬퍼지기도 하고,
그러다 생각지도 못했던 시련이 닥치면 한순간에 패닉에 빠지기도 한다.
우릴 둘러싼 좋지 않은 일들에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며 침착한 모습으로 대응한다는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우린 지난날 경험을 통해 잘 알고있다.
우리의 경험과 반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자약'이라는 단어가 그래서 낯설지만 마음에 깊숙이 들어오는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르겠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의 저자 최진석 교수는 모든 일에 자약할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처음엔 의구심이 든 문장이지만,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평화를 찾아갈 줄 알았는데,
한 해가 지나고 또 한 해가 지나도.. 내 감정은 아직도 너무 작은 일들에 흔들리는 걸 보니 말이다.
마음을 가라앉혀서 깊이 생각하거나 몰입하다. /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도록 성정이 깊고 차분하다.
짜여진 틀에 하루를 살다 보면 무언가에 깊이 생각하거나 몰입하는 내 모습을 마주하기 힘든 날이 있다.
어제가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내일은 그러지 않기를 다짐하며..)
몰입하여 생각하지 않아도 우리의 하루는 돌아가고, 대뇌와 두 눈을 현혹시키는 많은 콘텐츠들은 휴대폰을 켜기만하면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깊이 생각하는 힘이 떨어졌다는 걸 느낀다. 조금 긴 글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과 심안이 점점 사라져간다.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나를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으니 글이라도 종종 쓰며 '침잠하다'란 동사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
사람됨이 가볍지 않고 속이 깊다.
요새 가장 핫한 '황금빛 내 인생'의 서지안과 선우혁의 모습이 어쩌면 듬쑥하다란 단어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행동 하나하나가 가볍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겐 속 깊은 정을 표현할 줄 아는 그들의 모습과 듬쑥하다란 단어가 교차된다.
가족들에게 실망하여 집을 나간 아버지에게 조금씩 아버지의 자리를 찾아주려는 서지안의 모습에서...
방황하는 친구의 곁에서 묵묵히 힘이 돼주는 선우혁의 모습에서 듬쑥함을 보게 된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듬쑥한 사람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조금은 슬퍼 보이고, 약간은 외로워 보이고 그래서 힘들어 보인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듬쑥한 사람의 모습은 그랬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날 듬쑥하다고 평할까. (카톡으로 친구들에게 갑자기 물어보면... 날 돌+I로 취급하겠지?)
성격이 너그럽고 활달하다.
평소의 내 모습은 조용하고 차분하다.(적어도 스스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처럼 성격이 활발한 친구들을 볼 때면 나도 성격이 저렇게 밝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항상 진중하고 진지한 사람은 재미가 없다.
때론 분위기를 휘어잡을 줄도 알고,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거리낌 없이 친해질 수 있는 친화력이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너무 예측 가능한 조용한 사람 말고... 조금은 이색적인 반전이 있는 사람이라면.. 좀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일을) 헤아려 처리하다.
우린 모두 일을 한다. 그런데 누구는 일을 잘한다 평가받고, 누군가는 일처리가 미숙하다는 평을 듣는다. 일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대체 무엇일까?
일의 특성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일을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차이는 '헤아려' 처리하는 것의 차이가 아닐까.
같은 일을 하더라도 일의 결과물을 받을 사람의 심경과 기호, 그리고 사소한 부분까지 챙기는 사람은 일을 헤아려 처리할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디테일이라 표현할 수도 있고, 센스라 쓸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일을 가말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환영받는다. 난 언제나 일을 가말아하는 사람이고 싶다.
일의 끝을 단단히 단속하여 마무리하다. / 일이나 말을 끝마무리하다.
마무리되지 못한 시작은 안타깝게도 시작하지 않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완벽하지는 못해도 열매를 맺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_<일취월장, p557>
2018년 새해가 벌써 한 달 가까이 지나가는 중이다. 새해가 시작되면 우린 항상 희망차고 원대한 계획을 세우지만, 그 결과물을 보는 건 계획에 반에 반도 미치지 못할 때가 많다.
어쩌면 계획을 세우고 잊어버리는 것이 습관화되었기에, 일을 매조짓겠다는 의지나 모습이 많이 약해서인지도 모른다. 일의 시작이 반이라 했으니, 그 나머지 반은 분명 끝맺음에 있다.
이번 해엔 매조질 수 있는 목표와 계획 그리고 습관들로 하루하루를 채워보는건 어떨까.(작년과 똑같은 실수만 하지 않길 바랄뿐이다)
이제 이 글도 아퀴를 낼 시간이다.
자약하다란 단어를 마음에 품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찌하다보니 6개의 생소한 단어를 마음에 담게 되었다. 조금은 낯설고 생소하지만 좋은 의미를 담고 있는 6개의 단어처럼, 올해의 우리 모습도 조금은 낯설지만 긍정적 의미를 가득 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