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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Jan 14. 2019

#3 건강검진

지킬 수 있을 때, 무언가를 지킨다는 것. 

13년 만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군입대를 하기 전, 처음 건강검진을 받고 그로부터 13년이나 흘렀다는 사실을 문진표를 작성하며 알게 되었다.

참 무심하게도 13년이란 시간 동안 난 내 몸을 살펴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왜 그랬을까? 


첫째는 비용 때문이었다. 

그동안 내가 다녔던 직장은 당연하게도 내 건강을 신경 써주지 않았다. 건강이 걱정되면 스스로 월차를 쓰고 자신의 돈을 지불하여 갖가지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난 그러질 않았다. 

검사비만 100만원에 육박하는 돈을... 그렇게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강검진을 받고 이상이 없다면, 참 다행인 일인데 그렇게 들어간 비용은 왠지 아까울 것 같았다. 멍청하게도. 


둘째는 무신경함과 확신 때문이었다. 

아직 젊은 나이라고 생각했었고, 담배도 안 피고 술도 별로 안 마시니 당연히 건강은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어디 한 군데 특별히 아픈데도 없으니, 뭐 굳이 돈을 들여 그렇게 체크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 내가 건강검진을 받게 된 건,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아는 지인 덕분에 많은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점과 또 하나는 그동안 잠시 잊고 살았던 가족력 때문이었다. 내겐 간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계셨고, 엄마는 날 바라보며 항상 건강걱정을 하셨다.  

그렇게 난 새 직장으로 출근하기 일주일 전 집에서 조금 먼 병원에서 두 번째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다. 


기본검사 이외에 위, 대장내시경, 뇌와 폐 CT, 전립선 초음파까지...

넣을 수 있는 모든 검사는 다 포함하여 검진을 받았다. 검사 전날 대장내시경을 위한 물 2L와 약물 2L를 복용하느라 밤새 잠을 못 잤지만, 아무 탈 없이 건강검진을 완료할 수 있었다. 

일주일 뒤, 

종합검진결과표를 받아 들고 찬찬히 내 몸상태를 읽어 내려갔다. 13년 전에도 있었던 신장의 낭종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새롭게 역류성식도염이 생겼다고 했다. 외형적으로는 표준체중이긴 하나 내장지방이 높다는 소견도 함께 받았다. 그리고 가장 신경 쓰였던, 간 기능 저하가 나타났다. 감마지피티 수치가 높아 내과를 내원하여 적절한 약물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종합검진결과, 몸에 큰 이상은 없지만 이상징후들은 신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었고, 가족력이 있고, 불규칙적인 식습관도 내 몸을 조금씩 안 좋게 했던 것이었다. 


이제는 정말 관리가 필요했다. 

더 늦기 전에..

가지고 있던 것들마저 다 잃어버리기 전에...

되도록 몸에 좋지 않은 습관들은 하나씩 바꿔가며 내 몸은 내가 챙겨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지킬 수 있을 때, 무언가를 지킨다는 것.

엄청 쉬워 보이지만, 그게 참 어려운 일이다. 

우리에겐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이 일상에선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것들은 당연해 보이고,

당연하다고 느끼기에

그 감사함을.. 그 안정감을.

어리석게도 우린 그것을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자신의 건강이.. 부모의 사랑이..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이.

내겐 그런 것들이었다. 


무엇인가 잃기 전에, 

우리가 가진 것들을 한번쯤 뒤돌아 살펴보고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혹은 잃게 되더라도 그 시간을 조금 뒤로 미룰 수는 없는지...

생각하고 행동하며 현재를 살아갈 때 

그래도 미래에 조금은 덜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 더 신경이 쓰이는 건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일까.

그럼 참... 슬픈 일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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