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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Feb 26. 2019

글이 남긴 가치

#4  여운이 남는 독서리뷰_8. 글쓰기의 최전선

"열심히 잘 쓰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그 '열심'이 어떤 가치를 낳는가 물어야 한다."


브런치에 일기 같은 글을 쓰면서도 항상 조금은 더 잘 쓰고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이런 일기 같은 글에 구독자가 조금씩 늘어나면서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게 되고, 글 한 작성하는 일이 전보다 더 힘겨워졌다.

힘겹다는 건, 글이 점점 솔직해지지 못해 그랬고, 쓰면 쓸수록 알맹이가 빠져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글을 쓰며, 아무리 노력해도 '글'은 내 능력 이상도 그 이하도 나오지 않고 딱 내 수준만큼 나온다라는 것을 체감하면서 자꾸만 썼던 글을 지웠다. 그렇다고 취미생활인 글 한편 쓰자고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잘 쓴 글을 찾아보고, 글쓰기 관련된 책을 자꾸만 찾아 읽었다. 그렇게 괜찮게 읽었던 글쓰기 관 책

(https://brunch.co.kr/@item84/69)을 포스팅한 후 한동안 눈에 들어온 글쓰기 책을 만나지 못했다. 글쓰기 책에 언급된 어떤 조언도 내겐 더 이상 글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러던 찰나, 우연히 이 책을 읽었다.



<글쓰기의 최전선>이란 책은 사실 2016년 서점에서 처음 보았다. 서점에 갈 때면 항상 글쓰기 관련 코너를 기웃거리는데 그때 슬쩍 지나쳤던 책이다.

그땐 '최전선'이라는 책 제목이 일단 내 와 닿지 않았고, 유시민, 강원국 등 쟁쟁한 작가들이 쓴 글쓰기 책과 글쓰기 고전이라 불리는 책도 읽어야 했기에 처음 보는 작가의 글쓰기 책은 내 구미를 당기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책에 대한 평이 좋아 은유란 작가의 책을 처음 읽었는데 글이 세련됐다.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위 부제처럼 그녀의 책은 쓰기에 대한 조언과 자신의 일상을 적절히 섞어가며 세련된 문장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책 곳곳에 밑줄을 긋게 했다.

대다수가 자신의 생각을 쓰기보다 무난한 모범답안을 제시한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글이 '안전하다'라고 여긴다. 그 불안함, 두려움의 근원이 무얼까. 모난 돌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일 수 있다. 그러나 글쓰기는 둥그스름한 돌에서 모난 돌로 자신을 깎고 벼리는 일이다. 더 섬세하고 더 고유하게 감각을 다듬어야 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단지 해묵은 것을 새롭게 보는 시각이 있을 뿐이다.

어떤 글이 읽힌다면, 독자의 눈길을 붙들었다면 그것은 진부하지 않다는 뜻이다.

-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p123

진부하지 않은 글을 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쓰면서도 독자를 한 번 생각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누군가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지 않는 글은 자꾸만 발행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자기 검열'에 빠지고 조금이라도 있어 보이는... 멋스러운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하는 문장이었다.

남들과 은 일상을 살아가는 직장인이지만, 조금은 다른 생각과 시각으로 솔직하게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말해준다. 

그래야 무수히 많은 글 중에 조금이라도 더 가치가 있을 테니까.


나도 그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한된 삶의 조건에서 한정된 독서를 한다. 만나는 사람을 계속 만나듯이 읽던 책들을 주로 읽는다. 그간 읽어왔던 이물감 없이 술술 책장이 넘어가는 책들 위주로 본다.

그것이 참다운 독서일까. 앞서 카프카가 말한 내면의 얼음 바다를 더 단단히 만드는 책 읽기, 자아가 유연해지기보다 고집스러워질 가능성이 많지 않은가. 그건 약일까 독일까.

-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p86

 대부분의 글쓰기 책에도 언급된 조언이라 특별할 건 없지만, 실행까지 참 힘든 일이다. 아직도 한정된 독서를 하는 내게 이물감 있는 독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좋아하는 책을 읽기에도 버거운 하루인데 이물감 있는 독서는 마음먹고 독하게 하지 않으면 일상에서 행동으로 옮기기 쉽지 않다.

세상엔 수많은 양서가 있다. 그 많은 책들을 우린 다 읽지도 못할뿐더러, 그 책들을 다 읽는다 해도 우리 삶이 갑자기 변화하지 않는다.

양서를 많이 읽는데 욕심을 내기보단, 1년에 한, 두권만이라도 이물감 있는 독서를 한다면 작년보다 조금은 더 사고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올해엔 <자기 앞의 생>과 <코스모스> 이 두 권이라도 제대로 읽어야겠다.


 글쓰기는 파편처럼 흩어진 정보와 감정에 일종의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주제'를 부각하는 행위다. 단계가 있다. 마음에 걸리는 것 일단 쓰기. 어지러운 생각들을 자유롭게 마구잡이로 풀어놓는다. 그리고 편집하기.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판단해서 덜어내고 보완한다. 행동 표정 대화를 떠올리고 그대로 묘사하여 글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런 식으로 차분히 앉아서 하나씩 써 나가는 거다. 내가 쓰고자 하는 화제에 대한 사전적이고 교훈적인 정의를 내리기.
가령 '여자에게 커피 심부름시키지 맙시다'가 아니라 '나에게 그 화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한다. 나의 경험의 의미는 미리 주어지지 않는다. 글 쓰는 과정에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p159

경험의 의미..

글을 쓰며 항상 생각하게 되는 주제다. 내가 한 어떤 경험이 누군가에게 의미를 가져야만 '읽을만한' 글이 된다.

아니면 재미나 감동을 주는 글이어야 하는데 그런 글을 쓰는 건 내게 어렵다. 

누구에게나 글쓰기는 자기만족으로 시작하지만, 쓰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길 원하고 그 글이 독자에게 좋은 자극 혹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 글이 되려면 저자가 언급하였듯, 보편타당한 사전적인 교훈이 아닌 조금 다른 시각으로 내린 결론이나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주제여야 하는 것이다.


글을 쓸 때만큼은 내 경험과 내가 가진 문장력으로 쓰는 오로지 나만의 것이지만,

글이 내 손을 떠나는 순간부턴 그 글은 읽는 사람의 몫이기에 조금은 새롭고 달라야 한다.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은 분명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며 저자가 느꼈던 생각과 글쓰기 관련한 조언을 독자에게 제공하는 책이다. 그런데 신기하게 독자에게 이렇게 쓰세요..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작가가 생각한 잘 된 글쓰기와 지양해야 할 글쓰기를 함께 보여주며 이렇게 쓰는 건 어떤가요라며 되묻는 듯했다. 그런데 그 되묻는 문체가 딱딱하지 않고 (저자의 표현을 빌어)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이 괜찮았다.


- 점점 삶이 복잡계 수준으로 얽혔다.

- 누구나 자기 렌즈로 세상을 본다. 눈물이라는 렌즈로 보아야 타인의 눈물이 보인다.

  내가 외로워야 남의 외로움도 눈에 든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
- 곧 도덕적 마무리는 위험하다. 상황을 단순화시켜버린다. 감정을 평준화한다.

- 나의 역능만큼 써진다는 엄정한 진리. 영감 가득한 아름다운 문장으로만 채워진 글은 날로 기대하지 말라는 일침.


산문집이 아니지만 산문집처럼 이 책의 글은 어딘가에 남겨두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했다.

글이라는 건, 결국 자신의 삶에 기반하여 쓸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좋은 글에선 삶의 향기가 진하게 풍겼다.

'힘들다'는 말을 직접 하지 않아도 작가의 '글'에는 그 사람의 힘겨움이 보였고,

'행복'을 말하지 않아도 어떤 '글'에선 그 사람이 행복하다는 느낌을 공감할 수 있었다. 분명 좋은 글이었다.  

하지만 일전에 유용하게 읽었던 유시민, 강원국 작가의 글쓰기 책과는 그 결이 좀 달랐다. 세 권 모두 각자의 개성대로 글에 대한 생각과 쓰는 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괜찮은 저자를 알게 되었으니, 3월엔 저자가 쓴 산문집을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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