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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May 16. 2019

#6 여행

feat. 여행의 이유

청사포의 밤

4월 한 달간 일요일도 출근을 했다. 그렇게 하라 시킨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은 4월 한 달이었다. 30일간의 길고 긴 출근이 끝나고 5월 2일부터 6일까지의 휴가.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같이 일하는 동료와 1박 2일 부산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즉흥적이었다.

우리 일의 특성상, 이렇게 휴가를 얻을 수 없을뿐더러, 고생한 스스로를 위해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다.


일하는 중간중간 폭풍 검색을 통해 1박 2일간 갈 수 있는 곳, 먹을 만한 곳, 교통수단검색하고 여행 당일, 남자 2명은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부산에 도착한 우 마치 부산에 다시는 오지 못할 사람처럼 돼지국밥을 시작으로 조개구이, 농어튀김, 곰장어구이, 양곱창, 밀면, 복국, 수제맥주 등 부산에 가면 먹어야 한다는 음식은 하나씩 모두 섭렵해갔다.   

그러다 배가 부르면 해운대, 자갈치시장, 송도해수욕장, 태종대 등 부산의 명소라 불리는 곳들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사진을 남기기 바빴다.

그렇게 1박 2일간의 빡빡여행 일정을 끝내고 밤기차에 올라타 서울로 빠르게 돌아왔다.

부산 앞바다가 보이던 초량 848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책을 읽으며 생각해봤다.

난 어떤 종류의 여행을 선호하는 걸까?

이번 여행처럼 많이 먹고 돌아다니는 여행을 선호하는 걸까? 아니면 짧은 일정임에도 한 군데에서만 오래도록 머물며 해가 뜨고 지는 것을 관찰하는 여행을 좋아하는 걸까?


둘 다 아니었다.

 그렇게 여행을 선호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인스타그램에 나올법한 멋진 명소도, 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레임도..내게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여행이 알려주었다.




30일간 호주와 뉴질랜드를 여행한 적이 있다. 호주에서 번 돈으로 여행을 실컷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에 20대 후반, 홀로 떠난 여행이었다. 그 여행의 잔상 아주 오래도록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착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 여행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건,

한국에 돌아가도 유지되는 (걱정 없는) 학생이라는 신분과,

이미 사용하기로 계획되어 있던 여행경비를 마음껏 사용했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번 돈의 반은 이미 뚝 떼어 한국으로 송금해 둔 덕분에 돌아가도 생활엔 큰 걱정 없었다.


여행의 시작 항상 설레고 즐겁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엔 일상의 복귀와 미뤄둔 업무 그리고 여행지에서 과도하게 사용한 지출 등이 여행의 즐거웠던 추억을 뒤덮기도 한다.

20대 후반에 아무런 걱정 없이 떠났던 여행은 일상으로의 복귀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의 여행은 내게 평생토록 즐거운 추억으로 남겨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턴가 경험을 돈으로 소비하는 행위가 매력적이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돈을 사용하는 것보단 돈을 모으는 데에 더 초점이 맞춰지고, 전엔 소비하지 않던 비용(건강식품, 기능성 화장품, 부모님 용돈 등)이 늘어가면서 소비에 더 민감해졌다.


남들이 하는 것, 누군가 가는 곳, 갖고 싶은 물건을 사는 것 다하다 보면, 해야만 하는 것들이 조금씩 미뤄지게 된다.  현명하게 돈을 소비하며 잘 쉬고 싶은데... 책을 읽는 것 이외에 아직 방법을 잘 모르겠다.




몸에 밴 습관처럼 어디론가 떠날 때, 항상 책을 챙긴다. 이번에도 여행을 계획하며 책을 먼저 구매했는데 그중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와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을 챙겼다.

<여행의 이유>는 부산으로 가는 기차 안과 여행 중간중간에 모두 읽었으며, <쓰기의 말들>은 서울로 오는 기차에서 반 정도를 읽을 수 있었다. 두 권 모두 작가의 전작이 좋아 구매한 책들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여행의 이유>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고, <쓰기의 말들>은 내가 원하던 류의 책이었다.


<쓰기의 말들>은 후에 따로 리뷰를 쓰기로 하고, <여행의 이유>에서 좋았던 구절만 옮기면 이렇다.

삶의 안정감이란 낯선 곳에서 거부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고 믿는 것. 보통은 한 곳에 정착하며 아는 사람들과 오래 살아가야만 안정감이 생긴다고 믿지만 이 인물은 그렇지가 않아요.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이런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걸 모르죠. 그냥 여행을 좋아한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가 여행에서 정말로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삶의 생생한 안정감입니다.
<여행의 이유> 중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P60
기억저장소

사람들은 여행이 끝나갈 때 즈음 돌아갈 일상을 걱정하기도 한다. 휴가가 끝나간다는 초조함과 다시 오기 힘들 여행지를 떠나는 아쉬움을 짙게 간직한 체 다시 일상으로 복귀를 준비한다.

돌아갈 일상이 아무리 반복적이고 힘들다 할지라도 일상은 여행지보다 안정적이다. 돌아갈 일상이 안정적이기에 여행의 설레임 더 부각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돌아갈 일상이 없는 상태의 여행이라면, 그 여행은 온전한 여행이 되질 못한다. 설레임이란 감정의 동요는 우리 삶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는 상태에서만 발현된다는 것을 우린 몸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과 경험의 관계는 산책을 하는 개와 주인의 관계와 비슷하다. 생각을 따라 경험하기도 하고, 경험이 생각을 끌어내기도 한다.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생각으로 정리되고, 그 생각의 결과로 다시 움직이게 된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에 하지 말았어야 할 말부터 떠오르고, 밤이 되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게 된다. 후회할 일은 만들지를 말아야 하고, 불안한 미래는 피하는 게 상책이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미적거리게 된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여행의 이유> 중 오직현재 P81

여행을 하는 순간도 현재이고, 일상을 살아가는 지금도 우리에겐 현재이다.

두 현재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여행을 하는 순간의 현재는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을 잊게 해 준다는 사실이다. 눈앞에 펼쳐진 낯선 풍경과 색다른 경험들이 머릿속 번뇌들을 잠시 동안 잊게 해 준다.

작가의 말처럼 오롯이 현재를 느끼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상에서의 현재는 과거의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사로잡히기 쉽기 때문이다. 문젠 나 같은 사람은 일상에서의 현재가 너무 강해 여행을 떠난 곳에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부류의 사람에겐 떠남이 의미가 없다.

불안한 미래를 잠시나마 내려놓는 연습이 더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눈 앞의 즐거움과 현재의 소중함을 더 배우고 느끼게 된다.


만일 다음번에도 내게 며칠간의 휴가가 생긴다면

난 어떤 모습의 쉼을 선택할까?

피톤치드향이 나는 어느 숲 속 펜션에 혼자 틀어박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휴가를 선택할까?

아니면

집에서 보고 싶은 영화와 책을 쌓아두고 맥주와 안주를 벗 삼아 시간을 보내게 될까?

이도 아니면,

자기 관리를 한답시고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다시 친구를 만나 술 한잔 하며 그날 태운 칼로리만큼 더 먹고 마시는 쉼을 선택할까. 


자신에게 맞는 여행을 하는 것,

잘 쉬는 방법을 아는 것,

미래의 불안을 잊고 현재를 즐겁고 충실하게 살아가는 방법.


이러한 것들은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지만 스스로 잘 알고 있어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좀 더 밀도 있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 내게 이런 것들에 대한 팁이라도 알려주면 좋겠다.

한, 두 번은 따라 해 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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