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보다 종이책이 아직은 더 끌리는 이유
책을 잘 읽지 않던 친구가 어느 날 느닷없이 자신이 읽을만한 책을 몇 권 빌려달라고 했다. 평소 책 추천도 안 할뿐더러 책을 타인에게 빌려준 적이 없었기에 그냥 흐지부지 넘어갈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가끔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 친구가 책을 읽겠다는데 그 정도 수고도 못해줄까 하는 생각에 책장에서 친구가 읽을만한 책 5권을 선별해 건네주었다.
추리소설 1권
독서법과 관련된 책 2권
인문서 1권
에세이 1권
빌려준 책들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들로 즐겨 읽었던 부류의 도서들이었다. 책을 빌려주고 서로 일이 바빠 4개월 정도 만나지 못하다 얼마 전 만났을 때,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나 : 5권의 책 중 어떤 책이 제일 너한테 맞디?
친구 : 아... 미안 아직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했다. 책만 보면 졸리고 일이 바빠서 읽을 생각을 못하고 있었어.
나 : 그러냐~다 읽으면 얘기해줘.
그 이후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로 그날의 술자리가 끝났지만, 난 좀 서운했다. 내 딴에는 열심히 책을 골라 5권을 빌려주기까지 했는데 친구는 책을 단 한 권도 끝까지 읽지 못했다는 것과 어쩌면 (내가 달라고 하지 않는 한) 빌려준 책들이 그 친구네 책상 한 켠에 영영 머무를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이 뭐라고 그런 기분이 들었을까. 친구에게 5권의 책을 선물했다고 생각해도 되고, 다시 읽을 책이라면 다시 구매하여 보관하면 그만인 일인데 말이다.
더구나 내 책장에 꽂혀 있다고 해도 언제 다시 읽을지 모를 책인데, 그럼에도 소장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드니 괜스레 책을 읽지 않은 친구가 좀 괘씸하게 느껴졌다.
한 권, 두 권 사 모은 책이 어느새 700권 가까이 되면서 내 방엔 더 이상 그 책들을 모두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대대적으로 버릴 책들은 버리고 정리하여 500여 권의 책만 서재에 두었는데, 그래도 여전히 책은 많았다. 많다고 생각해도 책은 꾸준히 구입하게 된다.
친구에게 빌려준 책들은 이미 다 읽은 책들이고,
아직도 읽지 못한 책들이 꽤나 되지만,
난 여전히 '도서의 소장'에 집중하고 있었다.
책이 많아지고, 가방의 무게가 무거워지면서 전자책의 구매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이것저것 비교해보며 구매를 고민해봤지만, 결국 구매까지 가지는 못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여러 번 기기를 만져봤지만, 책을 읽는 기분이 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든 도서가 전자책으로 지원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기기는 계속 업그레이드가 되니 휴대폰처럼 2년마다 계속 바꿔줘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익숙하지 않았다.
편리한 휴대성에 가볍고 다양한 책들을 한 번에 담아 언제든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전자책의 매력이지만, 그런 장점들은 왠지 아직까지 내게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여전히 백팩을 메고 다니며, 가방 안엔 항상 수업교재와 필통, 우산 그리고 읽을 책을 지난 10년 가까이 넣어 다니다보니 큰 불편함이 없었다.
북마크로 인상 깊은 구절을 표시하기도 하고, 마음에 담고 싶은 문장은 형광펜으로 밑줄도 긋고, 때로 어떤 대목에서 내가 가진 생각을 포스트잇으로 써서 붙여가며 책 한 권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려는 독서습관은 전자책으로 대신할 수 없었다. (메모기능과 형광펜 기능이 전자책에도 있지만, 직접 쓰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물론 부분 기대감에 구매한 종이책이 큰 실망감을 안겨준 경우도 많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 경우도 많이 늘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나 내용이 괜찮은 책은 여전히 꼭 구매하게 된다.
남아있는 500권의 책을 정리할 때 즈음 또 한 번 전자책 사용에 대해 고민하겠지만,
40대가 되면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전자 책보단 종이책을 더 찾게 될 것 같다. 아직까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