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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Nov 10. 2019

#8 이사

이사가 처음이라서.

(본 글은 이사에 관련한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이사에 대한 개인적 감상만 적혀 있습니다.)

오래도록 함께했던 이 곳

아들, 내일 우리 집 계약하기로 했다.

6월 26일. 평소 문자를 잘 보내지 않는 엄마가 당황스러운 문자 한 통을 보내왔다. 이사를 가기 위해 지난 2개월간 과천, 수지, 가락시장, 숭실대입구, 동천 등 그렇게 다양한 동네를 다니며 살집을 알아보러 다녔지만 엄마의 마음에 드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가 갈 곳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엄마는 집을 팔기로 한 것이다. 집을 보러 온 사람이 4명이 채 되지 않았는데 그중 한 분과 계약을 하기로 했다고 하니 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엄마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밤새 잠 한 숨 이루지 못했다. 뒤늦게 본인이 갈 곳을 정하지 못했는데 집을 팔았다는 사실이... 불안한 것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집을 판지 이틀 후 엄마는 새로운 집을 계약했다.

조건은 딱 두 가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아파트.

그리고 다니던 교회를 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

이 두 가지만 충족하면 됐다. 이전에 그 많던 조건들은 엄마의 불안함으로 모두 소거된 것이다.


6월 말에 계약을 하고 11월 이사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에 가족 모두 이사보단 현업에 집중했다. 엄마는 떠나면 자주 보지 못할 친구들을 만나며 하루하루를 보냈고, 난 나대로 일이 너무 바빴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이사가 2주 앞으로 다가오자 엄마는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그랬다. 우리 집은 36년 동안 이사를 해본 적이 없었다. 이사 경험이 없기에 계약 시 주의사항, 적정 수준의 복비, 도배, 이삿짐 문의 등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게 시일이 가까워오며 점점 불안한 현실이 되었다. 

거기에 가장 큰 문젠 36년 동안 주인이 방치한... 쓰여지지 않은... 그렇다고 버려지지도 못한 물건들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집안 곳곳에 방치된 물건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이삿짐 업체 견적을 받기 전, 일부를 치웠지만 36년간 켜켜이 쌓아온 삶의 흔적들 쉽게 버릴 순 없었다.

엄마가 시집올 때, 할머니가 주셨다는 그릇부터, 이건 미제라며 버리지 못했던 컵, 돌아가신 지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세탁 비닐에 쌓여 있 아빠의 서류가방.. 엄마의 입장에선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그런 물건들 남아있었다.


같은 평수로 이사를 가지만 수납공간은 지금 아파트만큼 넓지 못했다. 그래서 추억이 쌓인 물건들을 모두 안고 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사 경험이 전무한 우리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결혼을 하며 나름 여러 번 이사를 해본 작은누나가 엄마와 조율하고 설득하며 짐을 하나씩 버리기 시작하였다.

냉장고에 쌓인 먹지 못하는 음식부터 추억으로만 남겨진 그릇, 바래고 해저 더 이상 입지 못하는 옷들까지.. 작은 누나의 손을 거쳐 뭉탱이로 버려지기 시작했다.


렇게 버려도.. 끝없는 짐들이 집 안 곳곳에서 나왔다.

엄마의 부엌에서도... 큰누나의 방에서도.. 그리고 내 옷가지와 책들까지. 거의 매일 물건들이 버려졌다.

수도공사를 하고 오래도록 살거라 생각하고 도배도 새로 했는데...우린 결국 떠나왔다. 




이젠 우리집이 아닌...정든 아파트..

렇게 맞이한 이사 당일 아침 8시 30분.

이삿짐 업체는 5분 일찍 도착하여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사가 시작되고, 7명이 한 팀인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집에 있는 물건들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버려질 것들과 가져가게 될 짐들을 다시 한번 크게 표시하고 그들만의 동선으로 집에 있는 물건들을 빠르게 정리해 나갔다. 우린 그저 아저씨들에게 커피를 사드리며 혹시 빠트리는 물건은 없는지, 가져가야 할 물건들이 버려지진 않는지만 체크하면  일이었다.


작은누나네도 월차를 내고 이사일을 도우러 왔고, 자식이 셋이나 있기에 가만히 지켜만 봐도 될 텐데 엄마는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짐이 잘 실리고 있는지 살피며, 짐이 빠져나간 자리가 더러워지자 그 부분을 닦고 계셨다.

어차피 새로오는 분이 다 수리하고 들어오는데 왜 그런데 닦고 있냐고 엄마 채근하니 엄마는 자기만족이라 하며 이사오는 사람이 짐이 빠지고 처음 들어올 텐데 첫인상이 좋아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다.

조금이라도 쉬었으면 좋겠는 게 자식 마음인데.. 엄마는 엄마 나름의 방법으로 정든 이 집과 작별인사를 하는 것 같아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집안에 있으면 일하는데 걸리적거릴 것 같아, 복도로 나오니 복도 끝에서 작은누나의 눈시울이 불어지는 게 보였다. 복도에 서서 이삿짐들이 하나씩 내려지는 걸 보며 누나도 정든 이 집과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다. 

삼 남매 모두 이 공간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누나에겐 이곳이 친정이었는데 그런 곳이 다시는 올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리니 어찌 마음이 무겁지 않을까.

작은누나의 우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나도 무너져 내렸다.

들키고 싶지 않아 작은누나를 빠르게 외면해갔지만,

상기된 얼굴과 충혈된 눈이 서로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작은누나나 나나 모두 이 슬픔을 엄마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누구보다 마음 아플 당사자는 엄마이기에..

살아생전 마지막 집이라 생각하고 살아온 집인데 떠나야 하는 엄마의 마음을 자식들이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마음을 다 헤아리진 못해도 이사하는 동안 엄마에게 좀 더 친절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이사를 결정하고 계속 걱정하는 엄마에게.. 쓰지도 않을 짐들을 버리지 못하는 엄마에게.. 이사 관련하여 세세한 부탁을 하는 엄마에게 난 불친절했다.

그게 이사를 다 끝마친 뒤, 눈가에 주름이 몇 개는 더 생긴 엄마의 얼굴을 보자 그제야 내 불친절이 보였다.

항상 이렇게 뒤늦게 깨닫고 후회한다. 련하게도.


그렇게 가족 모두가 슬픈 이사를 마치고 엄마가 바라던 새 아파트로 이사를 온 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엄만 새 집의 모든 것들이 낯설했다. 지하철 역에 내려서 집까지 오는 길도 낯설어했고, 집안에 들여놓은 새 가전도 사용법을 몰라 힘들어했다. 그런 낯설음은 방배동 옛집에 대한 그리움만 더 커지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식들보단 덜 하겠지만 엄마도 시간이 지나면 이 공간에서의 삶에 익숙해지시겠지...

예전 공간에서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더 옅어지게 이곳에서의 좋은 추억을 하나씩 빨리 만들어가야겠다....

모든 짐을 다 비워내고 한참을 이 공간에서 서성인 엄마.




36년간 한집에서 살아온 내게 이사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방배동이란 동네와... 오래도록 머물렀던 그 아파트는 우리 가족에게 집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아빠 없이 삼 남매를 홀로 키워야 했던 엄마에겐 유일한 삶의 버팀목이었고, 초, 중, 고, 대학 심지어 직장까지도 가까워 방배동 집을 벗어나 본 적 없는 내겐 유일한 쉼의 공간이었다. 학창 시절 땐 친구들과 밤새 게임을 하기도 했고 사회인이 돼서는 내 방을 서재로 바꿔 쉬는 날은 집 밖에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서 놀기도 했다. 

아주 어릴 적엔 내 방에서 혼자 먼저 간 아빠를 원망하며 많이 울기도 했었고, 나이가 들고 보니 그래도 우리 가족이 머물 보금자리를 남기고 간 아빠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이 공간에서...


다양한 추억이 있는 그곳을 뒤로한 채, 우리 가족은 경기도의 새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수도관이 샐 걱정을 안 해도 되고, 개별난방이니 방이 추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시설은 편리하고 깔끔하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아직은 집과 동네가 조금 차갑게 느껴진다. 구석구석 동네를 알지 못하고, 어디가 괜찮고 조용한 카페인지... 외식은 할만한 곳이 있는지... 엄마가 장을 볼 수 있는 시장은 있는지.. 배달은 되는지..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동네에 아직 정을 붙이지 못했다. 

결혼을 하기 전, 이 곳에서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동네를 둘러보며 정을 좀 붙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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