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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Dec 29. 2019

#8 기대

기대하며 살아간다는 건..

중, 고등학생 땐 설날이 기다려졌다. 집안 어른들께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용돈 이외에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수입이 세뱃돈이다 보니 그 순간이 어찌 기다려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근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게 설날은 매년 반복되니 내가 올해에는 얼마의 세뱃돈을 받을 수 있겠단 예상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어른들마다 매년 세뱃돈을 주시는 액수가 정해져 있었다. 큰 아버지는 만원, 작은 아버지는 3만원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어린 나이에도 올해는 얼마의 세뱃돈을 받고, 무엇을 사야지하는 나름의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는, 또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는 해에는 조금 더 많은 세뱃돈을 챙겨주신다는 걸 누나가 먼저 더 많은 세뱃돈을 받는 것을 보며 내가 그 나이가 될때를 기대하게 되었다.


기대.

이게 참 무서운게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던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때, 이상하게 그 실망감이 더 크다는 것이다.

철이 없던 어린 시절, 세배를 하러 가지 못하거나, 친척 중 한 분이 못 오시면 기대했던 세뱃돈을 받을 수 없게 되었고, 그에 따른 실망감은 유난히 더 컸다.


나이가 더 들고 보니, 우린 살면서 무언가 기대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긴 했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기대가 주는 실망감은 10대 때 순간만큼 크다는 것을 살면서 종종 경험한다.  


지인의 결혼식에 얼마의 축의를 했는데 내가 결혼할 땐 그에 상응하는 축의를 받을 거라는 기대

가족이니깐 이 정도는 이해해 주겠지 하는 기대
이번에 이만큼 일했으니 회사에서 어느 정도 성과급을 주겠지 하는 기대

남자 친구(또는 여자 친구)가 이번 생일엔 이 정도의 선물을 해주겠지 하는 기대.

사소하게는 친구에게 2번 밥을 샀으니 친구도 한 번은 사겠지 하는 기대


우리는 어쩌면 똑같은 일상 속에 이런 사소한 기대들을 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기대하는 순간만큼은 사람이 행복하니깐. 즐거우니깐. 우린 일상 속에서... 또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기대란 것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기대했던 일이 (예상대로) 일어나면 우린 행복을 느낀다. 물론 행복을 느끼지만 감사한 마음보단 당연한 마음을 더 갖게 되기도 한다. 그 일이 일어날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와 반대로 기대했던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땐, 우린 기대한 것 이상의 상실감과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기대 뒤에 돌아오는 이런 감정들이 난 싫었다.

기대하고 실망하고, 기대하고 체념하는 이런 감정의 굴곡을 계속해서 경험하는 건 내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또 일상 속에서 기대란 것을 덜 하게 되었다.

기대를 덜 하면, 실망할 일이 그만큼 줄어드니깐,

기대를 덜 하면,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더 많이 맞이할 수 있게 되니깐,

기대하며 설레는 것보다 기대하지 않고 예상치 못한 순간을 맞이하는 게 난 더 좋았다.



사진 출철 : https://www.theconfidentteacher.com/2017/03/styrkan-i-larares-forvantningar/

살아가며 기대란 것을 전혀 안 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기대는 그 바랐던 일이 일어나던, 일어나지 않던 그 기대가 현실이 되기 직전까진 사람을 설레이게 하니 분명 우리 삶에 필요하다.

다만 기대하는 일이 많을수록, 상대에 대한 기대가 크면 클수록 그 실망감도 클 수 있기에 살아가며 (상대에 대한) 기대는 조금 덜 하게 되었다.


대신 나에 대한 기대 조금 더 하게 되었다.

조금 더 잘 살려면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 하는지..

조금이라도 좋은 습관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보단 혼자 있는 시간은 어떻게 잘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고 그에 맞게 행동하고자 노력하게 된다.

내가 더 잘되고, 내가 누군가에게 (기대 없이) 베풀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상대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제 주변엔 나를 제외하고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이 거의 없지만,

난 친구들에게 얼마씩 축의 했는지 기억하지도, 어딘가에 적어두지도 않았다.

그때그때마다 내 형편이 허락하는 선에서, 내가 담고 싶은 만큼 축의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형식적으로 가야 하는 결혼식엔 가지 않게 되었다.


가족 사이에서도 구성원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모두가 조심해야 한다. 가족이니깐, 부모니깐 당연하게 해줘야 하는 일은 없다.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지만, 당연히 이 정도는 해주겠지 하는 기대는 가족 사이에서도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쓰다 보니 나란 사람이 참 개인주의적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메말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제껏 경험한 세상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고,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작아서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상대가 나에 대한 기대가 크면 클수록  그 상대방을 조금씩 멀리하게 된다. 내가 기대를 덜한 만큼, 상대도 기대를 덜 해줬으면 좋겠는데... 상대가 나와 다른 마음이라면 난 상대를 더 가까이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친구관계도, 가족관계도, 연인관계에서도 서로에게 조금 덜 기대하고, 의지할수록 그 관계가 좀 더 끈끈해진다고 믿는 건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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