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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Mar 15. 2021

취향이 비슷한 사람 3 (end)

만남 그리고 그 후 생각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e8GPbbo20t0

2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 신사역 사거리.

설문지로만 그려봤던 상대를 실제로 마주하는 날이 되었다. 흔한 말로는 소개팅.

그러나 주선자는 없다. 따라서 서로 눈치 볼 것도 없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억지로 봐야 하는 그런 상황이 아니기에 상대도 나도 부담이 없는 그런 만남이었다.

부담은 없지만 일면식도 없는 상대를 마주하는 그런 묘한 설레임은 언제나 소개팅이 주는 매력이 아닐까.


상대의 얼굴도, 나이도, 직업도 모르는 상태에서 만나는 행위에 대해, 

여자사람후배는 왜 그런 만남을 나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내게 지었었다.

음... 글쎄.

후배에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냥 직장과 집만 왔다갔다하는 일상 속에 조금은 특별한 하루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신청을 했던 것 같다.

우연한 만남이 어떤 관계로 서로에게 다시 돌아오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약속시간보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하여 그녀를 기다렸다.

은은한 조명, 적당한 시끄러움, 약간은 부담스럽지만 고급진 분위기, 와인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

호스트가 선정해 둔 가게답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매우 적당한 장소였다.

어떤 상대가 나올지 생각하며 기다리기를 5분 남짓...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났다. 




단아하고 직장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녀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가벼운 인사를 했다. 

어색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서로 연신 물만 들이키며 어떤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해야 할까. 머리를 핑핑 굴리고 있었다.   

여느 소개팅처럼 상대의 이름을 묻고, 주선자 이야기를 하며 공통의 관심사를 서로 주고받는 소개팅이 아니였기에 우린 그런 질문들은 모두 생략했다.

보통의 경우, 서로의 닉네임을 부르고 취향기록지에 쓴 내용을 바탕으로 질문이 오고 간다 하는데...

문제는 그녀가 그녀의 취향기록지에 무엇을 어떻게 썼는지, 내가 쓴 내용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기록지를 작성하고 3주 뒤의 만남을 잡은 건 내 여건 때문이었기에 그것으로 상대를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그런 연유로 대화는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했다. 

왜 이 만남을 신청했는지, 취향기록지에 나온 설문을 바탕으로 묻고자 했던 것들을 하나씩 물어보았다.

문서로 만난 상대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겠구나 생각했지만,

실제로 마주한 상대는 나와 결이 다른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게했다.

그건 나도, 상대도 그런 듯해 보였다.

 

약속된 시간은 2시간 남짓.

이분과 연을 이어나가지 않더라도 약속된 2시간 동안은 상대방에 대해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상대방이 관심 있어하는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게 황금같이 주어진 일요일 저녁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여행을 더 많이 다니고, 와인에 취미를 가진 그녀의 이야기는 새로웠다. 

다르게 살아온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그리고 그 이야기가 상대에게 가장 좋았던 순간에 대한 주제라면 대화는 생각보다 즐겁게 흘러간다는 사실은 살아오며 터득한 삶의 가벼운 지혜였다. 

그렇게 가벼운 식사와 라이트한 대화가 오고 간지 2시간 남짓, 

우린 그렇게 인사하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출처 : https://unsplash.com/s/photos/love-connection

인연을 만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어진 각자의 삶을 살다보면 언젠가 인연을 만나겠지라고 생각한다면 어쩌면 영영 인연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인연이라 생각했던 상대와도 작은 것(서로에겐 큰 문제일 수도 있는) 하나로 서로의 길을 가기도 하는 것을 보면 연애와 결혼이라는 것이 저절로 나이가 들면 이루어지는 그런 종류의 것들이 아님을 느끼게 했다. 


인연을 찾기 위한 노력은 분명 계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노력 때문에 억지로 인연이라고 포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불현듯 찾아오는 외로움과 가족의 걱정 때문에 서둘러 인연이라 포장하고 연애하고 결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오히려 우리의 삶을 더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난 희미하게나마 느끼고 있었다. 


홀로서기. 

인연을 찾으며 마음속에 항상 간직해야 하는 단어가 바로 홀로서기였다. 

내 문제와 외로움을 상대에게 전가하지 않고, 오롯이 혼자 감당하며 홀로 있어도 삶이 불안해 보이지 않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어려우면서도 내겐 중요한 일이었다. 


누군가는 사랑한다면 무엇이든 다 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반문할지 모른다. 

맞는 말이다. 물론 다 해준다는 것의 범주는 개인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서로 사랑한다면 상대의 영역을 존중해가며 서로 사랑할 것이다.  


너무 큰 상처를 받지 않을 만큼만, 

상대도 나도 서로의 삶과 영역을 지켜가며 하는 그런 사랑. 

사랑의 정의와 가치는 모두 상대적이기에 우린 각자의 사랑법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내 사랑법만 강요한다는 것은 어쩌면 사랑이라는 정의를 벗어난 구속과 폭력이 될지도 모른다. 


20대에 이런 글을 썼더라면, 사랑에 대한 생각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고, 

30대 초반에 썼다면 또 사랑에 대한 관점이 이와 달랐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며, 몸과 생각이 변하는 만큼 사랑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점점 희미해져간다. 


결혼을 한 친구들에게 사랑에 대한 정의를 묻는다면 무엇이라 대답할까?

친구들을 만난 지 너무 오래되어 그들의 삶도 궁금해지는 3월의 일요일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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