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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May 30. 2021

이별 앞에서

feat. 글쓰기숙제 (글감 : 본심)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s/photos/breakup


"우리 그만 헤어지자." 


(그 남자)

함께 걷던 삼청동 그 길 끝자락에서 넌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이제 우리 그만하자고. 나 너무 힘들다고...

언젠가 내게 그 말을 건넬 줄 알고 있었지만 그날이 오늘이 될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너와 나를 둘러싼 공기가 매우 차가워졌고, 우리의 대화는 어떠한 색채도 띄지 못한 체 무미건조한 일상의 안부만 물으며 흘러갔기에 어느 순간 내게도 이별이 찾아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너에게 찾아온 그 감정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권태기일수도 있고, 나에 대한 사랑이 아예 식어버린 것일 수도 있으니 시간을 두고 너의 마음을 어떻게 돌려야 할지 나름의 노력을 하며 우리의 관계를 개선해보려 했는데... 넌 헤어지자란 한 마디로 우리의 관계를 정리하려 했다.

'헤어지자'란 너의 말에 그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지만, 그 말에 담긴 너의 본심을 알 수 없었기에 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냥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우린 지하철역까지 함께 걸어갔다.  

붙잡아볼까?

내가 더 노력하겠다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려주면 내가 고쳐보겠다고.... 이게 너의 본심이 아닌 거 안다고...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하면... 그건 내 욕심인걸까?


우리만큼 서로를 잘 아는 연인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앞에 놓인 이별이란 단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난  몰랐던 걸까?

아니... 어쩌면 이별이 다가오는 줄 알면서도 '내가 아는 너라면 모두 이해해줄거야' 란 착각 속에 다가오는 이별을 모른 체 해버린걸까?

지하철역이 가까워질수록 너와의 시간은 줄어드는데...

어떤 말이라도 내뱉어야 하는데...

난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체,

지하철역 앞에서 '알겠어... 잘 가'라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야 말았다.


(그 여자)

밥을 먹기 전에 너에게 말해야 할까. 커피를 마시며 말해야 할까.

그렇게 너에게 그 한 문장을 전하기 위해 난 어젯밤부터 고민을 했어. 그런데 밥을 먹을 때도, 커피를 마시면서도 차마 용기가 나질 않아 결국 함께 걷던 그 길 끝에서 너와 나만 들리게 조심스레 그 말을 꺼낸 거야.

내가 내뱉은 헤어지자란 말이 내 본심인지... 아닌지는 나도 잘 확신이 안 섰지만.

너와 함께한 모든 시간이 너무 선명하게 떠올라서 혹시 네가 떠나버린 뒤, 난 후회할지도 모르겠어.

그럼에도 그 말을 한 건, 지금 우리의 관계가 시간이 지나도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을 것 같아서... 내가 너무 힘겨워서 내뱉었는지도 몰라.

그런데 넌 내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더라.

어떤 마음이었을까? 너무 급작스런 일이라 조금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거였을까?

아니면 너도 내가 그런 말을 하게 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을까?


화를 내거나, 이유라도 물어봤다면 어쩌면 담담히 널 정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넌 아무 말이 없었어. 마치 우리가 헤어진다는 것이 예정되어 있었던 일인 것 마냥 담담히 받아들이는 네 모습에 난 오히려 더 슬퍼져.

깊은 고민에 잠긴 네 모습을 보며 어쩌면 난 네가 한 번쯤 다시 날 잡아주길 기대한 걸까?

네 욕심이겠지.

그렇게 떨리는 목소리로 '알겠어.. 잘 가'라고 하는 네 말에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내려갔어.

조금이라도 눈물을 보이면 다잡은 내 마음이 다시 흔들릴까 봐.


헤어지자.

살면서 한번쯤 듣기도 하고, 또 때론 전하기도 하는 이 한 마디에 우린 수많은 감정과 생각을 담는다.

헤어짐을 고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선 '이번 한번만 용서해줄테니 날 잡아'란 생각을 하기도 하고,

상대와 정말 끝내려고 한 헤어지자란 말을 상대는 왜곡해 매일 밤 집 앞에서 마음을 돌려달라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의 진심을 아주 명확히 드러내야 할 두 문장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사랑한다'란 말과 '헤어지자'란 말을 선택할 것이다.  

두 남녀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두 문장만큼은 서로에게 오해가 없을 만큼 명확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 흔하게 사용해서 그 문장의 진심을 담지 못하게 된다면,

인연의 시작과 끝을 맺어야 할 다른 문장을 찾아야 하는데 두 문장만큼 힘 있는 문장은 찾기 쉽지 않다.


너무 가볍거나, 상대에게 너무 상처가 되는 문장은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마저 부정하게 되는 결과를 만들기 마련이다. 인연의 시작이 소중한 만큼, 두 사람의 끝맺음도 중요하기에 그 끝을 어떤 문장으로 마무리하느냐는 상대에 대한 마지막 배려인지도 모르겠다.


감정의 굴곡에 따라 사랑한다란 문장과 헤어지자란 문장을 우린 너무 쉽게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금은 아껴두어야,

우리의 진심을 전할 때 더 강력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건 아닐지 한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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