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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Mar 16. 2022

이미 가시박힌 사랑

ep99. 에픽하이(feat.윤하) - 그래서 그래

(개인의 경험이 아닌, 노래를 소개하기 위한 글입니다.)


당신과 나, 즉 우리가 서로의 인연이 되는데 있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던 건 무엇이었을까?

외향적인 모습에 이끌려 연애하던 20대를 지나,

호감만으론 쉽게 연애를 시작하지 못하는 30대에 접어든 우리에게 연애는 그리고 사랑은 

과연 과거의 경험만으로 학습되는 걸까? 

만일 사랑이 학습되는 거라면 그럼 그 학습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우리에겐 모두 '태생'이라는 바꿀 수 없는 환경이 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환경은 자신의 의지대로 쉽게 바꿀 수 없다. 설령 지독한 노력을 통해 보여지는 모습을 바꾼다 해도 그 사람이 이미 갖고 태어난 그 어떤 기질은 가슴 한 켠에 내재된 체, 중요한 순간 본인도 모르게 작동되기도 한다.


- 부모님께 물려받은 본인의 성향

- 어릴 적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겪게 된 다양한 가정환경

- 어릴 때 받은 과도한 사랑 혹은 그 반대인 결핍된 사랑

- 사랑이란 정의를 제대로 적립하지 못한 체 시작된 섣부른 연애 그리고 상처.


이처럼 우리가 바꿀 수 없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게 찍힌 각인처럼,

아무리 지우려 해도 잘 지워지지 않는 그 어떤 모습으로 인해,

누군가는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연애도

어떤 이에겐 그 무엇보다 어렵게 느껴지고,

어렵게 시작한 연애는 생각지도 못한 생채기로 인해

상대에게 쉽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또 본인 스스로를 더 많이 다치게 한다.


연애가 행복보다는 그 끝이 항상 상처를 동반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더 사랑을 시작하지 못하게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랑은 늘 상대가 날 떠나갈까 봐 불안해하고 조급해하다 결국 본인의 조급함으로 인해 그 사람을 떠나보내기도 한다. 그 모든 주고받은 상처 이면엔, 내 탓이 아닌 내가 갖고 태어난 '태생과 기질'도 영향을 미친 걸까?


학습된 상처는,

일어나지 않은 불안한 미래를 불러일으키고,

그 불안한 모습을 감추려

자꾸만 상대를 속이고, 또 본인도 속이며 그렇게 본모습이 감춰진 연애 속에 점점 사랑하는 이를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솔직한 자신의 본모습을 보이면 상대가 그 길로 도망가 버릴까봐.


다가온 것도, 도망가는 것도 너이지만

상처받는 건 오히려 내가 되니깐.

그래서 자꾸 사람이 그리고 사랑이 두려워지는 건 아닐까.



https://unsplash.com/photos/5N2_UF9HIW8


그 모양과 크기가 모두가 제각각이지만 우린 모두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상처가 있다.

그 상처가 다른 화목함과 즐거움으로 덮여지는 사람이 있고,

그 상처가 너무 커서 다른 즐거움이 들어올 틈도 없이 상처에 매몰되는 이도 있다.


우린 살아가며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하는 마음이 커져서 그 사람과 평생 함께 하고픈 마음이 든다면 그 사람의 상처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어떨 땐, 사랑하는 것과 상처를 헤아리는 것은 또 다른 별개의 문제가 되기도 하니깐.

상처를 보듬어주는 이도, 상처를 갖고 있는 이도 항상 서로 배려하지 않으면 그 상처가 결국 도화선이 되어 두 사람을 더 아프게 할지도 모르니깐.

작은 상처든, 큰 상처든 우린 모두 상처를 고 살아간다.

내 상처가 더 크니 네가 날 좀 이해해달라고,

이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날 사랑한다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믿어달라고... 말한다는 건 더 이상 사랑이라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상대를 향한 절절한 마지막 호소인 걸까.


주변을 돌아보면, 이런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릴 적 자신을 두고 떠난 누군가로 인해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사랑조차 시작하지 못하는 우린 누구에게 위로받아야 할까.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은 왜 서로에게 그토록 끌리는 걸까.

서로의 아픔을 잘 알기에 힘이 될 줄 알았는데 왜 그 상처들이 더 큰 상처로 서로를 겨누는 칼이 되어 돌아오는 것일까.


너무 밝게 자란,

그래서 내게 과분하다고 생각한 네가 내게 다가와 우리가 연애란 것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난 왜 그렇게 멍청하게 널 밀어냈을까.

있는 그대로의 날 믿어준 건 너였는데,

왜 난 있는 그대로의 나조차 믿지 못한 거였을까.




어릴 적 자연스럽게 학습된, 사람에 관한 그리고 사랑에 관한 우리의 모습은 때론 날 너무 아껴주는 사람을 만나 서로의 노력으로 극복해나가는 사람도 분명 주변엔 많이 있다.

반면 그 상처를 스스로 돌보지 못하고, 또 가까스로 돌본 그 상처가 또 다른 연애의 상처로 인해 더 큰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사람도 존재한다.


에픽하이의 신곡 '그래서 그래'는 태생적 상처를 가진 누군가의 아픈 사랑의 가삿말이 너무 인상적이다.

멜로디도 계속 귀에 꽂히지만,

가삿말이 더 마음에 여운처럼 길게 남는다.


오래도록 듣게 될 노래가 또 한 곡 추가된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인 듯하다.


https://youtu.be/l7EQ_uoNQBE 


못된 것만 배워서 그래

못된 짓만 골라서 했네

이런 내가 미워 나도 착하게 살고 싶었는데


너 원래 이랬냬

늘 가시 돋친 내게

다가서기 두렵다는 너도 잘 알 텐데

세상이 내게 삼키게 했던 가시 수백 개를 몸 밖으로 밀어내다 선인장이 됐네

I hate me more than u could ever

답 없는 놈일 수밖에

난 나란게 문제며 그래 너 말대로 병이니까

꽃을 담아도 툭 치면 조각나버릴 운명이니까.


알잖아 난 감정이 고장 나 황폐한 마음엔 흔한 사랑 한 포기 못 자라

늘 내게 무심했던 나와 목마른 관심에 지친 넌 눈물 삼켰잖아

니 눈물 빼고 슬픔을 더해 늘 파도치던 너의 눈빛 속에 담겼던 미움도 이젠 날 동정해

왜 니가 나를 걱정해 원래 엉망인 나였잖아.


내가

못된 것만 배워서 그래

못된 짓만 골라서 했네

이런 내가 미워

나도 착하게 살고 싶었는데

너무 많이 다쳐서 그래

너무 많이 속아서 그래

나도 이러긴 싫어. 웃고 싶어 근데 그게 잘 안 돼

안 돼


내게 진 어둠이 너의 미래조차 검게 물들일까 봐 두려워서 그래

나는 상처받는 게 죽도록 싫어 받기 전에 상처를 주는 놈이어서 그래

결국 내 외로움에 이유인 전부 난데, 난 자꾸 탓을 돌려

너와 세상에게 묻네

꽉 잡았던 네 손도 놓아줄 테니 떠나. 원망보다 남은 미련이 클 때.


사랑을 몰라서 그래

그래, 어렸을 때 뺏기는 법만 배워 능숙히 못 받아 그래. 겁이 나서 그래

눈감아줄 때 마저 못 볼 것을 너무 많이 봐서 그래

다 변명인데

가진 것을 다 준다 했지? 약속대로 내 모든 상처를 주네.

"사랑이 어떻게 그래?"

사람이라서 그래....


내 불안한 마음도 위태로운 모습도 미안해 미안해

이런 날 용서해 줘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잘 안 돼

좀 기댈 게

내가

못된 것만 배워서 그래

못된 짓만 골라서 했네

이런 내가 미워 나도 착하게 살고 싶었는데

너무 많이 다쳐서 그래

너무 많이 속아서 그래

나도 이러긴 싫어 웃고 싶어. 근데 그게 잘 안 돼

사랑을 잘 몰라서

아직도 잘 몰라서

그래서 그래

그래서 그래

네 마음을 잘 몰라서

내 마음도 잘 몰라서

그래서 그래

내가 나라서 그래


살기 위해, 웃기 위해, 나를 위해 그랬어.

살기 위해, 웃기 위해, 다 너를 위해 그랬어.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다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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