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 Mar 09. 2022

저는 축구를 좋아해요.

ep98. All time low - Time bomb


나를 드러내는 키워드가 몇 없는데, 스스로 생각할 때 가장 큰 키워드는 ‘축구’다. 가장 즐겨하는 스포츠에 대해 한 번도 진솔하게 글 써본 적 없었지만 한 번은 수플레에서 정리해보고 싶었고, 마침 이번이 기회가 됐다. 오늘은 참 재미없을 수 있는 나의 ‘축구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는 양심 상 제외..)


천식을 앓던 4살 때부터 아버지가 심폐 지구량을 늘려주기 위해 가르쳐주신 축구는 어릴 적부터 재밌었다. 남동생-아버지-나 셋이서 공격-수비-골키퍼라는 환상의 조합이 갖춰졌고 매 주말마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찾아가 축구를 했다. 특이하게도 왼쪽 발을 이용해 공을 차기 시작했고, 남동생도 왼발로 공을 찼다. (아버지는 오른발잡이인데 그럼 어머니가 왼발잡이..?) 2시간 정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축구를 하고 나면 아버지는 요구르트나 우유와 같은 음료수를 사주시곤 했다. 이후 집에서 샤워를 하고 낮잠을 자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라때는 잔디 없이 흙에서 찼다구~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축구를 더욱 자주 하게 됐다. 특히 남고 시절과 군 복무 시절엔 점심-저녁으로 축구를 했었는데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군생활 시절 답답함에 대한 반대급부로 축구에 얽매였던 시절인 것 같다. (성적과 제대는 마음대로 안되는데, 축구는 그래도 나름 마음먹은 곳으로 공을 보낼 수 있어서였을지도) 드넓은 공간에 공 하나와 특유의 계절과 선크림 냄새를 맡으며 설렜던 기억이 가득하다. 여전히 잔디 냄새와 선크림 냄새를 맡으면 심장이 조금 빨리 뛰곤 한다.


어릴 적엔 경기를 지고 나면 밤에 혼자 공을 챙겨 연습했던 적이 많았다. 대학생 땐 축구대회 우승 및 득점왕도 해봤고, 지고 나서 울었던 기억도 생경하다. 동영상을 보며 개인기를 따라 하고, 끊임없이 달리기와 슈팅 연습을 했던 추억도 있다. (축구선수야 뭐야) 음료수 사서 뛰어다니던 막내부터, 동호회를 이끄는 회장까지. 축구로 인해 경험한 인생은 가히 다른 취미에 비해 압도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임감과 조직에 대한 이해가 가장 컸다.

대학교에서 1등 한 적이 축구말곤 없다니 비통해.

개인적으로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걸 꼽자면 한 발 더 뛰는 끈기라고 생각한다. 정해진 포지션에서 내가 덜 뛰면 공간이 열리고, 같은 팀원이 더 뛰어서 그 공간을 메워야 한다. 치열한 경기에서 딱 한 명이 퇴장당하면 급격히 경기가 기우는 것도 위와 같은 이유다. 작으면서 커 보이는 축구 경기장 안에서는 각자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도 얽혀있다. 팀을 위해 자신이 1인분을 해내야만 하고, 서로의 작은 안일함이 쌓여 패배가 된다. 반대로 작은 배려와 헌신은 승리로 이어지고. 주어진 공간에 대한 책임감과 조직 속 역할 수행능력을 가장 많이 배웠던 것 같다.


https://youtu.be/xkgNsE9Uhzc

숱한 유저들을 울린(?) 축구 게임의 유명한 BGM

(추천 곡은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애국가와 같은 노래라 가져왔고, 가사는 사실 큰 의미는 없다 ㅎㅎ)


치열한 취미도 나이가 들며 빈도나 강도는 많이 줄었다. 축구는 생각보다 위험한 스포츠라 많이 다쳐서 쉬는 경우도 많았다. 나아가 당장 오늘을 살았던 시절을 지나, 내일을 걱정하고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중요도가 점점 줄어든다. 내리는 눈에 기뻐하던 유년시절을 지나 출근길 정체를 걱정하는 어른이 되듯.


그래도 무식하게 공만 찼던 건 아니라, 이런저런 소중한 경험과 교훈을 간직하고 있음에 뿌듯할 때가 있다. 점점 나다움이 옅어지는 순간에도 공을 차는 모습만은 4살 때와 다름없는 모습, 공과 푸른 잔디 앞에선 고이 간직한 학창 시절 일깃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취미 있으세요?
네 전 축구 좋아해요!


20년 넘게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단 한 번도 망설인 적도, 부끄러운 적도, 바꾸고 싶은 생각도 없었던 취미. 아니 사실은 취미라는 표현도 작다 싶을 정도로 많은 부분을 향유하는 단어가 돼 버렸다.

축구는 인류가 가져야할 당위성을 전파하기도 한다. No War!!!

 이상 공을 차기 힘든 순간까지도 취미에 대한 대답은 한결 같을 것이다. 목표를 세우고 이루고, 부족함을 인정하고, 마음가짐을 평온하게 유지하는 방법   좁고 얇은 인생을 조금은 두텁게 만들어  취미였다. 앞으로 경기에서 이기든 지든, 여전히  안에서 겸손과 자신감을 찾고 나아갈 것이다.


여담으로 축구엔 기권이 없다. 아무리 큰 스코어 차이가 나도, 이미 결과가 드러났다해도, 경기는 90분이 지나야 종료된다. 그 어려움 앞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작은 이야기가 아닐까. 삶을 강하게 지탱해주는 기둥이자, 흔들리지 견고한 버팀목에 대해 감사하며 글을 맺는다. 쉬는 오늘, 빨리 투표하고  차러 가야지!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다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구독과 공감, 댓글은 더 좋은 매거진을 위한 원동력이 됩니다. 매주 수요일 '수플레'를 기다려주세요!

(비슷한 감성의 음악 공유도 환영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잘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