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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선 Sunny Mar 02. 2022

잘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거.

ep 97. 융진 - 걷는 마음 (리틀 포레스트 OST)


"취미가 뭐예요?"

"음.. 저는 취미가 자주 바뀌는데요, 요즘에는 요리해요."

"어떤 요리?"

"그냥 하나의 플레이트에 소소한? 이것저것 하는 것보다 한 그릇 간단한 게 좋아요."




요리가 취미라고 하면서 '한 그릇' 요리가 취미라고 하는 건 웃긴 건가? 괜히 머쓱해진다. 하지만 나름대로 나만의 기준이 있다. 단순한 한 접시가 아니라, 간단하고 쉬운 대신 무언가 예상치 못한 변주를 더해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한 그릇' 요리가 완성된다. 예를 들면 떡볶이에 냉이 나물을 넣어 향긋하게 먹는다던가, 브로콜리로 불맛을 입힌 스테이크라던가! "와 이거 너무 신박한데?" 싶은 조합의 레시피와 새로운 식재료는 나를 자주, 들뜨게 만들었다.


브로콜리 스테이크 한상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호기심' '새로움'이다.  호기심과 새로움은 보통은 빠르게 해결되고 말아서, 대부분의 취미는 짜게 식어  곁에 오래 머물지 못했지만 요리의 세계는 달랐다. 유행과 트렌드가 끊임없이 주입되는 시장. 무한대에 가깝게 언제나 새로운 방법과 조합이 생겨나는 .  중심에 백종원이 있었고 최근엔 '어남선' (배우 류수영. '편스토랑' 예능에서 요리 잘하는 남편으로 다양한 레시피를 선보이고 있다.) 신나게 활약하시는 중이다.


레시피 검색하면 백종원 레시피로 도배였는데 요즘엔 어남선생...


주말, 보통은 약속을 잡지 않는 일요일에 주로 요리를 한다. 평일 내내 접하는 달고 짠 외식에 질리기도 했지만 좋아하는 스타일의 레시피를 킵해뒀다가 주말에 만들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통 금요일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식재료를 사거나, 마켓컬리에서 주문하고 다음날 완성될 음식을 상상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잠든다. 이 과정은 굳이 의식하거나 계획하지 않아도 꾸준히 이어져왔다. 지난주 일요일에도 만든 음식을 접시에 담고 사진을 찍으며 문득 '난 진심으로 이 시간과 순간을 즐기고 있구나' 느꼈다. 그냥 '좋다, 행복하다' 말하는 것과 마음에서 그것을 느끼는 순간은 분명 다르다. 언제부터 그랬지? 거슬러 올라가 보니 요리를 즐기기 시작한 역사는 생각보다 길고 길었다.


내가 사랑하는 한 접시들



그냥 배를 채우기 위해 해 먹는 것 말고, 자취 요리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가끔씩 따라 해 본 것 말고, 직접 만든 음식의 뿌듯함과 정신적인 배부름을 느낀 순간. 5년 전 부산대 근처의 고시텔에서였다. 요리는 둘째치고 잠자고 일상생활하는 것 마저 자유롭지 않았던 그곳에서 왜?


그 당시 취직 전에 영어 공부에 몰입해보겠다는 의지 하나로, 가장 저렴하게 지낼 수 있는 학원 근처의 고시텔을 택했다. 침대와 책상 하나. 한 뼘의 공기를 겨우 느낄 수 있었던 작은 창문. 작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그 고시텔을 나는 퍽 좋아했다. 왜 그랬는고 생각해보면 어떤 상황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작지만 큰 마음이 있었고, 그 마음에 쏙 들었던 것들 중 하나는 주 3회 반찬을 제공해주는 고시텔의 시스템과 언제든 요리해 먹을 수 있는 꽤나 알찬 부엌이었다. 고시텔에선 카레, 미역국. 특별식으로 주 1회 정도는 마트에 파는 불고기를 부엌 한편에 두고 제공해주었다. 그 시절 나는 시간에 쫓겨도 늘 몇 가지 재료는 더 사서 조금이라도 더 풍부하게 먹으려고 노력했다. 제공해 준 카레에 계란 후라이를 하나 더 올리고, 깨를 뿌리며 그 소박한 챙김을 남몰래 뿌듯해했다. 기본 식기구가 채워진 부엌에서 종종 음식도 해 먹었는데, 기억에 남는 음식 중 하나는 근처 동네 빵집에서 산 올리브 치아바타로 만든 소소한 브런치였다. 절반 잘라 올리브유를 뿌리고 계란 스크램블을 올린 후 소금 후추를 뿌려서 따뜻하게 먹었던. 레시피도 안 보고 그냥 만들어 본 그 음식이 그렇게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향수로 아직도 촉촉한 치아바타가 격하게 그립다.




자, 이 정도 요리에 대한 썰을 풀었으면 내가 대단하게 요리를 잘하겠구나 싶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반전으로(?) 아직도 남들에게 내가 만족할 만큼 맛있는 식사를 대접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조금은 대중적이진 않은 레시피를 선호하는 편이라 내가 만든 음식이 썩 남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이 아니라는 핑계 하나, 그리고 만들 때마다 달라지는 손맛이라는 핑계 하나 더. 레시피 정석대로 따라 하는 편이 아니라 내 기분 내키는 대로 소금을 덜 치기도, 더 치기도 한다. 그런 경험이 쌓여서인지 다른 사람에게 요리를 해준다고 생각하면 일단 식은땀부터 흐른다.


그래서 요리는 나의 '특기'가 아니라 취미다. 아직 꿈꿀 것이 많은 취미다. 완벽하지 않은, 어색하고 어설픈 실력 덕분에 오늘보다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언젠가 외국 영화처럼 디너파티를 열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커다란 식탁 위 내가 만든 음식을 대접하는 상상을 한다. 다들 이런 음식은 처음 먹어본다며, 어떻게 이 레시피를 찾았냐고, 이런 자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말한다. 그 말에 나는 행복하게 웃어 보인다.


내 '업'이 아니어서 참으로 다행인 취미. 잘하지 않아도 나만 부끄럽고 끝낼 수 있는, 결과를 떠나서 과정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것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마무리할 수 있고 정리하고 치우는 것 마저 즐거운 요리가 내 취미라는 것이 좋다. 오늘도 나는 차오르는 행복감을 선사해줄 레시피 하나를 품어본다.



https://youtu.be/vkRDSSqzRC4


오늘의 글에 어떤 노래가 어울릴까, 한참을 고민했어요. 그러다 영화관에서 인상 깊게 본 '리틀 포레스트'가 생각났죠. 요리하면서 느끼는 감정과 표정을 잘 담은 영화여서 참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밤은 제 글 한번 더 읽고, 잔잔하게 영화 틀어놓고 잘 까 봐요.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 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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