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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미 Feb 23. 2022

다정하고 정의로운 이름으로!

ep.96 코요태-우리의 꿈


“30대가 되면 되고 싶은 모습 같은 거 있었어?”


오랜만에 친구와 운동을 하고 돌아오던 차 안에서 어둑해진 밖을 보며 넌지시 물었다.


“글쎄… 크게 생각해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너는?” 친구가 되물었다.


“음, 제일 먼저… 다정한 사람되기.

그리고 남한테 상처 안 주기.


또… 정의로운 사람으로 살아보기?”


“정의?” 친구가 의외라는 듯 웃었다.

“어떻게 된 게 갈수록 점점 더 어렵다 야.

근데 정의로운 거라면 예를 들어 어떤 건데?”


“뭐… 약자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굳이 내가 피해 보는 일이 아니더라도 나서서 분개할 줄도 알고,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수고로움을 감수하면서 나서기도 하는 그런 거? 물론 생각만 해도 어려울 것 같아서 일단 ‘정의로운 사람으로 살아보기’이긴 하지만.

넌 정의로운 사람이야?”


“아니… 별로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가 머쓱하게 대답했다.


“나도. 그래서 이제 그렇게 좀 살아보고 싶더라.

사실 나도 내가 30대에 이런 모습이 되고 싶어 할 거라곤 예전엔 전혀 상상 못 했었는데 말이야.

그냥 이젠 그렇게 사는 게 더 멋져 보이더라고."






30대가 되기 전 마지막 12월, 침대에 누워 종종 떠올려 본 질문은 ‘어떤 모습의 30대가 되고 싶은가’였다.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자연스레 떠오른 몇 가지 중 가장 의외의 모습은 ‘정의로운 나’였다. 10대나 20대였다면, 굳이 30대에 되고 싶은 모습으로 꼽진 않았을 법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정의라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굳이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개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할까.

정의라는 건 그냥 만화 영화에나 나올 법한 단어 같았다. ‘꿈과 희망’ ‘사랑과 정의’처럼 입에 착 달라붙는 세트로 불리는, 만화 주제가에나 쓰기 좋은 단어들. 현실과는 먼 다소 뜬구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들.



사랑과 정의의 이름의 대표 주자


어릴 때 즐겨보던 만화 영화에선 늘 ‘악함’ 그 자체인 악당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 반대 편에는 우리들의 주인공이 있었다. 악당에 맞서 싸워야 하는가, 하는 것은 주인공의 입장에선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악’을 처단하는 건 당연한 ‘선’의 역할이었고, 운이 좋게도 그 역할을 맡은 주인공은 늘 자연스레 ‘정의로운 인물’이 되었다. (누군가를 공격할 명분이 당연하게 주어지다니 참 운도 좋다.)


어릴 땐 나도 만화 영화를 보면서 그런 정의로운 주인공을 꿈꿨을지 모른다. 나의 역할은 ‘선’이고, 마주치는 ‘악’ 한 것들을 정의롭게 처단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 거라고.

하지만 커 가면서 마주하는 현실은 여러모로 달랐다. 현실에 확실한 ‘악’은 없었고 ‘악’ 한 것에 반대되는 것이라 해서 완벽한 ‘선’ 일 수도 없다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시작은 선한 의도였던 행동이 누군가에겐 더할 나위 없는 악이 되기도 하고 때론 그 반대가 되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반드시 ‘선하고 정의로운 것’이 게임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었다.


덕분에 이 현실에서는 굳이 정의로운 사람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완벽하게 선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기란 만화 영화에서 보다 몇 백배는 더 어려운 게 당연하니까, 다들 정의로운 사람이 되진 않더라도 성공하고 유명해지고, 멋지게 사니까. 내가 굳이 나서서 악한 사람이 되고자 하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것 아닌가?라고, 그게 현명한 삶의 태도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30대에 되고 싶은 모습을 생각했을 때 ‘정의’라는 단어를 머리에 떠올린 그 순간은 꽤나 의외였다. 다만 그것이 이제 와서 세상 모든 악한 것들을 물리치는 히어로가 되고 싶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이제는 뒤를 따라오는 누군가를 위해 조금이나마 좋은 세상을 만드는 수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책임감이 들어서였다.


아직 이 사회에서 완벽한 강자의 위치는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자립을 하고 누군가에게는 인생 선배가 되어가는 나이니까,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목소리를 내어보아야겠다,

그렇게 만든 사회에선 누군가는 ‘꿈과 희망’이나 ‘사랑과 정의’ 같은 것들을 뜬구름처럼 느끼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

그리고 그런 목표를 가진 어른이라면 좀 더 멋있겠다는, 다소 유치한 목표가 생겼을 뿐이었다.


비록 이렇게 유치하고 거창한 목표를 갖는다고 해도 결국 내 입으로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마 당장 내일 맞닥뜨리는 불합리한 상황에서 내가 정의로운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다. 당장 재밌는 것들을 뒤로 미뤄두고 내게 손해도 이익도 없는 일에 기꺼이 귀찮음을 무릅쓰고 나서는 것도 어려울지 모른다. (아니, 분명 매우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이 모든 걱정을 뒤로하고, 30대의 시작에 꿈과 희망이 가득한 유치한 목표 하나쯤은 가져가 보고자 다짐했다. 다정하고 정의로운 이름으로, 누군가에겐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도 있을지 모르니까.






https://youtu.be/Ltw6xUlvae0


최근 한 만화 영화 ost 영상의 댓글로 달린, 많은 사람들의 코를 찡하게 만들었던 한 성우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꿈, 희망, 절망, 도전. 아이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이런 추상적인 가사들이 애니메이션 오프닝에 많이 들어갔던 이유는

어른이 되어 다시 추억에 젖어 이 노래를 찾아들었을 때, 어릴 땐 이해 못 했던 이 가사들을 보고 다시 힘을 얻어가기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하네요.’


오늘의 수플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 애니로 꼽히는 원피스의 ost, 코요태가 부른 <우리의 꿈>입니다. 사실 아직 원피스를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꽤 인상 깊은 장면들이 많아서 언젠가 꼭 정주행을 해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어요.

이 ost는 그 유명한 첫 소절, ‘내 어린 시절 우연히’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만드는 노래예요. 저는 가끔 조금 축 쳐질 때, 마구 열정을 끌어올리고 싶을 때 이 노래를 들어요.


무엇보다 이 노래의 가사를 들으면 뱃머리에 당당하게 서서 바닷바람을 맞고 있는 주인공 ‘루피’가 되는 느낌이 듭니다. 거친 바람, 높은 파도도 두려워하지 않고 끄떡없이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든든한 마음도 들고요. 10대 소년이었을 루피가 꿈꾼 ‘밝은 내일’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어린 내가 꿈꿨을 내일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다시금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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