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95 잔나비 - 외딴섬 로맨틱
여행을 하던 도중 물가에 다다르면 망설임 없이 겉옷을 벗어던지고 뛰어든다. 튜브 없이도 맨몸으로 수영을 한다. 숨을 참고 덕 다이빙으로 아주 깊이 잠수를 해 신나게 헤엄치다 보면 물고기도 만난다. 풍덩, 몸을 던져 들여다본 물속 세상은 투명하고 푸르르며 신비롭다. 물속에서 눈을 뜨고 있어도 아무렇지 않... 어? 이상하다.
사실 이것은 오래전부터 나의 상상에서 일어났던 일이었다. 어릴 때 수영장에서 물을 잔뜩 먹은 이후로 물에 빠지는 것에 대한 공포로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는 수영장을 가본 적도 없었다. 수영을 못하니계곡이나 바다에 가도 발을 담그거나 튜브를 타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나는 물이 좋았고 상상 속에서 끊임없이 헤엄을 쳤다. 영화를 봐도 기억에 강력하게 남는 많은 순간은 등장인물이 수영하거나 다이빙을 하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을 볼 때면 나는 그 옆에서 함께 헤엄치고 있었다.
상상은 꽤 구체적이었다. 일단 어딘가 걷다 보면 바다가 나타난다. 그러면 신발과 겉옷을 벗어던지고 속옷을 수영복인 셈 치고 바다로 뛰어가는 것이다. 시간은 늘 오후 다섯 시쯤, 낮아진 해를 받아 윤슬이 반짝이는 풍경이다. 바닷속으로 풍덩 뛰어들면 수심이 제법 깊어서 꽤 오래 밑으로 내려간다. 튜브도 오리발도 필요 없이 가벼운 두 발로 힘차게 저어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가면 왠지 모르게 바닷속은 시커멓기보다 더 파랗고 말간 느낌이다. 종종 멍하게 이런 긴 과정을 상상하곤 했다.
여전히 상상 헤엄을 치곤 하던 스무 살 초반에 가족들이 다 함께 계곡으로 여행을 갔을 때 마음먹고 이모부에게 수영을 배우기로 했다. 우리 가족 중에는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이모부가 거의 유일한 수영 가능자였다. 이모부는 바다에서 태어나고 바닷가에서 일생을 보낸 물개 사나이였다.
이모부는 '오늘 너를 수영에 입문시키겠노라'는 굳건한 표정으로 수심이 깊은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 그러고는 수경을 씌우고 고개를 물속에 박은 채 다리를 저어보라고 하셨다. 상상 속에서 수영은 본디, 흐르는 물살에 몸을 맡기고 유유히 물고기처럼 떠다니면 되는 것이었는데 실전은 달랐다. 운동에 소질이 없기를 타고난 나로서는 언제나 운동을 몸이 아닌 머리로 익혔는데, 수영도 마찬가지였다. 물속에 머리를 담근 채 다리는 얼마나 크게 저어야 하는지, 엉덩이가 떠오른다는 느낌으로 힘은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내 남은 숨으로는 얼마나 더 오래 잠겨 있을 수 있는지 등등을 계산하느라 바빴으니 그야말로 물속은 전투 작전 중이었다.
그날 이모부의 혹독한 강습 이후 '고개를 물속에 담근 채 숨 안 쉬고 헤엄치기'를 마스터했고 몇 년 뒤 정식 강습을 받아 드디어 호흡을 하며 자유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영을 배우고 나니 윈드서핑, 패들보드, 스쿠버다이빙, 프리다이빙 등 물에서 하는 스포츠라면 일단 해보기 시작했다. 그중 스물아홉에 경험한 프리다이빙은 그토록 상상하던 것과 가장 닮아있는 활동이었다. 수영복만 입은 맨 몸으로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물속 세계는 상상하던 것보다 더 고요하고 아름다웠다.(비록 바닷속이 아니라 가평 K26 수영장 바닥이었지만) 나의 20대는 상상에서 벗어나 10년에 걸쳐 물과 조금씩 친해지는 과정이었다.
매들린원러가 쓴 [수영하는 사람들]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매들린이 포착한 리도(야외수영장)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또 한 가지 특징은 수영장이라는 공간에 내재된 평등성이다. 사이클과 마찬가지로 수영을 하는 사람들도 실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반벌거숭이가 되어야 한다는 데서 오는 일종의 취약성을 공유한다. (서문)
수영복을 입기 전과 후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매들린의 사진으로 구성된 이 책은 누구나 물에 들어가기 전에는 공평하게 '반벌거숭이'가 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그만큼 물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다소 부끄럽고 취약해지더라도 거추장스러움으로부터 벗어나는 용기가 필요하다.
잘 손질된 머리도 메이크업도 옷 속에 꽁꽁 숨긴 뱃살도 물속에서는 소용없다. 그렇게 물은 나를 무장해제시킨다. 마냥 아름답지 않아서 더 자유로운 무언가를 난 늘 동경해왔던지도 모르겠다.
책 속에서 수영장을 찾은 65세의 재즈 뮤지션 '마이크'는 말한다.
서른 살 때에 정원에 있는 수영장에서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다들 내가 장난치는 줄 알았고, 열두 살짜리가 내 목숨을 구해주었다. 어려서부터 물은 늘 좋아했지만 수영은 마흔네 살에야 처음 배웠다. 마치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는 느낌이었다. 자연의 새로운 요소를 정복하는 것 같았다. 요즘도 수영할 때면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수플레 95번째 에피소드를 장식할 곡은 제가 너무도 사랑하는 최애 노래 중 하나로 가져와보았어요. 노래도 노래지만 뮤직비디오가 눈물 날 정도로 좋아서 작년 발매 직후부터 마르고 닳도록 영상을 보았답니다. 누구나 저마다 마음이 가는 서사가 있지 않나요. 이 뮤비 속 '비', '친구들', '수영'이라는 키워드가 만들어 낸 스토리와 그걸 담아낸 잔나비의 음악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져 저의 최애 곡이 되었습니다.
영상의 마지막에는 마침내 보물을 찾아낸 친구들이 거침없이 뛰어들어 다 함께 헤엄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상상 속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영상을 이제껏 본 적 없었는데 이 뮤비를 보고 난 후엔 단연 가장 상상과 닮아있다고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 노래와 함께 다들 눈을 감고 상상 헤엄을 치며 바닷속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수요일이 되시기를 바랄게요.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다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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